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과 제주의 경기가 열린 인천축구전용경기장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티비뉴스=인천, 김도곤 기자] "공기 더럽게 더럽네."

2019년 봄, 그리고 K리그1 첫 경기 취재, 기쁜 마음을 안고 집을 나왔을 때 입에서 나온 말이 저 말이었다. 오랜만에 축구장이었지만 마음과 달리 입에서는 거친 말이 나왔다. 미세먼지로 하늘은 뿌옇고 목이 턱턱 막혔다. 이날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농도는 '매우 나쁨'… '끝나고 집에 올 땐 콧구멍에서 석탄 나오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인천과 제주의 경기가 열리는 인천축구전용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래도 첫 경기가 중요한데…'라는 생각을 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고 첫 경기에 팬들이 많이 와야 마무리도 좋을텐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죽일 놈의 미세먼지가 눈과 코와 귀를 사정 없이 괴롭히니 경기장이 한산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축구경기장이 있는 도원역에 내렸을 때 생각이 기우라는 것을 알았다. 경기장 앞은 많은 팬들이 줄을 서 있었다. 지난 시즌 인천이 잔류를 결정지은 마지막 경기만 해도 이렇게 많지 않았다. 러시아 월드컵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끝나 축구 열기가 고조된 순간에도 이렇게 많지 않았다. '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경기 한 시간 전에 이미 인천 서포터석인 S석은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경기가 시작될 때쯤 더 많은 관중이 들어왔고 경기 시작 후에도 관중이 들어왔다. 어느덧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은 팬들로 가득했다. 인천 관계자는 '최다 관중 넘을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 경기 전 줄을 선 팬들 ⓒ 스포티비뉴스
▲ N석을 가득 채운 팬들 ⓒ 스포티비뉴스
특히 이번 경기는 걸그룹 '모모랜드'가 하프타임에 축하 공연을 했다. 보통 하프타임이 되면 어느 구역에서나 화장실도 가고 매점도 가고 흡연도 하러 간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대부분 구역은 물론이고 인천 서포터석인 S석에서 굉장히 많은 관중이 자리를 지켰다. 옆에 동기에게 '하프타임 때 자리 저렇게 빽빽한 적 본 적 있어?'라고 물어봤다. 이제 걸그룹은 누가 누군지 모를 나이가 되어 가지만 본인도 자리를 뜨지 않고 축하공연을 봤다. 사람 다 똑같다.

이날 유료 관중은 1만 8541명,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개장 후 최다 관중이다. 이전 최다 관중은 2012년 개장 경기, 당시 1만 7000여명의 팬이 들어왔고, 이번에 그 기록을 넘었다. 1만 8541명은 유료 관중이기 때문에 실제 경기장은 더 많은 팬이 들어왔다.

인천 이적 후 첫 경기를 치른 허용준은 "팬이 많으면 선수들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정말 기분 좋게 뛰었다"는 소감을 밝혔고 김진야 역시 "정말 많은 팬분들이 오셨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 역대 가장 많은 팬들이 오셨기 때문에 더 많이 보여드리고 잘 하려 했다"고 했다.

지난해 한국 축구는 봄을 맞았다. 러시아 월드컵,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열기가 고스란히 K리그로 이어졌다. 비시즌에 있었던 아시안컵에서 8강에 그쳐 축구 열기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이번 1일과 2일 경기를 보면 그렇지 않다.

▲ 전주월드컵경기장 ⓒ한국프로축구연맹
리그 디펜딩 챔피언 전북과 FA컵 디펜딩 챔피언 대구의 1일 경기는 2만 1250명의 관중이 찾았다. 전주의 축구 열기는 워낙 뜨겁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같은 날 열린 울산과 수원의 경기에서도 1만 3262명의 팬이 울산문수경기장을 찾았다. 울산의 지난 시즌 평균 관중수는 7523명, 즉 두 배 가깝게 뛴 수치다.

단순히 경기장에 팬만 많았다는 점이 아니기에 더욱 고무적이다. 경기 질이 상당히 높았다. 디펜딩 챔피언들의 대결인 전북과 대구의 경기는 90분 내내 치열했다. 대구가 에드가의 골로 먼저 치고 전북은 임선영의 동점골로 바로 받아쳤다.

울산과 수원의 경기도 명경기였다. 울산이 두 골을 넣고 앞서 나갔으나 수원은 타가트의 만회골로 추격의 고삐를 당겼다. 비록 동점골은 나오지 않았지만 수비 축구는 없었다. 무엇보다 중계 화면에 잡힌 수원 이임생 감독의 '뭐가 무서워서 자꾸 뒤로 가!'라는 외침은 백미였다. 같은 날 열린 경남과 성남의 경기도 마찬가지, 마지막까지 치고받는 처절한 사투 끝에 경남이 한 점차 승리를 거뒀다.

인천과 제주의 경기도 같았다. 경기 후 인천 안데르센 감독이 "비록 무승부였지만 우리나 제주나 마지막까지 이기기 위해 공격적인 축구를 했다. 승점 1점이지만 만족스럽고 이런 경기가 많이 나와 K리그 흥행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며 크게 만족해했다. 감독과 선수도 만족, 팬들도 미세먼지를 감수하고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공기 더럽게 더럽네'…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집에서 나올 때 한 말이 똑같이 다시 나왔다. 그래도 기분은 사뭇 달랐다. 나오면서 한 말이 정말 불쾌했다면, 돌아가면서 한 말은 비록 공기는 더러울지언정 기분은 흐뭇했다. 그렇게 봄과 함께 우리에게 K리그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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