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이교덕 기자] '부산중전차' 최무배(45·최무배짐)와 떠난 시간여행, 그는 12년 전 에밀리아넨코 효도르와 처음 만난 '그날'을 떠올리며 껄껄껄 웃었다.

당시 레슬링 보급을 위해 '최무배 레슬링 교실(팀 태클)'을 열었던 그는 종합격투기 열혈팬으로 2003년 프라이드 미들급 그랑프리를 관람하기 위해 일본을 찾았고, 거기서 효도르와 '클린치 싸움'을 가질 기회를 얻었다. 팬미팅 자리에서 유난히 덩치가 커 돋보였던 터라 효도르의 힘을 체험해볼 수 있는 일반인 대표로 뽑힌 것.

"내가 당시 방송을 알았다면(유명해지는 방법을 알았다면), 효도르를 수플렉스로 던져버렸어야 했다. 효도르가 긴장하기 전에 던졌다면, 나는 효도르 펀치 맞고 기절하고 복수전 이야기 나오고…(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프라이드에 데뷔했겠지)."

"순전히 팬심으로 갔을 때였다. 효도르가 사람이 참 착하다. 내가 다칠까봐 살살 넘기려고 하는데, 그걸로 넘어가주기는 조금 미안할 정도여서 살짝 버텼다. 그런데 효도르가 일반인 중심이 아닌 걸 알고, 눈빛이 변하고 동작도 빨라지더라. 여기서 더 버티면 분위기도 망치고 문제도 될 것 같아 슬쩍 넘어갔다."

팬미팅을 주관하던 프라이드 관계자들이 최무배가 7년 동안 우리나라 그레코로만 레슬링 헤비급 국가대표를 지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를 효도르의 레슬링 상대로 선택하는 실수는 범하지 않았으리라.

12년 전으로 돌아간 최무배는 "미디어의 파워가 대단하다는 걸 요즘에서 더 느낀다"며 무릎을 탁 쳤다. 그때 효도르를 수플렉스로 던져버렸어야 했다"고 농담을 던지며 웃음을 보였다. 어쩌면 최무배의 시그니처 무브 '부산던지기'의 첫 희생자가 이마무라 유스케가 아니었을지도, 효도르를 수플렉스로 던진 최초의 레슬러가 케빈 랜들맨이 아니었을지도 모를 일.

하지만 틀림없이 임팩트는 컸다. 이를 계기로 관계자들의 눈에 띄어 2004년 2월 한국인 최초로 프라이드에 섰으니, 최무배 인생에 획을 그을 만한 사건임에는 분명했다.

효도르와 우연한 만남이, 최무배가 우리나라 종합격투기 '큰 형님'의 삶으로 이끄는 계기가 될지 당시엔 누가 짐작이라도 했을까. 1970년생, 만 45세의 중년이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놀랍게도 기량이 계속 향상 중인 그는 오는 25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콜로세움에서 열리는 '로드FC 24 일본대회(ROAD FC 024 In JAPAN)'에서 가와구치 유스케와 격돌한다.

벌써 16번째 경기(11승 4패). 인생사, 쉽게 예측하기 힘들다.

돌이켜보면 아쉬운 순간은 꽤 많았다. 최무배는 2005년 11월 히어로즈 한국대회에서 실베스터 터케이 전을 떠올리며 "그때 그냥 밥 샙과 경기했어야 했다"며 웃었다.

그는 "사람들의 기억에 안 남아있겠지만…. 밥 샙과 경기하라고 하니까 준비기간이 필요하니 다음에 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만난 상대가 프레데터였다. 내가 내츄럴 헤비급이라고 하면, 그 친구는 내츄럴 슈퍼헤비급이었다. 나보다 몸이 컸고, 힘에서 당할 수가 없었다. 준비기간이 너무 짧아 체력을 끌어 올리지도 못했다. 무기력하게 판정패했다"고 돌아봤다.

"그때 밥 샙하고 싸워 이겼다면, 내 인지도는 더 올라가지 않았을까? 당시 메인이벤트에서 승리한 추성훈의 자리를 내가 꿰찼을지도…."

결과적으로 판단미스였다. 프로레슬러 '프레데터'로 알려진 실베스터 터케이는 커트 앵글, 마크 콜먼 등과 미국 국가대표 자리를 놓고 다투던 자유형 레슬러 출신. 훈련기간이 거의 없었던 최무배는 이 경기에서 세르게이 하리토노프 전에 이어 2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2009년 8월 일본 센고쿠에서 치른 나카오 '키스' 요시히로 전도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최무배는 전략적으로 완전히 허를 찔렸다고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나카오한테 질 수가 있었는지. 나도 참 정신상태가 썩어있었다. 그 친구가 머리를 잘 썼다. 그라운드로 끌고 내려갔으면 쉽게 이기는 경기였다. 그라운드에선 충분히 피니시할 수 있는 실력 차가 있다는 걸, 과거 합동훈련 중 몇 번의 스파링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카오가 링밖으로 머리를 내밀면서 그라운드로 안 딸려 들어오더라. 그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카오가 허점을 제대로 파고 들었다. '아, 전략에서 졌구나'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체고로 전학간 뒤 첫날(4월 2일) 압도적인 훈련량에 픽 쓰러지고 곧바로 후회한 일 ▲처우 개선을 놓고 프라이드와 파워게임을 펼치다가 하리토노프에게 패배하고 방출된 일 ▲B형 간염 보균자여서 2007년 K-1 다이너마이트 미국대회에서 선수 라이선스를 받지 못한 일 등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줄줄이 풀어놓았다.

무엇보다 최무배의 마음에 애틋한 기억으로 남은 한 단어는 '팀 태클'이었다. 대한레슬링협회가 팀 태클에 투자한 자본을 회수하면서 레슬링·종합격투기 실업팀을 목표로 했던 팀 태클의 경제적 자립은 핀치에 몰렸고, 결국 2010년 팀을 해체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생각하면 체육관 경영에 대해 너무 몰랐다." 최무배는 고백했다.

"지금 같은 마인드로 당시 팀 태클을 운영했다면 잘 운영되지 않았을까? 태릉선수촌 출신이 아니라 일반 체육관 출신이어서 관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고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엘리트 운동인이라 체력훈련 2시간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토할 때까지 운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게 깔려있던 때였다. 일반 관원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너무 엘리트였다. 1986년 고1 때 운동 시작해서 2년 만에 주니어 국가대표가 되고, 그 다음 해에 국가대표가 됐다. 그리고 7년을 왔다갔다하며 태극마크를 달았다. 솔직히 말하면, 운동만 해온 자생력이 없던 사람이었다. 불안하기 짝이 없던, 뭘 가지고 먹고 살지 대책이 없던 사람이었다."

최무배는 과거의 자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지난 5년 동안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며 지난날을 되짚어볼 수 있는 눈이 생겼기 때문이다. 팀 태클을 정리하고 대전 근방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임용돼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로 돼있었지만, 총장이 사퇴하면서 최무배가 이끌던 학과 자체가 사라졌다. 당장에 먹고 살기 위해 대전에 다시 체육관을 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엘리트 의식은 내려놔야 했다. 그는 여기서부터 모든 걸 리셋했다.

"밑바닥 고생을 버틴 세월이 4, 5년이다. 삶의 형태가 자리잡고, 경험치가 쌓이는 시간이 어느 정도 걸렸다. 대전에서는 모든 걸 내려놨다. 체육관 관장님, 동네 아저씨가 됐다. 프라이드 때만 해도 종합격투기 엘리트 파이터였다. 엘리트 레슬러가 엘리트 파이터가 된 경우였다. '최무배가 대전에 체육관을 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이름만 빌려주고 최무배는 없겠지' 생각한다. 그래서 동네 다 돌아다니면서 사람들과 가까워졌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흘렀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됐다."

거칠고 울퉁불퉁하던 원석이 강물에 쓸려 둥글둥글해졌다. 그는 "부딪치려고만 했다. 하지만 이제 돌아갈 줄 안다"며 허허허 웃었다. 그리고 "많은 실수는 있었지만 후회는 없다"고 했다. 절대 가볍지 않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농담을 던질 정도로, 최무배의 마음은 여유로워졌다. 

가슴속에 커다란 훈장 하나, 우리나라 종합격투기 후배들을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는 자부심을 커내놨을 때, 그의 표정은 더 밝아졌다.

"프라이드에서 경기하던 때는, 지면 모든 게 끝나는 줄 알았던 시기다. 내가 패배하면 우리나라 선수들의 길이 막히는 줄 알았다. 멋지게 지는 것도 괜찮다고 하는데, 사실 지면 끝나는 거다. 더럽게라도 이겨야지 살아남는다. 이기는 것이 프로의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회자되는 명승부, 2004년 10월 소아 파렐레이 전이 그랬다. 당시 파렐레이의 먹잇감으로 자신이 던져졌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최무배는 "파렐레이는 중압감에 위축됐더라. 난 촌사람이니까 긴장하지 않는다. 무대가 크면 더 집중력이 올라가는 스타일이다. 한 번의 기회만 잡으면 이길 수 있다고 믿었고, 소나기 펀치를 버틸 수 있었다"고 되돌아봤다.

멀고먼 시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중년의 아저씨 최무배. 이제는 그때와 다르다고 확실히 선을 긋는다. 승패에 연연하기 보다, 경기 자체를 즐기려고 한다. "앞으로의 경기는 중년 아저씨의 도전 정도로 봐달라. 아저씨치곤 무모할 수 있지만, 내 나름대로 격투기를 즐기는 마음으로 재밌게 케이지로 뛰어들려고 한다"며 미소를 띠었다.

16승 9패의 딥 챔피언 가와구치 유스케를 상대하는 최무배는 "일단 무섭다. 챔피언이라고 하니까 잘할 것 같다. 나이 많은 아저씨지만 옛날에 하던 가락이 있으니까…. 타격전에서 많이 때리고 싶다. 여차하면 클린치로 붙는 게 아니라, 상대가 붙으려고 하면 떼어내고 계속 때리는 경기를 펼치고 싶은데…. 어떤 경기가 될지 나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오르락내리락. 부산중전차는 굽이굽이 언덕을 넘어왔다. 굴곡진 과거를 떠올리며 그는 마지막으로 후배 파이터들에게, 인생 후배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했다.

"10대 때 가는 시간, 20대 때 가는 시간, 30대 때 가는 시간, 40대 때 가는 시간이 다르다. 시간의 가속 법칙이라는 게 있다. 가속이 계속 붙는다. 지금은 일주일 단위가 휙휙 지나가는데, 나중엔 월 단위가 그렇게 흘러갈 것 같다."

"인생은 짧다. 삶의 안정이 중요하지만, 난 최소한의 안정을 기반으로 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 생은 한 번뿐이다.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찾아내서 그것을 하겠다. 내일 뭔가를 일어나게 하고 싶으면 오늘 그것을 위한 일을 하나라도 해야 한다. 생각만으로 되는 일은 없다."

최무배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은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테스트하는 일'이다. 그리고 '종합격투기를, 승부 자체를 즐기는 일'이다.

끝으로 기습질문. '12년 전 최무배와 지금의 최무배가 맞붙는다면?' 최무배는 "당시 나와 싸우는 건 무섭다. 맞아도 쓰러지지도 않고…. 누가 이길지는 모르겠는데, 둘은 안 붙였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쉽게 예측하지 못하겠다. 최고의 피지컬과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인자강' vs 승부 자체를 즐기려는 경험 많은 '인자강', 누가 승리할까?

■ 로드FC 24 대진

[미들급 타이틀전] 후쿠다 리키 vs 전어진
[무제한급] 카를로스 토요타 vs 최홍만
[헤비급] 가와구치 유스케 vs 최무배
[미들급] 미노와맨 vs 김대성
[밴텀급] 나카하라 타이요 vs 김수철
[88KG 계약체중] 타카세 다이쥬 vs 윤동식
[아톰급] 시나시 사토코 vs 이예지
[라이트급] 오하라 주리 vs 이광희

■ 로드FC 영건스23 대진

[페더급] 히로카쥬 콘노 vs 홍영기
[밴텀급] 사토 쇼코 vs 김민우
[페더급] 하라이 토류 vs 김호준
[플라이급] 미나미데 고우 vs 김효룡
[페더급] 아키라 에노모토 vs 백승민
[미들급] 오자키 히로키 vs 나카무라 유타
[페더급] 타카시마 다이키 vs 스기야마 카즈시
[페더급] 코가네 쇼오 vs 사와이 하야토
[밴텀급] 오오바 쇼 vs 카나이 타쿠야
[웰터급] 유키 스즈키 vs 타나베 타케히토

[사진] 최무배 ⓒ ROAD F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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