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출장의 소중함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정의윤(왼쪽)과 문승원 ⓒSK와이번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4일 고척 키움전에서 프로 데뷔 후 첫 등판 기회를 얻은 이케빈(27·SK)은 기대 이상의 투구 내용은 물론 남다른 투지 또한 강한 인상을 남겼다. 3회 이정후의 타구에 오른손을 맞은 뒤에도 강판하지 않고 꿋꿋하게 마운드를 지켰다.

교체 의사 질문에 연신 고개를 저은 이케빈은 경기 후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2016년 프로 지명을 받은 뒤 4년 만에 얻은 1군 기회는 그만큼 절박했다. 신진급 선수들이 대개 그렇듯이, 이케빈 또한 이 기회를 잡기 위해 육체적 고통은 잠시 잊었다. 

그런데 꼭 신진급 선수만 그런 것은 아니다. SK는 이미 두 선수의 부상 사례에서 이를 확인했다. 베테랑 외야수 정의윤(33)과 팀 선발 로테이션의 한축인 문승원(30)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경기 중 부상에 굴하지 않았다. 내색하지 않고 자신의 몫을 다하기 위해 경기장을 지켰다. 이들의 투지에 많은 팬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정의윤은 5월 9일 인천 한화전 도중 종아리를 다쳤다. 9회 김회성의 홈런 타구를 따라가다 이상을 느꼈다. 9회 타석 도중에는 통증이 더 심해졌다. 스윙을 한 뒤 극심한 고통이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미 야수 엔트리를 다 소진한 상황에서 대타를 낼 수도 없었다. 정의윤은 “뭔가 종아리가 굳어버리더라. 최대한 상체 위주로 치려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1-6으로 뒤진 2사 1,2루 상황이었다. 당장 한 경기 승패보다는 어쩌면 정의윤의 몸이 더 중요했을지 모른다. 통증이 심하면 그냥 서 있다 들어와도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정의윤은 그 통증 와중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좌전안타를 기록했고, 곧바로 대주자로 나선 투수 이승진이 1루에 섰다. 정의윤은 다음 날 1군 엔트리에서 말소돼 재활 일정에 돌입했다.

문승원도 마찬가지였다. 5월 25일 창원 NC전에서 1회 베탄코트의 타구에 왼쪽 종아리를 맞았다. 이미 그 시점부터 종아리 근육이 파열됐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문승원은 “3회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4회부터는 통증이 제대로 왔다”고 설명했다. 역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될 정도의 가볍지 않은 부상이었다. 

그러나 한 번도 ‘못 던지겠다’는 사인을 내지 않았다. 문승원은 아픈 종아리를 이끌고 5회 2사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제대로 공을 상황인 아님에도 불구하고 95개의 투구 수를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SK는 당시 계속된 접전 상황에 불펜 운영이 쉽지 않은 여건이었다. 문승원이 타구를 맞는 시점 경기를 포기했다면 남은 8이닝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자진해 그라운드를 지켰을까. 두 선수는 출장에 대한 소중함과 책임감을 이야기한다. 정의윤은 “아직도 한 타석, 한 타석이 소중하다. 타석에 들어서는 것을 워낙 좋아하기도 한다”면서 “주전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테이션에 자리 잡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문승원이다. 확고한 로테이션의 일원이 됐음에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마운드에서 실적과 책임감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승원은 “선발이라면 등판 시 5이닝은 던져야 한다. 부상 때문에 못 던졌다는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부상 상황에서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꾸지람도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투지가 선수단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144경기를 치르면서 매 경기를 절박하게 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당연하게 주어지는 내 자리는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는 “내가 당연히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염경엽 감독의 주문과도 닿아 있다. 다행히 최악의 부상은 아니었다. 정의윤은 최근 복귀해 좋은 타격감을 보이고 있고, 문승원은 다음 주 등판을 준비하고 있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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