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소연 ⓒ GettyImages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김연아(26)가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뒤 한국 스포츠에서 '포스트 김연아'라는 말은 꾸준하게 나왔다.

김연아 이후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얻은 이는 자연스럽게 '포스트 김연아'라는 명칭이 붙었다. 그러나 객관적인 국제 대회 성적과 점수를 볼 때 '포스트 김연아'에 어울리는 이는 없었다.

한국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은 김연아가 빙판을 떠난 뒤 암흑기에 빠졌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시니어 그랑프리 대회 여자 싱글에서 메달을 딴 이는 김연아 이후 맥이 끊어졌다. 한국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맏언니 박소연(19, 단국대)도 아직 시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메달이 없다.

박소연은 동갑내기 라이벌이었던 김해진(19, 이화여대)과 소치 동계 올림픽 무대에 섰다. 처음 서는 올림픽에서 그는 21위에 그쳤다. 2014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9위에 오르며 김연아 이후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10위권 안에 진입한 선수가 됐다. 2014년 시니어 무대에 본격적으로 데뷔했지만 박소연의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박소연은 유망주 시절 외롭지 않았다. '1997년생 유망주 라인'으로 불렸던 경쟁자들이 그의 주변에 있었다. 이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성장하면 한층 뛰어난 선수가 될 것으로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현재 1997년에 태어난 기대주들 가운데 태극 마크를 달고 있는 이는 박소연밖에 없다. 선수 대부분이 체형 변화와 부상을 이기지 못했다. 박소연도 이런 위기가 있었지만 잘 이겨냈다. 2010년 최연소로 태극 마크를 단 박소연은 어느덧 6년 넘게 국가대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박소연은 2014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 다음으로 10위에 든 것은 물론 총점 170점을 넘었다. 그리고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막을 내린 2016~2017시즌 ISU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4차 대회 프랑스 트로피에서 개인 최고 점수인 185.19점을 받으며 5위에 올랐다. 그는 김연아 다음으로 국제 대회에서 170점에 이어 180점 벽을 넘은 선수가 됐다.

▲ 박소연 ⓒ GettyImages

밝고 긍정에 찬 마음가짐이 꾸준한 성적으로 이어져

어린 시절부터 박소연은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던 '긍정 에너지'가 있었다. 그는 훈련 도중 꾸중을 들어도 마음에 담지 않고 더 씩씩하게 집중했던 소녀였다. 고질적인 부상은 늘 그를 괴롭혔다. 이는 대회에서 좋지 않은 성적으로 이어졌지만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훈련 때는 잘하지만 실전 경기에서 클린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들었다. 실제로 지난 시즌 박소연이 실전 대회에서 클린에 성공한 확률은 매우 드물었다. 박소연은 지난 1월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전국종합선수권대회)에서 5위에 그쳤다. 그가 주춤할 때 '피겨 신동' 유영(12, 문원초)이 우승을 차지했고 임은수(13, 한강중)와 김예림(13, 도장중)이 등장했다.

포스트 김연아라는 명칭은 어느덧 이들에게 이동했다. 올 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그랑프리 시리즈를 앞두고 출전한 국제 대회 성적도 좋지 않았다. 8월 초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안트로피 여자 싱글 시니어부에 출전한 그는 128.95점으로 4위에 그쳤다. 지난달 출전한 ISU 챌린저 대회인 롬바르디아 트로피와 네벨혼 트로피에서는 각각 5위와 4위에 만족해야 했다.

하나둘씩 사라진 그의 동갑내기 친구들처럼 박소연이란 이름도 잊혀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박소연은 올 시즌 부활했다. 지난달 16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6년 전국남녀피겨스케이팅회장배랭킹대회 여자 싱글 1그룹 쇼트프로그램에서 클린에 성공하며 쟁쟁한 동생들을 따돌리고 1위에 올랐다.

비록 프리스케이팅에서 실수하며 4위에 그쳤지만 지난 시즌과는 다른 집중력을 보여줬다. 지난달 23일 미국 시카고에서 막을 내린 그랑프리 1차 대회 스케이트 아메리카에 출전한 그는 총점 161.36점으로 8위에 그쳤다. 1차 대회의 부진은 그에게 좋은 자극이 됐다.

▲ 박소연 ⓒ GettyImages

높아진 점프 성공률, 표현력도 한층 발전

랭킹전 전부터 그는 왼쪽 발 염증이 있었다. 이번 프랑스 트로피에도 발 통증을 참고 경기에 임했다. 박소연은 12일 열린 쇼트프로그램에서 클린에 성공하며 64.89점을 받았다. 13일 진행된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첫 점프인 트리플 러츠에서 넘어지는 실수를 했다. 첫 점프에서 흔들릴 경우 남은 요소가 모두 무너질 위험이 있다.

박소연은 첫 점프 실수를 이겨내며 나머지 요소를 큰 실수 없이 해냈다. 이런 집중력은 프리스케이팅 개인 최고 점수인 120.3점으로 이어졌다.

박소연은 프랑스 트로피에서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그리고 총점에서 모두 개인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유독 실수가 잦았던 그는 트리플 러츠 대신 트리플 루프를 뛰었다. 이 점은 좋은 결과로 이어졌고 랭킹전에 이어 프랑스 트로피에서도 클린에 성공했다.

프리스케이팅에서 그는 트리플 루프에서 회전 수 부족으로 언더 로테 판정이 지적됐다. 그러나 넘어진 트리플 러츠를 제외한 나머지 점프는 모두 인정을 받았고 더블 악셀+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는 1.3점의 높은 가산점(GOE)도 받았다. 예술점수(PCS)도 60점에 근접한 59.60점을 기록했다.

박소연은 표현력에 대해 "프로그램을 받으면 100번 넘게 듣는다. 그 음악에 맞춰 연기하는 나 자신의 모습도 상상한다"고 설명했다. 스무 살을 앞둔 그는 갈라 프로그램에서도 예전에 보지 못한 성숙한 표현력을 보여줬다.

트리플 러츠의 성공률을 높이는 점은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지금보다 예술점수를 더 높이는 점도 보완할 점이다. 그는 내년 1월 열리는 종합선수권대회와 2월 4대륙선수권대회, 그리고 동계 아시안게임과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 등 대회에 출전한다. 빡빡한 대회 일정을 큰 부상 없이 치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 피겨스케이팅은 김연아 이후 굵직한 국제 대회에서 우승하는 선수를 원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고 아직 시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우승한 이는 등장하지 않았다. 비록 박소연은 아직 시니어 그랑프리 시상대에 서지 못했지만 꾸준하게 점수를 올리고 있다. 김연아가 떠난 시니어 국제 대회에서 계속 선전하며 180점을 넘은 성과는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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