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날두는 무리한 스케줄을 짠 유벤투스에 불만을 표하며 팀 K리그전에 결장했다.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서울월드컵경기장, 한준 기자] 당일치기로 한국을 찾은 유벤투스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역대급 기대와 관심을 모았지만, '그 일정이 가능하겠냐'는 우려를 극복하지 못하고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좀처럼 매진이 어려운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최고가 티켓이 40만 원이었는데도 6만 3천석이 모두 팔렸다. 당일 현장 암표는 60만 원 이상까지 치솟았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예정된 오후 8시에 경기는 열리지 못했다. 50분 뒤 시작했다. 전반전에는 경기장 분위기가 좋았으나 후반전 시작 후 분위기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45분 출전하기로 했다는 호날두가 그대로 벤치에 앉아 몸도 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팬의 외침에도 호날두는 꿈쩍도 하지 않고 경기장을 떠났다. 관중의 분노가 폭발했다.

경기장을 찾은 모두를 실망시킨 ‘파행’은 어디에서 기인했고,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 유벤투스는 아시아 친선전이 의무였고, 호날두는 한국행을 선호했다

먼저, 26일 금요일 밤 8시 경기 개최 문제를 짚어야 한다. 유벤투스는 애당초 27일 토요일 경기를 원했다. 24일 중국 난징에서 경기를 하고, 25일 상하이에서 팬 행사를 가진 뒤 한국에 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7, 28일 모두 K리그2 경기 일정이 있어 이벤트 경기를 개최할 수 없다는 의사가 확고했다. K리그 올스타전을 개최하기 위해 비워 둔 26일이 유일한 옵션이었다.

유벤투스 내한을 주관한 더페스타 측도 마찬가지다. 로빈 장 더페스타 대표는 "우리가 원했던 날짜는 28일이었다"고 했다. 무리가 된 26일 경기 개최는 어떻게 열리게 된 것일까?

유벤투스 내한 경기는 더페스타 측의 주도적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더페스타는 본래 2020년 여름 프리시즌 경기를 기획하고 있던 차에 유벤투스 측의 연락을 받았다. 이미 유럽에 축구를 포함한 스포츠 관련 비즈니스를 진행해 왔던 더페스타 측으로 유벤투스 관계자가 한국에서 친선 경기를 열 수 있는지 문의한 것이다.

내한 경기 추진의 배경은 이렇다. 싱가포르와 중국에서 두 차례 인터내셔널 챔피언스컵 경기를 치르는 유벤투스는 스폰서십 계약상 아시아에서 프리시즌에 한 경기를 더 해야 했다. 당초 유벤투스는 베이징에서 한 차례 더 친선경기를 치르려 했으나 베이징 측에서 허가하지 않아 대안을 찾았다. 그러다 먼저 한국에 접촉했다. 호날두가 지난해 한국에 가 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번에 가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날두는 2018년 여름 레알 마드리드에서 유벤투스로 이적하게 되면서 개인 행사로 한국을 방문하려던 일정이 취소됐다. 유벤투스의 내한 경기에 호날두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 맞다. 실제로 호날두는 유벤투스가 내한 경기 계약을 체결한 직후 3일 만에 한국 팬들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를 촬영해 전송해 줬다.

내한 경기 추진은 4월 말에 이뤄졌다. 일정이 촉박해 더페스타 측은 거절 의사를 밝혔으나 유벤투스에서 적극적이었다. 구단 후원사를 통해 스폰서십을 돕고 대회 운영도 도와주겠다며 의지를 보여 진행됐다. 호날두가 있으니 문제가 없다는 의사도 유벤투스가 이야기했다. 

▲ 매진 사례를 이룬 유벤투스 내한 경기 ⓒ한희재 기자


◆ 우려됐던 26일 경기 개최, 더페스타가 강행했던 이유

내한 경기를 한국프로축구연맹과 협의한 것은 5월 초다. 당시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더페스타 측의 유벤투스 내한 경기 제안을 듣고 계약서 없이는 진행할 수 없다는 의사를 전했다. 계약서가 있다면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보수적으로 행동한 이유는 FC 바르셀로나 내한 경기가 추진되었다가 정식 계약이 아니었던 것이 드러나 무산되는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더페스타가 유벤투스와 계약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경기일을 27일로 제시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7일에 K리그2 경기가 예정돼 있었다. 연맹 고위 관계자는 "26일만 오직 가능하다. 경기일에 이벤트 경기는 없다"는 뜻을 강조했다.

더페스타 측은 실무진과 1차 미팅에서 "27일 경기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얘기를 듣고 유벤투스와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다. 연맹 관계자는 "이틀에 걸쳐 K리그2 경기가 있는데 하루로 경기를 모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확답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더페스타는 유벤투스와 계약서를 작성한 뒤 다시 연맹과 미팅을 가졌다. 연맹은 K리그2 경기 일정 변경이 불가하다며, 26일이 아니면 경기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연맹은 계약서를 동반한 미팅 이전에 경기 일정 변경이 어렵게 됐다는 피드백을 더페스타 측에 전했다고 주장했다.

계약 파기 시 위약금을 지불해야 하는 더페스타 측은 유벤투스에 상황을 전했다. 유벤투스는 돈을 더 주면 26일에 갈 수 있다고 답했다. 위약금 지불보다는 추가금을 지불하더라도 경기를 여는 편이 더페스타 측에는 합리적 결정이었다. 유벤투스가 26일 경기에 동의해 계약이 진행됐다. 

연맹은 유벤투스의 일정을 살핀 뒤 26일 경기가 가능한지 수차례 물었다. 연맹에 따르면 더페스타 측이 유벤투스 측의 서명이 된 모든 서류와 답신을 제공했고, 아예 유벤투스 구단 관계자가 경기 전 직접 연맹 사무실로 와 보증하고 소통하기도 했다. 내한 경기 최종 계약은 6월 말 결정됐고, 이후 진행된 티켓 예매는 2시간 만에 매진되며 대박이 났다.

더페스타 측은 당초 유벤투스와 2박 3일 일정에 경기와 팬미팅 행사를 개최할 권한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일정을 치르는 도중에 유벤투스가 경기 전에 팬미팅을 진행하고 그날 빠르게 한국을 떠나는 것이 선수들이 원하는 것이라며, 일정 변경을 요청했다. 

선수들에게 주말 휴가를 주는 쪽이 사전 행사와 경기에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는 유벤투스 측의 설명을 더페스타는 수용했다. 유벤투스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동하는 비행기편 연착 우려에 전세기를 타고 오니 문제가 없다고 했고, 경기 전 한 시간 가량 행사도 문제가 없다며 비슷한 경험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유벤투스 선수들을 태운 비행기는 두 시간 연착됐고, 팬 미팅 행사에 호날두가 빠졌다.

▲ 호날두 출전을 기대한 관중들 ⓒ한희재 기자


◆ 유벤투스 스케줄에 분노한 호날두, 호텔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입국 현장부터 표정이 어두웠고, 팬 미팅에 이어 경기까지 불참한 호날두의 문제다. 

지난해 여름 호날두를 영입한 유벤투스는 호날두와 함께 보내는 첫 프리시즌에 상업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했다. 특히 중국 일정은 인터밀란과 경기에 90분 풀타임을 뛰고 다음 날 상하이로 이동해 장시간 팬 행사를 진행하는 강행군이었다. 호날두는 이때 이미 심기가 나빠졌다. 한국으로 이동하는 과정도 원활하지 않아 결국 분통을 터트렸다. 호날두의 측근은 호날두가 매우 분노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마우리치오 사리 유벤투스 감독은 공식 회견에서 근육 문제로 경기 하루 전부터 결장을 생각했다고 말했지만, 근육 문제보다 호날두가 구단 스케줄에 강하게 반발한 것이 더 큰 문제였다. 

호날두의 냉랭한 모습에 다른 유벤투스 선수들은 팬 미팅 행사와 친선경기에 의욕적으로 임했다. 주관사 및 한국 측 관계자와 호의적으로 교류했다. 잔루이지 부폰은 특히 팬 미팅에 열정적으로 나서 가장 늦게 경기장으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폰이 면세점 쇼핑으로 경기에 늦었다는 외신 보도에 대해 로빈 장 대표는 "그럴 수 있는 일정이 없었다. 부폰은 가장 열심히 해 준 선수"라며 오보라고 했다.

▲ 킥오프 지연, 호날두 결장으로 최악의 사례가 된 유벤투스 내한 경기 ⓒ한희재 기자

◆ 슈퍼스타 답지 못했던 호날두, 한국 축구 산업에 타격

전반전까지만 해도 벤치에 앉아 한국 팬들의 환호에 화답하던 호날두는 후반전 잔뜩 표정이 굳은 채 왔다. 더페스타 관계자는 전반전이 끝난 뒤 유벤투스 실무진과 연락이 두절됐다고 했다. 전반전 뒤 유벤투스가 호날두에게 출전을 요청했으나 결국 무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유벤투스 고위 관계자는 후반전 진행 중 10분이라도 뛰게 해 달라는 더페스타 측의 요청에 "나도 미치겠다. 호날두가 뛰었으면 좋겠지만 그가 안 뛴다고 한다"는 답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날두는 프리시즌에 무리한 일정을 만든 유벤투스에 대한 항의와 불만을 드러내며 출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벤투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내한 경기 입국 일정부터 진행 과정에서 프로답지 못했다. 호날두도 자신의 감정 때문에 팬을 희생양으로 삼아선 안됐다. 자신을 보려고 모여든 관중의 기대를 저버린 것은 세계적 스타가 보여선 안될 모습이었다. 단 10분이라도 뛰거나, 정말 부상 우려가 있었다면 팬 미팅에 참석을 하거나, 경기 진행 중 다른 팬 서비스를 할 수도 있었다. 

◆ 축구 팬 불신 안긴 대형 악재, 프로연맹도 적극적으로 수습 나서야

유럽 클럽 내한경기 진행이 처음인 더페스타는 크나큰 시행착오를 겪었다. 9년 전 바르셀로나 내한 경기 때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연맹은 결국 하지 말았어야 할 날짜의 경기를 승인해 많은 축구 팬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9년 전 바르셀로나 내한 경기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던 기회가 오히려 불신을 더 높이는 빌미가 되고 말았다. 한국 축구 산업 전체에 부정적 레퍼런스로 남을 사건이다. 호날두가 뛰는 경기를 보기 위해 거금을 쓰고 소중한 시간을 낸 6만 5천 관중에게, 관계된 이들은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

프로연맹은 이번 내한 경기를 주관한 것이 아니라 팀 K리그도 초청 팀으로 참가했을 뿐이라지만, K리그 최고 선수들이 참가한 사실상의 올스타전이다. 연맹도 적극적으로 홍보한 경기다. “우리도 피해자”라는 식의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번 ‘파행’의 가장 큰 피해자가 K리그를 사랑하는 팬이기 때문이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무너질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 다리는 건너지 말았어야 했다. 

스포티비뉴스=서울월드컵경기장,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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