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단 감독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지네딘 지단 감독은 2016년 1월 감독으로 1군 무대에 데뷔했다. 처음 맡은 클럽은 '친정 팀'이라곤 하나 유럽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며, 스타플레이어가 즐비한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였다.

우려가 적잖았다. 하지만 지단 감독은 2년 반의 첫 임기 동안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CL) 3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1회 우승을 차지하며 구단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지단의 성공을 함께 만든 레알 선수단에는 스타플레이어로 가득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는 세계 최고의 선수였고, 가레스 베일 역시 지금과 비교해 무게감이 상당했다. 카림 벤제마, 루카 모드리치, 토니 크로스, 세르히오 라모스, 마르셀루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전 포지션에 포진했다.

이 때문에 지단의 성공이 선수 덕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지단 감독은 기존에 구성된 최고의 선수단을 물려받았고, 전술에서도 전임 카를로 안첼로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지단이 시도한 전술 변화는 분명 있었다. CL을 예로 들면 2015-16 시즌의 경우 'BBC 삼총사(벤제마, 베일, 호날두)'를 앞세워 우승을 해냈고 2016-17, 2017-18 시즌에는 이스코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해 프리롤을 부여하는 4-3-1-2 전형으로 유럽 정상에 섰다. 베일이 잦은 부상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적절한 변화였다. 하지만 지단 감독의 역량보단 화려한 선수 구성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18-19 시즌을 앞두고 지단 감독이 팀을 떠났지만 복귀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레알이 지독한 부진에 시달리면서 2019년 3월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2019-20 시즌은 지단 감독에게 진짜 시험대였다. 세대 교체를 하면서 팀을 재조직해야 하는 과제가 떨어졌다. 호날두는 이미 유벤투스로 떠났고 베일은 부상과 함께 기량이 떨어졌다. 마르셀루 역시 노쇠화 기색이 역력했다.

지단 감독의 현재까지 성적은 '합격'이다. 적절한 전술적 시도, 경기 내에서 유연한 전술 변화로 팀에 승리를 안기고 있다. 시즌 초반 부진한 공격력에 고민이 있었지만, 다양하게 선수 조합을 하며 위기를 넘고 있다. 에덴 아자르가 여전히 부상에 시달리지만 최근 21경기에서 무패 행진(16승 5무)이다. 최근 8경기에서는 8승(승부차기 승리 포함)을 따내면서 상승세를 탄다. 실점은 단 3실점이며 17골을 넣었다. 경기당 2골을 넘는 득점력이다. 

▲ 페데리코 발베르데(왼쪽)이 로지와 공을 다투고 있다.

◆ 미드필더 5명 구성, 지단의 전술가적 면모

레알은 지난 2일(한국 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2019-20 라리가 22라운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이하 AT마드리드)에서 1-0으로 이겼다. 승점 3점을 추가, 49점으로 선두를 달렸다.

아틀레티코전에서 꺼낸 전술은 이미 한차례 선보였던 '변칙'이었다. 지난달 열렸던 2019-20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결승전에서 레알은 승부차기 끝에 AT마드리드를 꺾고 우승했다. 이날 지단 감독은 무려 5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동시 기용했다. 카세미루, 모드리치, 크로스, 이스코, 페데리코 발베르데가 동시에 출전했다. 이스코와 발베르데가 측면에 배치되고, 중앙에는 카세미루-모드리치-크로스가 출격했다. 전형적인 측면 공격수는 한 명도 출전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보였던 전술은 예상 외의 효율을 냈다. 미드필더 5명은 자유롭게 중앙과 측면을 오갔다. 동료들의 움직임에 맞춰 공간으로 이동하고, 또 뒤에 생기는 공백을 메우면서 스위칭플레이를 했다. 자연스럽게 중앙으로 쏠린 측면은 풀백들의 전진으로 메웠다. 풀백이 공격에 가담한 공간도 미드필더들이 적절히 메웠다. 전방 압박도 과감하게 시도했다.

정형화된 포메이션은 아니었지만, 공수 균형을 영리하게 잡으면서 주도권을 유지했다.  미드필더 성향의 선수들이 있어 경기 흐름을 잘 읽었고, 서로의 움직임이 유기적으로 섞였기 때문이다. 레알은 65.1%의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며 경기를 주도할 수 있었다.

AT마드리드는 지단의 '미드필더 5명 기용'에 비교적 잘 대처했다. 4-4-2 전형으로 중앙의 공간을 좁혔다. 전반전 레알은 단 한 차례 유효 슈팅만 기록했다. 그마저도 모드리치의 중거리 슈팅이었다. 두 줄로 쌓은 AT마드리드 수비 공략에 애를 먹었다는 증거였다.

▲ 마드리드 더비의 승자 레알마드리드

◆ 과감한 하프타임 교체와 전술 변화

선수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전술적 문제였다. 각각 개성이 다른 선수들을 조합해 팀을 만드는 것이 감독의 몫. 지단은 자신의 구상이 먹히지 않자 과감한 전술 변화를 취했다. 

"경기장에서 보이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선수들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다. 내 책임이다. 이스코와 토니 크로스를 바꿨지만, 다른 선수 누구라도 바꿀 수도 있었다. 측면 플레이를 더 원했고, 전방에서 압박할 선수가 필요했다. 선수들의 잘못이 아닌 내 잘못이다." - 지네딘 지단 감독

후반 시작과 함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와 루카스 바스케스가 투입됐다. 이스코와 크로스가 벤치로 물러났다. 미드필더 2명을 빼놓고 전형적인 윙플레이어 2명이 들어왔다. 목적은 확실했다. 중앙에 밀집한 AT마드리드 측면 공간을 공략하겠다는 뜻이었다. 또, AT마드리드 수비 좌우 간격을 벌려 중앙에서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할 수도 있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비니시우스는 왼쪽 측면에서 계속해서 시메 브르살리코를 공략했다. 페를랑 멘디가 이를 지원하면서 왼쪽이 활기를 띄었다. 멘디는 후반전 내내 공격적으로 움직였다. 멘디가 전진한 공간은 발베르데가 커버하면서 공수 밸런스를 맞췄다.

후반 11분 득점 장면은 지단 감독의 전략이 완벽히 맞았던 장면이다. 비니시우스가 측면으로 넓게 벌려서서 공을 받자 브르살리코가 라인 쪽까지 따라 나왔다. 멘디 역시 공격에 가담한 상황. 두 명가 좌우로 위치를 바꾸면서 AT마드리드의 수비진에 균열이 생긴다. 측면을 넓게 활용한 덕분에 이른바 하프스페이스에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멘디의 크로스는 그대로 벤제마의 결승 골로 연결됐다.

레알은 적극적인 전방 압박은 유지하면서 AT마드리드를 압박, 경기를 매조졌다. 이번 시즌 레알이 잘 보여주는 경기 운영이다. 

▲ 사이드라인 쪽에 서 있던 비니시우스가 중앙으로 이동하고, 멘디가 측면으로 이동하면서 아틀레티코의 수비진을 흔든다(위), 아틀레티코의 중앙 수비와 측면 수비의 간격이 벌어지자 멘디가 침투한다. 여기서 벤제마의 골이 터진다.(아래)

◆ 세대 교체와 전방 압박

전방 압박 덕분에 수비력도 향상됐다. 젊은 피가 대거 수혈된 레알은 최전방 압박 강도를 높였다. 이번 시즌 22경기에서 13실점 중이다. 2017-18 시즌 경기당 평균 10.4개, 2018-19 시즌에는 평균 10.2개의 슈팅을 허용했다. 이번 시즌의 경우 22라운드까지 경기당 8.3개의 슈팅을 허용했다. 기록 자체가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상대를 레알 골문에서 먼 쪽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레알의 변화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가 발베르데다. 중원의 발베르데는 기술을 갖췄지만 어마어마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전방위적으로 뛴다. 지난해 12월 열린 FC바르셀로나와 이번 시즌 첫 겨루기에서도 발베르데는 중원에 선발 출전해 바르사를 압박하면서 맹활약했다. AT마드리드전에서도 발베르데는 활발하게 뛰며 풀타임 활약했다.

지단 감독의 전술적 면모는 올 시즌 본격적으로 보이고 있다. 시즌 초반은 부진한 공격력에 승점을 잃기도 했지만 이젠 안정기로 향하고 있다.

슈퍼스타는 팀에 우승을 안길 수 있는 선수다. 하지만 우승하는 팀에 슈퍼스타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단 감독은 팀 상황에 맞게 다시 한번 단단한 팀을 구성, 우승을 향해 가고 있다. 지단 감독이 이번 시즌 주요 대회에서 우승에 성공한다면 그를 향해 따라붙었던 '선수 덕' 논란은 사그라들 전망이다. 올 시즌의 레알은 화려하기보다는 단단한 팀이 됐다.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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