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한반도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남과 북이 공동 응원을 펼쳤다. 북한은 꽤 큰 규모의 응원단을 평양-베이징 국제 열차 편으로 중국으로 보냈다.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편집국장] 육상에서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도 어김없이 남자 100m가 최고의 관심 종목이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했던 칼 루이스(미국)와 벤 존슨(캐나다)은 서울 올림픽 1년 전인 1987년 로마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순위가 바뀌어 존슨이 1위, 루이스가 2위가 됐다. 그런데 이 순위는 존슨이 이때에도 금지 약물을 사용했다고 시인해 존슨은 실격되고 루이스가 1위로 정정됐다. 서울 올림픽 준결승에서 루이스는 9초97, 존슨은 10초03을 기록했다. 그러나 결승에서는 또 순위가 뒤집혔다. 존슨이 9초79의 놀라운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고 루이스는 9초92였다. 존슨은 "앞으로 이 기록은 50년, 아니 100년 안에 깨지지 않을 것"이라며 의기양양해 했지만 불과 사흘 뒤 금지 약물인 스태노졸롤을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 메달을 박탈당했다. 루이스는 100m에 이어 멀리뛰기에서도 8m72로 우승해 2관왕이 됐다. <13편에서 계속>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스포츠가 맞은 첫 번째 대규모 국제 대회는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였다. 베이징은 18년 뒤인 2008년 올림픽을 열게 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베이징의 관문인 서우두국제공항은 우리나라 지방 공항 정도의 규모였다.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이후 새 중국이 개최한 가장 큰 규모의 국제 대회이자 국가 행사였다. 

한국과 중국은 한때는 총부리를 겨눈 적대국이었다. 그리고 베이징 아시아대회가 열린 1990년 9월 현재 국교가 열리지  않고 있었다. 이 대회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과 취재진은 여권 대신 베이징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회가 발급한 대회 참가 증명서를 들고 입국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조심스럽게 접근하던 한국과 중국은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중국이 대규모 선수단과 취재진을 보내고 한국이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에 임원 142명, 선수 552명 등 694명의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이 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은 베이징으로 직항하지 않고 우회하는 노선을 이용하긴 했지만 제 3국을 경유하지 않고 전세기로 중국에 들어갔다. 중국으로 가는 하늘 길을 뚫은 것이다.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는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제외한 아시아올림픽평의회 37개 회원국 6천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가운데 9월 22일 베이징 노동자체육장에서 막을 올렸다. 

한국은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성행하는 경기인 카바디를 뺀 28개 종목에 출전해 애초 목표치인 금메달 62개에는 다소 미치지 못했지만 금메달 54개와 은메달 54개, 동메달 73개로 일본(금 38 은 60 동 76)을 따돌리고 중국(금 183 은 107 동 51)에 이어 2회 연속 종합 순위 2위를 차지했다. 
 
1982년 뉴델리 대회 이후 8년 만에 출전한 북한은 금메달 12개와 은메달 31개, 동메달 39개로 4위에 올랐다. 1986년 서울 아시아 경기대회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그리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은 북한은 10여년 사이 한국과 경기력의 차이가 더 벌어져 더 이상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이 대회에서는 ‘남북 대결’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한국과 북한은 각자 출전했지만 공동 응원을 펼치는 등 다른 어느 대회보다 우호적인 분위기를 보였다.    

한국 스포츠사에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는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육상은 그리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김봉유가 남자 800m에서 1분49초48로 류태경을 0.52초 차로 제치고 1위로 골인해 트랙과 필드에서 유일한 금메달을 획득했다. 남자 마라톤에서는 서울 올림픽 성화 점화자인 김원탁이 2시간12분56초로 일본의 시미즈 사토루(2시간14분46초)와 북한의 최철호(2시간18분18초)를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중국은 육상 43개 세부 종목 가운데 29개의 금메달을 휩쓸었다. 일본 7개, 카타르 3개, 한국 2개 등 나머지 나라들이 획득한 금메달(14개)의 두 배가 넘었다. <1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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