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당시 봉준호 감독 ⓒ게티이미지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어느 때보다 뜨겁게 주목받고 있다. 한국영화 최초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무려 6개 부문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다. '기생충'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대중과 평단을 모두 사로잡은 걸작이지만, 좋은 작품이 만들어졌다 해도 이 순간이 절로 오지는 않는다. '아카데미 캠페인'이라 불리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을 위해 여러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조직적으로 캠페인을 벌인다. 한국영화는 '기생충'을 통해 이를 처음 경험했다.

아카데미상은 할리우드 최고 권위의 상이자 나아가 업계의 분위기를 선도하는 강력한 이벤트다. 오스카 트로피는 영광 이상의 영향력과 흥행 수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트로피의 주인을 결정하는 건 전세계 8000명 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들. 배우, 제작자, 감독, 작가, 스태프, 마케터를 아우르는 영화계의 오피니언 리더들이다. 이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선거운동 버금가는 '아카데미 캠페인'이 매번 벌어진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야 전담팀이 상설 조직인 데다, 강력한 현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막대한 자금을 들인다. 지난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과 감독상, 촬영상을 수상한 넷플릭스의 '로마'는 최소 2500만 달러, 많게는 6000만 달러를 썼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봉준호 감독 ⓒ게티이미지

비 영어영화인데다 비 할리우드영화인 '기생충'은 출발점부터 불리한 데다 한국영화는 물론 북미배급사 NEON도 대규모 아카데미 캠페인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공격적이고도 영리하게 캠페인을 펼쳐나갔다. 특히 '기생충' 투자배급사 CJ ENM의 역할이 상당하다. 영화사업본부 해외배급팀이 전담해 '기생충'의 아카데미 캠페인 전체 전략을 총괄했다.

관계자는 "액수는 밝히기 어렵다"고 했지만 감독 배우의 체류비와 각종 프로모션, 홍보와 광고에 집행되는 예산까지 책임졌다.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의 지원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CJ ENM은 '마더'(2009) '설국열차'(2013), '기생충'까지 지속적으로 투자하며 봉준호 감독과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건강 문제로 5년을 두문불출하던 이미경 부회장은 지난해 칸에 참석했고, 지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봉준호 감독과 함께 한 모습이 중계에 포착되기도 했다. '기생충'의 책임 프로듀서이자 아카데미 회원이기도 한 그의 막강한 인맥과 파워는 외신도 주목하는 포인트다. 이 부회장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CJ ENM은 캠페인이 본격화되기 전인 작년 여름부터 북미 배급사 NEON과 함께 전략을 가다듬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아카데미 전문 홍보회사를 추가 고용하는 등 일찌감치 준비에 나섰다. 무엇보다 이들은 '기생충'이란 콘텐츠의 힘을 확신하고 아카데미 캠페인 목표 자체를 '한국 최초 외국어 영화상 노미네이션'이 아니라 '외국어 영화상을 넘어선 주요 본상 노미네이션'으로 설정하고 움직였다.

본격적인 캠페인은 '기생충'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한국 대표로 선정된 지난해 8월 말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10월 11일 북미 개봉과 함께 '기생충' 바람이 할리우드에서 불기 이전부터다. 외국어영화로는 이례적이고도 자신감있는 행보였다. 물론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고, 작전은 적중했다. '기생충'은 현지시간 기준 오는 9일(한국시간 10일 오전) 열리는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 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라 할리우드를 더 깜짝 놀라게 할 준비를 마쳤다.

▲미국배우조합상(SAG) 수상에 기뻐하는 봉준호 감독 ⓒ게티이미지
그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의 역할이야 더 말할 게 없다. 상대적으로 예산이 부족하니 '기생충' 최고의 스타가 직접 달리고 또 달렸다. 주요 외신과 인터뷰하고 수없이 관객과 대화에 나섰고, 여러 영화계 오피니언 리더가 주최하는 리셉션에도 참석했다. '기생충'이 여러 상을 수상하면서 그 소탈한 매력과 마음을 사로잡는 입담도 늘 화제를 몰고다녔다. 통역을 맡은 샤론 최(최성재)가 다 화제가 됐을 정도다. 특히 지난 1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면서 그는 "1인치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이 훨씬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우리는 한가지 언어만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영화"라는 멋진 소감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기생충'에 대한 호감이 높아진 건 당연지사. 여기에 송강호를 비롯한 배우들도 바쁜 시간을 쪼개 힘을 보탰다. 봉 감독과 내내 함께 아카데미 레이스를 펼친 송강호가 '쌍고피가 터졌다'고 호소했을 정도의 강행군이었다.

CJ ENM관계자는 "물론 뛰어난 작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더불어 예산, 인력, 글로벌 네트워크와 공격적 프로모션이 모두 결합된 아카데미 캠페인은 복합적 글로벌 프로모션"이라며 "한국영화 최초로 진행된 아카데미 캠페인 노하우가 한국영화산업에 내재화한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로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왼쪽부터 미국배우조합상(SAG) 앙상블상 수상 이후 함께 포즈를 취한 송강호, 박소담, 봉준호 감독, 이정은, 최우식, 이선균.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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