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리 포스터. 제공ㅣ판시네마
[스포티비뉴스=강효진 기자] 미국 영화 시상식을 휩쓸고 온 화제작 '미나리'를 보고 난 첫 인상은 '이렇게 한국적이라니'였다.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는 역시 국경과 문화적 차이를 넘어 누구에게나 따뜻한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 새삼 머리를 울리는 작품이다.

18일 오후 2시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국내 개봉 전 첫 공개됐다.

'미나리'는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미국 아칸소에 이주한 한국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가족들에게 뭔가 해내는 걸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부터 그런 제이콥을 믿고 있지만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함께 짊어지려는 엄마 모니카(한예리), 의젓한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 몸이 약한 장난꾸러기 막내 아들 데이빗(앨런 김), 그리고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낯선 땅에서 하루하루 뿌리 내리며 살아가는 특별한 여정을 담았다.

'미나리'의 시작은 미국 아칸소로 이주한 이들 가족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병아리 암수 감별사로 오랫동안 일해온 제이콥은 지긋지긋한 병아리 똥구멍 대신 거대한 농장을 일구는 꿈을 꾸며 아칸소의 비옥한 땅을 개척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한다. 하지만 모니카는 아이들이 자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아칸소 환경에 실망하고, 한동안은 제이콥을 믿고 묵묵하게 일하지만 좀처럼 풀리지 않는 상황에 결단을 내리고 아칸소를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이런 상황에 두 사람의 갈등을 임시 봉합하기 위해날아온 순자는 이들 가족의 고단하고 루틴한 일상을 깨는 신선한 매력으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낯선 할머니의 등장에 앤과 데이빗은 "진짜 할머니 같지 않다"고 투덜대지만 무심한 듯 시원한 한 마디를 던지고, 때로는 거침없고, 따뜻하고, 다정한 면모에 점차 스며든다. 세대 차이도 모자라 문화 차이까지 있던 앤·데이빗과 순자의 가족애가 농작물이 자라듯 씨앗에서부터 서서히 열매를 맺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만은 같은 제이콥과 모니카의 갈등은 그 어느 편도 들 수 없는 난제다.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에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있는 제이콥의 꿈도, '망할 것 같은 미래'를 막기 위해 일찌감치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찾길 바라는 모니카의 걱정도 이해가 간다. 비단 이민자 뿐 아니라 척박한 환경에서 가족의 미래를 꿈꾸며 노력한 수많은 부모님들의 고충이 떠오르는 모습이다.

영화의 곳곳은 미국 시상식을 휩쓸고 왔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떠올릴 만큼 눈에 띄게 한국적인 정서로 가득 차있다. 한국어 대사, 한국 식재료, 한국 채소, 한국 화투, 한국 방송까지. 그 시절 이민 1세대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민소매 러닝셔츠 한 장을 걸친 다소 가부장적인 모습의 데이빗은 몇몇 관객들에게 어느 순간 '우리집 아빠'와 겹쳐보이기도 할 것이다.

제목이기도 한 '미나리'는 곱씹을수록 상징적이다. 순자는 "아무데나 심어도 잘 자란다. 여러 곳에 쓸 수 있다"며 "원더풀 미나리, 미나리는 원더풀"을 외친다. 마법의 주문처럼 이 노래는 손자 데이빗에게도 용기를 심어주고, 원더풀한 미나리들은 딱히 신경써서 가꾸지 않아도 푸르르게 군락을 이루며 자라난다.

반면 물을 퍼부어가며 가까스로 길러낸 제이콥의 농작물은 좀처럼 자리잡지 못하는 이들 가족과 운명을 함께한다. 토네이도에 날아갈 수도 있는 비 새는 콘테이너와 구멍난 심장처럼 빈틈 많은 삶이다. 그렇지만 어느 새 개울가를 뒤덮은 미나리들의 강한 생명력처럼, 서서히 삶의 구멍을 메꿔가며 언젠가는 이들 가족도 낯선 땅에서 탄탄하게 뿌리내릴 거라는 희망이 느껴진다.

3월 3일 개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15분.

스포티비뉴스=강효진 기자 bestest@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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