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건우는 현재 원주고 투수 인스트럭터를 맡고 있다. 제1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 등 초대 우승을 이끈 주역이었다. ⓒ김건우 제공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충분히 준비했을 거라 믿어요. 우리 후배들, 긴장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올드팬들이라면 잊을 수 없는 전설의 투수 김건우(56). 1981년 창설된 제1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선동열(56)과 원투펀치로 활약하면서 한국야구가 초대 우승국의 역사를 쓰는 데 일등공신이 된 그는 제29회 WBSC 기장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 선수들에게 덕담과 응원을 보냈다.

1986년 MBC 청룡에 입단하자마자 18승6패, 평균자책점 1.81로 신인왕을 차지한 레전드. 18승은 KBO리그 역사상 데뷔 첫 해 최다승 기록이다. '괴물' 류현진(32·LA 다저스)이 2006년 한화에 입단하자마자 18승을 달성하며 김건우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 뿐,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고 있다. 이듬해인 1987년 날벼락 같은 교통사고로 비운의 투수가 돼 버렸지만, 고교 시절부터 김건우가 새긴 임팩트는 컸다.

그는 한국야구사에서 커다란 발자국을 남겼다. 특히 제1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네덜란드전에서 작성한 노히트노런은 한국야구사에서 국제대회 최초의 기록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30일 개막하는 제29회 WBSC 기장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를 맞아 지금으로부터 38년 전인 1981년 제1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한국 우승의 순간과 역사를 돌아본다. 그리고 이번 대표팀을 향한 김건우의 응원 메시지도 들어봤다.

◆김영덕 감독에 마운드는 선동열 김건우 쌍두마차

U-18 야구월드컵은 만 18세 이하 청소년들이 출전하는 국제대회다. 1981년 창설된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가 모태다.

제1회 대회는 1981년 7월 10일부터 18일까지 미국 오하이오주 뉴어크에서 열렸다. 총 11개국이 출전한 이 대회에서 한국은 고려대 1년생 투수 선동열과 선린상고 3학년 투수 김건우가 마운드의 쌍두마차로 나서면서 초대 우승국이 되는 감격을 맛봤다.

제1회 대회는 2개조로 나눠 조별리그를 벌인 뒤 조별 1위 팀이 결승전에 진출해 3전2선승제의 결승전을 벌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만 18세 이하의 선수로 대표팀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고교생이 주축이었지만, 고려대 선동열과 상업은행 구천서가 포함된 것이 특이점이었다. 선동열은 김건우와 같은 1963년생이지만 1월생으로, 흔히 말하는 '빠른 63년생'이었기 때문에 1년 선배가 됐다.

김영덕 감독(당시 천안북일고)이 이끈 역사적인 제1회 세계청소년선수권 한국 청소년대표팀 명단은 다음과 같다.

■제1회 세계청소년선수권 한국 청소년대표팀 명단

●감독=김영덕(북일고) ●코치=백기성(군산상고) ●투수=김건우(선린상) 조계현(군산상) 이재홍(신일고) 선동열(고려대) 이효봉(대전고) ●포수=김동기(인천고) 김상국(북일고) ●내야수=배효욱(대구고) 강기웅(대구고) 구천서(상업은행) 임동구(군산상) 김경호(진흥고) 조양근(북일고) ●외야수=임경택(마산고) 노승구(중앙고) 최종태(배문고) 최계영(부산고) 전응천(경남고)

(낯익은 이름들이 많이 보인다. 조계현은 현 KIA 단장이며, 이효봉은 해설위원이다. 포수 김상국은 삼성 김동엽의 아버지다. 김동기 강기웅 구천서 등 레전드들의 이름도 눈길을 끈다.)

▲ 제1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당시 빛바랜 기념 사진. 선동열(아랫줄 맨 왼쪽)이 눈에 띈다. 김건우는 뒷줄 오른쪽에서 8번째에 서 있다. ⓒKBO 발행 사진으로 본 한국야구사
한국은 예선 첫 경기에서 베네수엘라를 만났다. 첫 출격에 나선 에이스 선동열이 13탈삼진 무실점으로 6-0 완봉승을 거둬 깔끔한 출발을 했다. 이어 캐나다전에서도 선동열과 이재홍이 이어던지며 13-1로 7회 콜드게임승을 거뒀다.

예선 3차전 상대는 네덜란드. 김건우가 선발등판했다. 여기서 일을 냈다. 단 1개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고 5-0 승리를 이끌며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것이었다. 성인 대표팀을 포함해 한국야구사에서 국제대회 사상 최초의 노히트노런이 달성된 순간이었다. 김건우의 노히터 소식은 곧바로 한국으로 전해졌고, 고교 최고 투수였던 김건우는 영웅이 됐다.

결승 진출을 확정한 한국은 예선 최종전에서 약체 스웨덴을 21-0으로 7회 콜드게임승을 거뒀다. 이효봉과 김건우(3회 등판)가 이어 던지며 합작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김건우는 2경기 연속 노히터를 만드는 대활약을 펼쳤다. 그러면서 B조 전승을 기록한 미국과 결승전을 치르게 됐다.

◆3전2선승제, 미국 격파 초대 챔피언의 감격

결승전은 3전2선승제로 치러졌다. 먼저 7월 19일 하루에 2경기를 펼치고, 여기서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다음날 3차전을 치르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현지 시간으로 오후 1시에 열린 결승 1차전. 선동열이 먼저 등판했다. 훗날 국보투수가 되는 선동열은 여기서 완투를 하면서 3-1 승리를 이끌고 한국에 유리한 고지를 만들어줬다. 이날 경기에서 결승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1-1 동점이던 7회초 무사 1·2루에서 구천서의 번트를 상대 1루수가 실책을 하자 이를 틈타 2루주자였던 선동열이 홈까지 내달려 결승점을 뽑았다. 이어 강기웅의 1루수 파울플라이 때 노승구가 홈을 파고들어 추가점을 올리면서 2점차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날 저녁 8시 곧바로 결승 2차전이 펼쳐졌다. 야간경기였다. 선발투수는 김건우. 역시 완투를 펼치며 기대에 부응했다. 결승점은 9회말에 묘하게 나왔다. 9회초까지 2-2로 팽팽히 맞선 뒤 9회말 2사 2루에서 노승구의 빗맞은 땅볼을 미국 3루수가 뒤로 빠뜨리면서 2루주자가 득점을 올린 것. 3-2 끝내기 승리였다. 한국이 먼저 2승을 수확하면서 다음날 경기로 갈 필요도 없이 한국은 초대 우승국이 됐다.

▲ 김건우는 1986년 MBC 청룡에 입단하자마자 18승을 거두며 신인왕에 올랐다. 18승은 역대 투수 데뷔 첫해 최다승으로 남아 있다. 2006년 류현진이 타이기록을 세웠다. ⓒKBO
◆ 38년 전 영웅이 후배 태극전사들에게 전하는 말

김건우는 현재 원주고에서 투수 인스트럭터로 활동하고 있다. 원주고 사령탑은 모교 출신의 안병원(전 태평양~현대~LG)으로, 이번 기장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한국 대표팀 투수코치로 발탁되면서 투수 지도를 김건우 인스트럭터에 부탁해 놓은 상황이다.

김건우는 스포티비뉴스와 통화에서 38년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당시 해외에 나가 본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이다. 해프닝도 많았다. 선동열과 나는 협회에서 한인 민박집을 잡아줘서 숙식을 해결해 다행이었지만, 다른 선수들은 미국인 노부부가 사는 집에 홈스테이 하듯이 머물면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을 했다"며 웃더니 "우리가 초대 대회 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에서 난리가 났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카퍼레이드가 준비돼 있었는데, 목에 화환을 걸고 소방차를 타고 카퍼레이드를 하면서 서울 시내를 돌았던 기억이 난다. 많은 팬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축하해줬다. 당시 국민적 관심사가 되면서 청와대에서도 대표팀을 초청해 격려하기도 했다. 당시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1년 전이라 고교야구 인기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고 회상했다.

한국은 이후 이 대회에서 4차례 더 우승을 차지했다. 1994년 대회에서 이승엽이 대회 홈런왕과 득점왕에 오르고, 김건덕이 최다승과 베스트 나인에 뽑힐 정도로 투타에서 맹활약하면서 사상 두 번째 우승을 수확했다. 그리고 이대호(롯데) 김태균 정근우(이상 한화) 추신수(메이저리그 텍사스) 등 1982년생들이 주축을 이룬 2000년에 3번째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이어 2006년과 2008년 2연패에 성공했다. 2006년에는 김광현(SK)과 양현종(KIA) 이용찬(두산) 이재곤(전 롯데) 김선빈(KIA) 등이 활약했다. 2008년에는 김상수(삼성) 안치홍(KIA) 오지환(LG) 정수빈 박건우 허경민(두산) 등이 주역이었다. 일본은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했지만, 한국은 무려 5차례나 우승한 대회다.

한국은 2008년 이후 이번에 11년 만에 다시 우승을 노린다. 김건우는 "세계청소년선수권은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깊은 대회라 관심이 많이 간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많이 응원하겠다. 우리 후배들이 이번에 6번째 우승의 역사를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조언을 해줄 게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번 대표팀은 이천에서 먼저 소집되고 프로 2군팀과도 연습경기를 했다고 들었다. 기장에서 준비를 많이 했을 것이다. 후배들이 잘 해줄 것으로 믿는다"면서 "큰 대회일수록 신중한 플레이보다는 오히려 자신 있고 과감한 플레이를 하는 것이 좋다. 주자는 주루플레이를 공격적으로 하고, 투수는 승부처에서 도망가지 말고 공격적으로 던져야한다. 물론 힘 있는 외국인타자를 상대할 때는 제구에 신경을 써서 투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가슴에 달린 태극마크에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모두들 부상 없이 좋은 경험을 얻었으면 좋겠다"며 박수를 보냈다.

한편, SPOTV와 SPOTV2, SPOTV+는 이번 대회 한국의 전경기를 포함해 주요 경기를 생중계할 예정이다. 한국 경기 전후로는 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들이 출연해 생생한 정보와 분석을 전하는 프리뷰와 리뷰 방송도 진행된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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