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정유진 기자] '설국열차'가 지나간 듯 꽁꽁 얼어붙은 이 날씨에 충무로의 '괴물'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를 집어삼켰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무려 네 번이나 무대에 올라, 각자 다른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10일 오전(현지시간 9일 오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을 수상, 이번 아카데미에서 무려 최다 4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이날 봉준호 감독은 네 번 무대에 올랐고, 세 번의 소감을 밝혔다. 봉준호 감독의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소감은 전 세계 영화인들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영광의 트로피를 거머쥔 봉준호 감독이 어떤 소감으로 아카데미를 더더욱 뜨겁게 했는지 모아 봤다.
봉준호 감독은 제일 먼저 각본상으로 무대에 올랐다. 이 각본상은 101년 한국영화 역사에서 아카데미 시상식 최초 수상이라는 의미를 더한다. 봉준호 감독 역시, "한국에 특별한 일"이라며 소감을 전했다.
"생큐. 그레이트 아너.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다. 국가를 대표해서 시나리오를 쓰는 건 아닌데. 이건 한국에 있어 특별한 일이다. 언제나 많은 영감을 주는 제 아내에게 감사하고 멋진 화면으로 옮겨 준 '기생충' 배우에게도 감사드린다"(각본상 수상 후)
'기생충'이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으면서,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의 초대 수상작이 됐다. 비 영어 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부문이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부터 외국어영화상에서 명칭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 역시 초대 수상작이라는 의미에 남다른 감회를 밝히면서, '기생충' 배우들을 하나하나 호명해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오스카의 외국어 영화상이 국제 장편 영화상으로 바뀐 뒤 받는 첫 상이라 더 의미가 있다. 이 상이 상징하는 바가 있는데 오스카가 추구하는 방향에 지지와 박수를 보낸다. 함께 만든 배우와 멋진 스태프가 여기에 와있다. 원더풀한 모든 예술가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오늘 밤 술을 마실 준비가 됐다. 내일 아침에 보자."(국제장편영화상 수상 후)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감독상 부문에서 대만의 이안 감독에 이어 2번째 아시아인 수상자가 됐다. 또한 비영어 영화가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것은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기생충'이 처음이다. 세 번째로 아카데미 무대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놀라운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사를 표하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함께 경합한 '아이리시맨' 마틴 스코세이지, '조커' 토드 필립스, '1917' 샘 멘데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등 쟁쟁한 할리우드 감독들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아까 국제영화상을 수상하고 오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어려서 공부를 하며 마음에 새긴 말이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하신 말이다.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 해도 영광인데 상을 받게 될 줄 전혀 몰랐다. 저의 영화를 관객들이 모를 때 제 영화를 항상 리스트에 꼽아준 쿠엔틴(타란티노) 형님이 계신데, 감사드린다. 생큐, 아이 러브 유. 같이 후보에 오른 감독 모두 제가 좋아하는 감독들인데, 오스카에서 허락한다면 텍사스 전기톱으로 다섯 개로 잘라서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생큐, 내일 아침까지 마시겠다"(감독상 수상 후)
결국 '기생충'은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품에 안으면서, 피날레를 장식했다. 비영어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 역시,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기생충'이 최초다. 작품상 호명에 네 번째로 무대에 올라선 봉준호 감독은 박수를 치면서, 수상 쾌거를 누렸다.
이 같은 봉준호 감독의 익살스러우면서 능란한 말솜씨는 아카데미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가 위트 넘치는 소감으로 아카데미 4관왕 영화감독의 남다른 센스를 그대로 증명한 것이다.
이처럼 봉준호는 '기생충'을 통해 예술성과 대중성을 널리 인정받았다. '기생충'은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칸 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뿐만 아니라, 한국인 감독 최초로 아카데미 6개 부문 수상후보에 이름을 올려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수상하면서 무려 4관왕에 올랐다.
이로써 '기생충'은 65년 만에 탄생한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 동시 수상작이 됐고, 외국어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또한 '기생충'은 101년 한국영화 역사에서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은 이번이 최초로 한국 영화계에도 큰 의미를 가진다.
1969년생 봉준호는 2000년 '플란다스의 개'로 31세라는 이른 나이에 장편영화 데뷔했다. 이후 '살인의 추억'으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봉준호 감독은 '괴물'로 1300만 명 관객을 동원해 한국 대표 감독 반열에 올라섰다. 또한 '마더'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으로 세계적인 거장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스포티비뉴스=정유진 기자 u_z@spotv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