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리안 좀비' 정찬성 ⓒ한희재 기자
▲ '코리안 슈퍼 보이' 최두호 ⓒ한희재 기자

첫인상

"항상 화끈하게 싸워 팬들이 좋아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내로라하는 세계 페더급 강자들이 모여 있는 WEC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다. WEC에서 (정)찬성이 형처럼 화끈하게 싸우는 것이 소원이다."

2010년 5월 20일. 종합격투기 데뷔 약 7개월 만에 나와 처음 가진 인터뷰에서 앳된 최두호(25, 부산 팀 매드/사랑모아 통증의학과)는 이렇게 말했다. 그해 4월, 당시 경량급 최고의 격전지였던 WEC의 데뷔전에서 레너드 가르시아에 맞서 '코리안 좀비' 정찬성(29, 코리안 좀비 MMA)이 보여 준 격렬한 난타전은 신인 최두호의 심장을 뛰게 했다.

그때만 해도 최두호를 미래의 UFC 파이터로 보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최두호' 이름 자체가 알려지지 않았을 시기였다. 당시 종합격투기 전적은 2승 무패, 아직 관심의 대상은 되지 못 했다.

약 한 달 뒤인 2010년 7월, 정찬성의 WEC 두 번째 경기가 확정되면서 인터뷰를 가졌다. 놀랍게도 정찬성은 이제 막 꿈틀거리기 시작한 최두호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다음 누가 미국 무대에 진출하면 좋을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정찬성은 주저 없이 최두호를 꼽았다. 이미 이름이 알려진 쟁쟁한 선수들이 있었던 터라 그 대답은 상당히 의외였다.

"최두호가 왔으면 좋겠다. 얼마 전 센고쿠(2010년 6월 27일 우수다 이쿠오에게 판정승)에서 거둔 승리에 놀랐다. 솔직히 난 100% 패배를 예상했다. 실력과 경험에서 상대에게 밀리는 데다가 경기를 며칠 앞두고 급하게 출전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로 잘했고 닮고 싶은 면도 있었다. 어린 나이에 정말 대단하고 앞으로가 너무 기대된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이후 정찬성은 2010년 9월 WEC에서 첫 KO패의 쓴잔을 마신 뒤 2011년 UFC로 옮겨 맹활약했다. 그해 최두호는 이시다 미츠히로와 오비야 노부히로를 잡는 등 만나는 상대를 족족 쓰러트리며 UFC 진출 의지를 강하게 어필했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만한 재목으로 평가 받기 시작했다. 둘이 UFC에서 함께 활약하는 장면을 머지않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계약 문제로 최두호의 UFC 진출은 생각보다 늦어졌고 정찬성이 활동을 중단하며 엇갈렸다. 최두호가 2013년 11월 계약한 뒤 2014년 데뷔전을 치를 때 즈음, 정찬성은 사회 복무 요원이 됐다.

2016년, 이제 그런 두 선수가 드디어 뭉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같은 단체의 같은 체급에서 경쟁하게 됐다. 정찬성은 2년 동안 사회 복무 요원으로 근무한 끝에 지난달 19일 소집 해제를 신고했다. 정찬성은 내년 3월 복귀를 목표로 몸만들기에 나섰으며, 곧 벤 헨더슨의 소속 팀 MMA 랩에서 미국 전지훈련도 실시할 예정이다.


존경과 경계 사이

국내 경량급 파이터 최초로 미국 메이저 무대에 입성해 세계적인 강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정찬성을 최두호는 자신의 롤모델로 정했다. 2010년 정찬성이 WEC에 진출할 때부터 미국 진출의 꿈을 키웠고, UFC에서 활약하는 선배를 보며 그 길을 따라가겠다고 다짐했다.

2011년 5월 최두호는 내게 "찬성이 형은 UFC에서도 드물게 자신이 가진 능력을 다 발휘하는 선수다. 실전에서 큰 기술을 펼치는 것을 보면 멋있고 한편으로 부럽다. 형을 보면 나도 얼른 옥타곤에 서고 싶어진다. 같이 훈련도 하고 싶다"고 했다.

기사가 나가면서 서로에 대한 생각을 알게 된 둘의 사이는 금방 돈독해졌다.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얼굴을 볼 기회는 적었지만 서로의 존경심 때문에 금세 친밀한 사이로 발전했다. 평소 서로를 인정하며 생긴 호감이 함께 훈련한 뒤 더 커졌다. 정찬성은 최두호를, 최두호는 정찬성을 응원했다. 한 명의 활약은 다른 한 명에게 기쁨, 자신감, 동기부여를 줬다.

정찬성은 2014년 11월 UFC 데뷔전을 18초 KO승으로 장식한 최두호에 대해 "두호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이기는 것 자체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선수는 실력으로 말한다는데, 그것을 제대로 보여 준 두호가 너무 멋있다. 난 예전부터 두호의 팬이었다. 벌써부터 다음 경기가 기대된다"며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정찬성이 그랬던 것처럼, 최두호 역시 매 경기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남겼다. UFC 두 번째 경기와 세 번째 경기 역시 상대를 1라운드에 끝내 버렸다. 특히 지난 7월 티아고 타바레스를 꺾은 뒤 관심이 뜨거웠다. 그를 더 이상 신예로 바라보지 않았다. 격투기 천재, 무서운 신성으로 인정 받았다. 차기 챔피언감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최두호가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찬성과 관계도 새 국면을 맞았다. 당사자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많은 이들은 둘을 동일선상에 놓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제 2의 정찬성'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 최두호는 "기분이 좋다. 개인적으로 찬성이 형의 팬이고 친한 사이다. 그러나 같은 체급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언제까지 제 2의 정찬성이 될 수 없다. 나만의 수식어가 생겼으면 좋겠다"며 정중하게 바람을 나타냈다. '존경심'과 '친밀감'만 있던 둘의 관계에 어쩔 수 없이 '경쟁심'이 추가된 듯했다.

경계가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정상이 아닐 터. 정찬성에게도 최두호의 행보는 큰 자극이 됐다. 둘의 경쟁은 상대를 꺾고 넘어서는 개념이 아니다. 정찬성은 "(타이틀전이 아닌 이상)우리가 싸울 일은 없겠지만 난 두호에게 자신 있게 말한다. 너에게 뒤처지지 않을 거라고. 두호는 동기부여를 주는 고마운 경쟁자다. 우린 서로 진심으로 잘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매력 만점 실력자

정찬성이 세계의 팬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특유의 정신력으로 보는 이들의 심장을 뛰게 만든다. 뜨겁게 치고받는다. 한순간 경기를 끝내는 기술의 결정력이 돋보인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은 누구나 하지만 극도로 숨을 쉬기 어렵거나 충격을 많이 받은 상태, 즉 한계를 이겨내는 선수는 많지 않다. 아무리 힘들어도 좀비처럼 앞으로 나아가 결국 자신의 흐름으로 경기를 뒤집는 세계 최고의 투지를 갖춘 선수가 바로 정찬성이다.

반면 최두호에겐 천부적인 킬러의 재능이 있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간결하고 깔끔하다. 흐트러진다거나 투박하다는 느낌은 조금도 찾을 수 없다. 딱딱 끊어서 치는 타격 자세와 카운터를 꽂는 예리한 타이밍은 한 방으로 적을 암살하는 저격수를 떠올리게 한다.

어떤 무대에서 누구와 맞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 역시 일품이다. 지난 세 경기에서 최두호는 웃으며 옥타곤에 들어섰다가 웃으며 퇴장했다. 평균 경기 시간은 1분 31초, 그런 그를 점차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둘은 각자의 매력으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정찬성은 이미 타이틀 도전권을 받았고 세계 랭킹 3위의 위치를 밟은 바 있다. 최두호는 '1라운드 KO쇼'를 선보이며 상위권을 향해 무섭게 치고 올라가고 있다. 오는 12월 11일 UFC 206에서 컵 스완슨을 넘어선다면 5위권에 진입, 본격적으로 대권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

정찬성에겐 지난 2년이라는 사회 복무 기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자신을 괴롭혔던 어깨 부상에서 회복했으며, 기술을 보완했고 신무기 개발까지 마쳤다. 복귀를 위해 조용히 칼을 갈았다. 최근 정찬성과 훈련했던 선수들은 입대 전보다 강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최상위권에서 활약했던 만큼 랭커들과 경쟁하기까지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는 정찬성이 크게 활약했고, 2014년 말부터 현재까진 최두호의 기세가 눈부시다. 그리고 서로에게 힘이 되었던 두 선수는 같은 전장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함께 뛴다. 국내 선수에게 느껴지는 기대감, 이보다 높았던 적이 없다.

필자 소개- 전 엠파이트 기자. 현 UFC 한국 공식 홈페이지(kr.ufc.com)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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