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박현철 기자] “이거 하나는 분명히 느꼈어요. 사람은 의지에 따라 변하고 성장한다는 것. '나는 분명 좋아질 것이다, 좋았을 때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의지를 내뿜었더니 어느새 스피드도 올라오더라고요. 마무리를 맡으며 정신적으로 얻은 것도 많아요.”

두산 베어스 왼손 마무리 이현승(32)은 기록 이상의 재능이 많은 선수다. 타자를 상대하는 데 있어 영리하고 포심 패스트볼과 시속 100km 미만 느린 커브를 섞어 던지는 완급조절의 달인. 스트라이크 존 모서리 제구도 능수능란하다. 착한 성품과 수준급의 기량을 갖췄으나 운이 없기도 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마무리 보직. 그러나 올해 이현승이 없었다면 두산 뒷문은 말 그대로 '휑'했을 것이다. 두산을 지킨 이현승이 친정팀 넥센 히어로즈를 준플레이오프에서 만난다.

2015년 페넌트레이스에서 이현승은 41경기 3승1패18세이브2홀드 평균자책점 2.89 호성적을 올렸다. 당초 선발로 내정되었으나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두고 손가락 골절로 재활에 힘썼던 이현승. 뒤늦게 1군에 올라온 이현승은 선발이 아닌 낯선 마무리 보직으로 뛰었다. 데뷔 초와 지난해 원포인트 릴리프 및 중간계투로 뛴 적이 있고 2009년 히어로즈 에이스로 13승을 거두기도 했으나 마무리는 처음 맡는 보직이었다.

흔들림은 오래지 않았다. 이현승은 9월부터 11경기 1승8세이브 평균자책점 1.84, 피안타율 0.170으로 명품 마무리 위력을 뽐냈다. 9월 초순 연패로 인해 늪에 빠진 듯 허우적거렸던 두산이 올라갈 수 있던 계기 중 하나는 이현승이 뒷문을 탄탄하게 지켰기 때문이다. 최근 활약 덕택에 이현승은 오는 11월 열리는 프리미어12 최종 엔트리 28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기쁩니다. 말 그대로 영광이에요. 대륙간컵이나 야구 월드컵에 나간 적은 있지만 프로 최고 선수들과 함께 대표팀에 소집되는 것은 처음이거든요. 특히 딸 효주가 아버지의 태극마크를 자랑스럽게 봐 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다섯 살이에요. 많이 컸습니다.”

이현승과 두산 눈앞의 현실은 바로 10일부터 벌어지는 넥센과 준플레이오프다. 두산과 넥센은 올해 시즌 전적 8승8패로 백중세를 이뤘다. 더욱이 이현승은 2009시즌 후 트레이드(금민철+10억원)를 통해 히어로즈에서 두산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던 투수. 당시 히어로즈는 구단 사정 상 이현승과 함께 좌완 장원삼과 호타준족 이택근을 각각 삼성, LG로 보낸 바 있다. 대신 선수들과 현금을 받았다. 또한 이현승의 가장 최근 포스트시즌은 2010년 삼성과 플레이오프인데 5차전에서 장원삼과 펼친 열띤 호투는 말 그대로 명품 투수전이었다.

“거창한 각오는 없어요. 그만큼 부담도 없고. 친정팀과 맞붙는다는 것을 떠나서 우리가 이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투수조 조장으로서 동료들에게 부탁하는 말도 딱히 없습니다.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서도 3위에 올랐어요. 그만큼 우리 두산은 강한 팀입니다. 부담 없이 '보너스 게임을 즐긴다'라는 마음으로 즐기며 집중한다면 최종 목표까지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요.”

초보 마무리로 성과를 거두며 믿음을 쌓은 이현승. 계획했던 풀타임 선발로 뛰지 못한 아쉬움을 곱씹기도 했으나 얻은 것도 분명 많다. 실제로 이현승은 마무리로 뛰며 시속 140km대 후반의 포심 패스트볼을 다시 찾았다. 30대 초반 베테랑 투수의 포심 패스트볼이 다시 빨라지는 현상은 쉽게 보기 힘들다. 이현승에게 마무리로 뛰며 얻은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지난해 중간에서 뛰다 마무리로는 처음 뛰었어요. 가장 큰 소득이라면 '의지에 따라 사람이 변한다'는 것. 꼭 돌아가겠다, 다시 잘 던지겠다, 부상을 빨리 떨치겠다고 노력한 만큼 올라오더라고요. 제가 가장 좋았던 때 스피드까지 올라와서 기뻤어요. 정신적으로 얻은 것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전화위복' 속 새 가능성과 구위를 찾고 오랜만에 태극마크도 달게 된 마무리 이현승. 그는 친정팀에 대한 옛 정 대신 현재 소속팀 동료들과 함께 자신들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말투는 거창하지 않았으나 이야기 속 이현승의 의지는 분명 뜨거웠다.

[영상] 8월2일 삼성전 무사 만루 위기 막는 이현승 ⓒ 영상편집 김용국.

[사진] 이현승 ⓒ 한희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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