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상하이, 이교덕 기자] "세컨드 지시가 잘 들리지 않더라. 원래는 들어갔다가 펀치를 때리고 나오는 전략이었는데…."

여고생 파이터 남예현(17, 천무관)은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에서 완패를 인정했다. 자신의 종합격투기 데뷔전에 가차 없이 '빵점'을 줬다.

"기분 좋은 긴장감 정도였다고 생각했는데, 몸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경기 전 초코바를 먹었는데, 이게 가슴에서 내려가지 않고 탁 걸렸다. 경기를 마치고 다 토했다."

27일 상하이 푸동 샹그릴라 호텔 로비에서 마주한 남예현은 아쉬움을 안은 채 옅은 미소를 지었다.

26일 상하이 동방체육관에서 열린 '로드FC 27 중국 대회(ROAD FC 027 In CHINA)'에서 남예현은 산타 출신 타격가 얜시아오난(26, 중국)의 펀치와 킥을 연거푸 맞으면서도 경기 시간 10분 동안 전진 또 전진했다.

안타깝게도 실력에선 확실히 밀렸다. 얜시아오난은 이미 7전(6승 1패)을 경험한 선배 파이터. 남예현이 들어오면 곧바로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결과는 0-3 판정패.

남예현은 "예상치 못한 옆차기가 얼굴로 날아왔다. 이마로 상대 주먹을 받으면서 전진만 했던 것 같다. (최)무송 오빠 등 남자 선수들과 훈련하면서 맷집은 자신 있었다. 그런데 실력 차가 분명했다"며 멍이 가득한 얼굴로 웃었다.

"우리나라 종합격투기, 우리 체육관 천무관, 관장님이신 아버지, 그리고 로드FC를 부끄럽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끝까지 싸웠다"며 "그렇지만 준비한 걸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한 나에게 분했다"고 밝혔다.

풀이 죽지는 않았다. 경기 전 아버지 남기석 관장은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에서 "앞으로 인생에서 많은 고난이 있지 않겠나. 승패를 떠나 우리 딸이 이번 경기에서 많이 배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남예현은 "아버지 말씀대로다. 많이 깨달았다. 감량이 너무 힘들었다. 발목을 다쳐 체력 훈련도 충분히 하지 못했다"며 "올해 경기를 뛰지 못할 줄 알았는데 기회가 찾아와 기뻤다. 내년에는 많이 보완해서 나오겠다"고 약속했다.

태권도 선수 출신인 남예현은 2년 전인 중학교 3학년 때 오른쪽 발목 인대 재건 수술을 받았는데, 올 여름 삐끗해 같은 곳을 또 다쳤다. 그는 지난 가을, 재활 때문에 양껏 훈련하지 못했다. 살도 많이 쪄 약 15kg 체중을 빼야 했다.

시행착오를 거쳤다는 남예현은 내년에 발목을 완치하고 평소 체중도 줄여 놓는 등 만반의 준비를 다하겠다는 각오를 나타냈다. "두 번째 경기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버지가 시켜서 격투기를 하는 걸로 아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다. 이건 내가 선택한 길이다."

그 말처럼 이제 친구들과는 다른,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된다. "솔직히 공부는 포기했다"고 폭탄 선언(?)한 남예현은 "친구들이 진로를 걱정할 때, 난 이미 내가 가야 할 길을 정했다. 운동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런 점은 좋다"고 했다.

"공부에는 마음을 비웠다. 아버지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시는데…"라며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남예현은 취향도 또래와 다르다. 아이돌 가수보다 UFC 여성 파이터 함서희를 더 좋아한다. 이전에도 "함서희 선수를 닮고 싶다"고 자주 말해 왔다.

"지난번 아버지가 연결해 함서희 선수와 통화한 적이 있다. 너무 떨려서 말도 제대로 못했다"는 남예현에게 '함서희와 함께 인터뷰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추진해 보겠다'고 하니 'EXO'를 만나는 것처럼 설레 했다.

그의 목표는 함서희처럼 월드 클래스 기술을 갖추면서도 저돌적인 파이터가 되는 것이다.

이래저래 해도 그는 고등학교 2학년 여고생. 이날은 매서운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주먹을 날리던 파이터가 아니었다.

순수한 여고생으로 돌아온 남예현은 "내일(28일) 학교에서 축제를 한다. 그런데 내일 귀국하는 바람에 축제에 참석하지 못한다. 발목을 다쳐 올해 체육대회도 가지 못했다. 고3이 되면 그런 행사가 없다. 고등학교 시절 추억이 될 만한 일들인데…"라며 작은 한숨을 쉬었다.

제자가 아닌 딸로서, 남기석 관장에게 못 다한 말도 있었다. "관장님으로서 더 강한 선수로 키워 주셨으면 좋겠다"면서도 "가끔은 자상한 아버지를 원할 때도 있다"고 웃었다.

귀여운 투정을 부려도 알 건 안다. "삼촌 코치님들이 '아버지가 체육관에서는 호랑이처럼 날 대해도 사실 네 걱정 뿐'이라고 귀띔해 주셔서 그 속내를 알고 있다"며 "이번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봤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촉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기석 관장은 딸의 패배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뒤 "정말 운동을 계속해야 겠냐"고 딸에게 다시 물었다고 한다. 남 관장은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에서 "마음을 굳게 먹었는데도 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안쓰러웠다"고 고백했다.

로드FC는 남예현을 비롯해 박정은, 이예지 등 신진 여성 파이터들을 키우고 있다. "여성 선수들의 경기를 다 봤다"는 그는 "모두 실력을 쌓아 나가면 언젠가 경쟁하는 날이 올 것 같다. 토너먼트를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기사에서 '얼짱 여고생 파이터'라는 수식어를 보면 닭살이 돋는다고 했다. "이예지 선수는 그렇게 표현해도 되지만, 난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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