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현역 연장을 선언했지만 자신을 찾아주는 팀이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백업 포수는 어디나 있다. 그런데 LG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덕분에 홀로 타지 생활을 시작했다. 이성우의 가족은 광주에 산다. 어느 팀에서 언제까지 뛸 지 알 수 없어서 이사를 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성우 혼자 경기도 구리에서 '나혼자 산다' 중이다.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가족은 그에게 늘 큰 힘이 된다. 그는 "사실 야구를 하고 나서 성실하게만 했던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방황했던 때도 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아내가 나를 바로잡아줬다. 늘 힘이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성우는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표현하겠느냐면서 먼저 "저 영상 편지 하나 해도 될까요" 하고 제안하기도 했다(영상 편지는 동영상에 있습니다).
곧 아들에게 'LG 선수 이성우'를 보여줄 날도 온다. 그는 "선수 생활 끝에 왔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잠실야구장을 보여주고 싶다. 아빠가 여기서 야구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아직 날짜는 정하지 못했는데 곧 일정을 잡으려고 한다. 첫째 아들은 제가 야구 선수인 걸 알고 있다. 아빠가 야구 제일 잘 하는 줄 알고 있다. 뿌듯하고 고맙다"며 밝게 웃었다.이성우는 LG가 마지막 팀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있다. 20대 초반에 잠시 머물렀던 적은 있지만 1군 경기에 뛰는 건 올해가 처음이다. 그래서 지금의 환영이 꿈만 같다고.
이성우는 "팬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밖에 드릴 말씀이 없다. 서울 출신이라 잠실야구장에 많이 왔던 기억이 있다. 선수가 된 뒤에는 원정으로만 왔다가 홈팀으로 오게 됐다. 홈팬들 앞에서 경기에 나가고, 팬들이 제 이름을 불러주시고 하는 걸 보면 감사한 마음 밖에 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금은 백업 포수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지만, 한때는 한 시즌 100경기는커녕 100타석조차 그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14년 KIA에서 124타석에 들어간 것이 최고 기록이다.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백업 포수라는 위치에서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넌 안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타격에 소질이 없어서 그런 말들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오기가 더 생겼다. 왜 나는 안되나, 다른 선수들은 백업으로 뛰는데 왜 나는 안되나, 두고보라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밑질 게 없는 선수였다. 나도 1군 선수가 되겠다는 오기가 있었다."
오기로 버틴 시간도 이제 끝을 향한다. 내년이면 마흔, 올 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이성우는 "은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야구를 오래 했으니까 지도자에 대한 생각은 있다. 제가 하고 싶다고 되는 건 아니고, 구단에서 좋게 봐주시고 하면. 하고 싶은데, 단장님 잘 부탁드린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LG의 포스트시즌 진출과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그는 지난달 21일 잠실 KIA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 뒤 단상 인터뷰에서 "반지 하나 더 가져오겠다"며 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이성우는 "우승 한 번 해보니까 정말 좋더라. 그때 그 말은 정말 준비한 게 아니라 그냥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다"며 가슴을 폈다.
스포티비뉴스=한희재, 신원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