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돈' 스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나는 부자가 되고 싶었다."

부자를 꿈꾸는 여의도 초보 브로커의 위험한 선택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영화 '돈'(감독 배누리)은 익숙한 월스트리트의 증권맨 이야기를 여의도 증권가로 옮겨 온 금융범죄 드라마다. 기대한 만큼의 이야기로 딱 기대한 만큼의 재미를 준다.

100억 원이면 부자 축에 들 수 있으려나. 성공을 향해 열의를 불태우는 청년 조일현(류준열)은 업계1위 동명증권의 신입사원이자, 기본급 300만원 - 성과급 무한대의 신입 브로커다. 지방대 출신에다 기댈 곳도 하나 없는 흙수저지만, 코스피 종목 코드를 전부 외운 열정으로 여의도에 입성했으니, 눈치껏 배우고 구르며 호된 신고식을 치를 차례다.

하지만 열정만으로 일이 될 리 있나. 초보적 실수로 고객 돈을 날려먹고 10개월을 허송세월하던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생긴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위험한 큰손 '번호표'(유지태)와 줄이 닿은 것. 어딘지 꺼림칙한 거래 한 방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그는 '번호표' 덕에 쭉쭉 실적을 쌓아가며 에이스로 거듭난다. 후줄근하던 그의 차림도, 위법은 안된다던 그의 배짱도, 바하마에 개설된 그의 비밀 잔고도 날로 업그레이드되던 와중에 냄새를 맡은 금융감독원 사냥개 한지철(조우진)이 나타난다.

▲ 영화 '돈' 스틸
옛 '월스트리트'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같은 월가 이야기가 익숙한 관객이 아니더라도 '돈'은 꽤 흥미롭다. '돈' 하나 보고 증권가에 뛰어든 주인공의 욕망을 중심으로 위험한 큰 손, 깐깐한 수사관을 대비시켜 단순 명쾌하게 판을 짰다. 금융범죄의 구조적 폐해나 개미들의 고통 따위는 과감하게 쳐냈다. 선택을 거듭하면서 변해가는 주인공에 집중하면서 엄습하는 위험과 마지막 반전을 더했다. 

돈 벌어 떵떵거리고 살고픈 욕망에서 그 누가 자유로울까. 영화는 욕망이 도사린 리얼한 증권가를 묘사하면서 증권 거래에 대해 아는 게 하나 없어도 따라가기 무리없을 만큼 쉽게 이야기를 풀었다. 특히 장중엔 주문 거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짬 날땐 선배들 취향따라 커피며 배달음식을 대령하고, '갑님' 펀드매니저를 상전으로 모시는 초보 브로커의 이야기에는 여의도에서 1년 넘게 발품을 팔았다는 감독의 노고가 역력하다.

생생한 초반 묘사에 비해 캐릭터별 역할 구분이나 갈등 해소 과정은 평이하다. 여의도 현지화엔 성공했지만 차별화엔 못 미쳤달까. '돈'에 대한 화두는 의미심장하지만 가벼운 팝콘 무비로 즐기는 쪽을 추천한다. 거액이 초단위로 오가는 돈놀음을 화면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 '콤마(,)가 3개면 10억' '숫자 뒤에 0이 10개면 100억' 정도는 보는 순간 이해가 돼야 더 신나게 즐길 수 있다. 

▲ 영화 '돈' 스틸
이야기보다는 배우의 세공이 인상적이다. 유지태는 보여줄 게 많지 않은 캐릭터를 눈빛과 분위기로 그려내고, 조우진은 '국가부도의 날'과는 확연히 다른 금융계 공직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무엇보다 '돈'으로 본격 주연 신고식을 치른 류준열이 돋보인다. 67회차 촬영 가운데 60회차에 함께했다는 류준열은 분량은 물론 존재감 면에서도 압도적이다. 촬영한 지 2년을 훌쩍 넘겨 개봉하는 작품이지만 그의 성장이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어리바리 신입사원이 '돈' 맛을 보고 변해가는 과정이 극적이면서도 실감난다. 이마를 덮었던 앞머리가 말쑥하게 넘겨지면 푸근했던 류준열이 옷부터 표정까지 뻣뻣하니 힘이 들어가며 비릿한 돈냄새를 풍긴다. '류준열 보는 맛'이 있는 영화다. 

3월20일 개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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