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미성년' 포스터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미성년'(감독 김윤석)이란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다. 주인공은 다섯 명의 미(未)성년들, 두 여고생과 그들의 부모다. 그놈의 불륜이 문제다.

고교 2학년 주리(김혜준)와 윤아(박세진)가 학교 옥상에서 만났다. 공통점이라곤 하나 없는 둘 사이에 첫 대면부터 험한 말이 오간 건 주리 아빠 대원(김윤석)과 윤아 엄마 미희(김소진)의 불륜 때문. 심지어 미희의 배가 불러오는 중이다. 엄마 모르게 어떻게든 일을 수습하고 싶은 주리와 달리, 윤아는 홧김에 주리 엄마 영주(염정아)에게 이 일을 이른다.

주리도 영주도 속이 타는데, 정작 대원은 '내가 인기가 많다'며 실실거린다. 영주의 표정은 불길하게 굳었다. '마지막 사랑'을 찾은 미희는 적반하장이다. 폭풍전야가 흐르고, 엄마 영주의 고요한 '멘탈 붕괴'를 목격한 주리는 다음날 다짜고짜 윤아의 머리끄덩이를 붙든다. 영주도 일단 미희네 식당을 찾아갔는데, 소동 끝에 그만 미희가 조산한다. 주리와 윤아에게 원치않던 남동생이 생겼다.

영화 '미성년' 스틸

남자 여자가 바람피우는 이야기야, 드라마와 영화에서 수없이 보고 겪었다. 그러나 '미성년'은 불륜 당사자의 두 10대 딸을 중심에 두면서 특별한 이야기로 거듭난다.

이과반 반장-문과반 문제아인 두 소녀는 부모의 불륜이 아니었다면 서로를 의식조차 하지 못했을 다른 세계의 아이들. 다시는 보지 말자 해놓고 보고 또 보게 된 어린 '미성년'들이 부모 탓에 벌어진 사달을 제각기 수습하고 책임지느라 저마다 분주하지만, 어른들은 못난 '미성년'을 벗어나지 못한다. 한심한 불륜 아빠와 철없는 불륜 엄마, 망연자실한 채 안간힘을 쓰는 다른 엄마가 한숨 쉬는 사이, 아이들은 상처입은 부모를, 서로의 얼굴을, 힘겹게 할딱이는 생명을 말간 눈으로 들여다본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걸까. 아이들은 알아서 자란다. 그들의 선택에 뭐라 할 수 있는 어른이 누굴까.

영화 '미성년' 스틸

알려졌다시피 '미성년'은 믿고 보는 배우 김윤석의 연출 데뷔작이다. 그가 2014년 실험극 페스티벌에서 본 연극이 원작이다. '미성년'은 배우 감독의 장점이 제대로 드러나는 영화다.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소품 같은 소동극을 살아있는 캐릭터, 섬세한 연기로 드라마틱하게 풀었다. 두 가족, 다섯 사람의 중심인물은 물론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캐릭터에도 개성과 생기가 완연하다.

염정아와 김소진, 믿고보는 두 연기파의 열연엔 두 말이 필요없다. 김혜준과 박세진, 500대2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두 사람은 2019년의 신예로 불릴 자격이 있다. 헛웃음나게 실감나는 비겁한 불륜남 김윤석도 딱이다. 그를 축으로 네 여배우가 상대를 달리해 가며 포개지는 순간마다 긴장과 연민이, 공감이 피어난다.

'미성년'은 뜨겁게 불타오르거나 혹은 사무치도록 차가웠던, 배우 김윤석 너머 '감독' 김윤석의 섬세하고도 치밀한 면모를 확인케 한다. 동시에 느물느물한 유머와 능청을 실감케 한다. 그는 '타짜'의 아귀, '추격자'의 엄중호, '황해'의 면가, '남한산성'의 김상헌이나 '1987'의 박처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거북이 달린다'의 동네 형사나 '완득이'의 '똥주' 선생이기도 했으며, 있을 때 잘해야 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불륜 남편이기도 했었다.

조금 미지근한, 하지만 따스한 온기가 담긴 성장담은 이 강렬한 배우 감독의 야심찬 출사표이자 수줍은 고백같다. 그의 2번째 연출작이 궁금하다.

4월 11일 개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9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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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성년'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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