▲ 샌디 쿠팩스가 2017년 11월 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휴스턴 애스트로스-LA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7차전에 앞서 시구를 하고 있다.

[스포티비뉴스=LA(미 캘리포니아), 양지웅 통신원]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인 36살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샌디 쿠팩스는 다저스의 레전드다. 출중한 투수들을 많이 배출한 다저스 구단이지만, 그 중에서도 역사상 가장 훌륭한 투수로 꼽히는 쿠팩스는 야구뿐만 아니라 미국 문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류현진이 선발로 등판하는 31일(한국시간) 뉴욕 메츠와 홈경기는 다저스 구단이 쿠팩스를 기념해 영구결번이 된 그의 32번 유니폼 저지를 다저스타디움을 찾는 팬들에게 사은품으로 나눠주는 날이다. 다저스 전설로 남아있는 쿠팩스를 알아본다.

◆'짧고 굵게' 전성기를 불태운 전설

쿠팩스는 짧지만 임팩트 강한 선수생활을 한 선수로 유명하다. 1955년 브루클린 다저스(1958년 LA로 이전)에서 데뷔한 쿠팩스는 그저 그런 선수였으나 1961년부터 1966년 은퇴할 때까지 전설같은 6시즌을 다저스에 남긴다. 만장일치 사이영상을 3차례(1963년, 1965년, 1966년)나 수상했고, 월드시리즈 MVP 2차례(1963년, 1965년), 내셔널리그(NL) MVP 1차례(1963년) 수상했다. 또한 최다승, 최저 평균자책점, 최다 탈삼진 1위를 뜻하는 투수 부문 '트리플 크라운'도 3차례(1963년, 1965년, 1966년)이나 달성했다.

데뷔 후 몇 년간은 부상에 시달리며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쿠팩스는 8승13패를 기록한 1960년 시즌이 끝난 후 야구를 그만 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진정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고 오프시즌 동안 처음으로 제대로 몸을 만든 후 '1년만 더 해보자'는 심정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전설이 시작된다.

쿠팩스는 1961시즌 18승13패를 기록하며 NL 최다인 269탈삼진을 잡아냈고 처음으로 올스타에도 선정됐다.

◆다저스타디움 완공과 함께 시작된 전성시대

1962년부터는 다저스타디움이 완공되면서 투수친화적인 곳에서 홈경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위력을 발휘했다. 그전까지 다저스는 올림픽이 열렸던 LA 콜리세움에서 홈경기를 했다. LA 콜리세움은 홈플레이트에서 왼쪽 담장까지 거리가 겨우 76m(250피트)였다. 투수에게 아주 불리했다. 직전 시즌 평균자책점이 3.52였던 쿠팩스는 그해 NL 최저 평균자책점인 2.54를 기록했다. 그해 6월 30일 뉴욕메츠전에서 첫 노히트를 기록했고 '이달의 선수' 상도 받았다. 시즌성적은 14승7패.

1963년에는 25승(5패),1.88 평균자책점, 306탈삼진을 기록하며 첫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그리고 1900년 이후 좌완투수 최다인 11완봉승을 거뒀다. 처음으로 NL MVP와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1964년부터는 서서히 몸에 문제가 생겼다. 겉으로는 3번째 노히트도 기록했고 19승5패 1.74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시즌을 멀쩡하게 마쳤으나 이때부터 관절염 및 각종 부상에 시달리며 진통제와 주사를 맞아가며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1965년 쿠팩스의 전설이 완성됐다. 스프링캠프 도중 팔이 내출혈로 인해 부어오르는 등 부상이 심각해진 쿠팩스에게 의사는 "더 이상 투수생활을 하지 마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쿠팩스는 시즌 내내 경기 도중 진통제를 맞는 투혼을 발휘하며 두번째 트리플 크라운(26승8패, 2.04 평균자책점, 382탈삼진)을 달성한다. 그해 9월 9일 시카고 컵스전에서는 첫 퍼펙트게임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8번째였고 좌완투수로는 최초였다. 쿠팩스 개인적으로는 4번째 노히트였다. 재밌는 것은 이날 경기에서 상대팀 투수도 단 1개의 안타만 허용했으나 비자책으로 실점했다. 다저스는 5회 볼넷과 희생번트, 3루도루, 그리고 견제실책로 득점해 1-0으로 승리했다.

▲ 샌디 쿠팩스(가운데)가 2010년 5월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유태계 미국인 유산 기념 리셉션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종교적 이유로 월드시리즈 등판 거부…'비난'과 '용기' 사이

다저스는 1965년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리고 1차전 선발로 쿠팩스를 선택했다. 하지만 쿠팩스는 그날이 유태교 최대 명절인 '욤 키푸르(속죄의 날)'이란 이유로 등판을 거부했다. 종교적 이유로 월드시리즈 등판을 거부한 쿠팩스의 행동은 나중에는 '용기있는 선택'으로 미국인에게 받아 들여졌지만 당시 미국인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1차전에서 패한 다저스는 쿠팩스를 2차전에 등판시켰으나 역시 경기에서는 패했고 많은 팬들이 쿠팩스를 비난했다. 하지만 다저스는 3차전과 4차전에서 승리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쿠팩스는 5차전에 선발로 나서 완봉승으로 시리즈를 3승2패로 만들었다. 다저스는 6차전에서 패했으나 쿠팩스가 단 이틀만의 휴식 후 7차전에 선발등판해 또 다시 완봉승을 거두며 다저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부상과 피로 등으로 공을 던지기 힘든 상황에서 9이닝 3피안타 10탈삼진으로 완봉승을 작성한 쿠팩스는 두 번째 월드시리즈 MVP와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31세에 은퇴…36세에 명예의 전당 헌액

1966년 쿠팩스는 스프링캠프 때부터 "더 이상 투수생활을 하게 되면 팔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의사의 만류가 있었으나 이를 듣지 않고 시즌을 강행했다. 그리고는 27승9패, 1.73평균자책점, 317탈삼진으로 마치고 트리플 크라운과 3번째 사이영상을 받았다.

하지만 다저스는 그해 월드시리즈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게 스윕을 당했고 6주 후 쿠팩스는 31살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6년 후인 1972년 쿠팩스는 역대 가장 어린 나이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1935년 11월생으로 수상 당시 나이 만 36세였다.

쿠팩스는 메이저리그 12시즌 동안 165승87패, 2.76평균자책점, 2396탈삼진, 137완투, 40완봉 기록을 세웠다. 포스트시즌에서는 4승3패, 0.95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 미국 뉴욕주 쿠퍼스타운 야구 명예의 전당에 전시되어 있는 샌포드 “샌디” 쿠팩스의 명판

스포티비뉴스=LA(미 캘리포니아), 양지웅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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