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에는 안경을 끼는 앤더슨 실바. 옥타곤에선 맨눈으로 싸운다.
지금은 UFC 미들급에서 활동하는 데릭 브런슨(32, 미국)은 스트라이크포스 시절인 2012년 2월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호나우두 자카레 소우자와 미들급 대결을 앞두고 오하이오주 체육위원회로부터 출전 취소 통보를 받았다.

"브런슨은 메디컬 테스트에서 눈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렌즈를 낄 수도 없다. 출전을 불허한다." 오하이오주 종합격투기 대회에서 렌즈를 못 껴 출전이 취소된 최초 사례였다.

브런슨은 부들부들 떨었다. "어처구니없다. 지금까지 렌즈 끼고 11경기 했다. 그동안 문제없었는데 이번에는 왜 렌즈 착용을 막느냐"며 "스티비 원더가 눈 감은 채로 피아노치고 운전해서 다 그러는 줄 아는 건가. 난 렌즈 없이 못 싸운다"고 말했다.

버니 프라포토 오하이오주 체육위원회 상무 이사는 "오하이오주에선 투기(복싱, 킥복싱, 종합격투기, 가라테 등) 종목 선수들의 렌즈 착용을 허락한다. 다만 기준이 있다. 비교정 시력이 한쪽 눈 20/200, 양쪽 시력이 20/60을 넘어야 한다. 브런슨의 시력은 20/400으로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선수 안전이 우리의 최우선 가치"라고 설명했다.

브런슨은 5개월 뒤 라식 수술을 받았다.

오늘날 전 세계 안경 인구는 34%. 디지털화, 스마트폰 기기의 증가로 안경 보급률이 늘어나는 추세다. 호주 브라이언 홀든 시각 연구소 연구팀은 향후 2050년 안경 인구가 전 세계 49%인 48억 명에 이르리라 전망한다.

사람들은 주먹다짐할 때 "안경 벗어"라는 말을 심심찮게 한다. 은연중 쌍방을 보호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렌즈가 깨지면 파편이 튀어 눈이나 손 등 신체에 박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싸우다가 안경을 깨뜨리면 살인 미수'라는 말은 낭설)

낮은 시력은 경기할 때 안경을 쓸 수 없는 투기 종목 선수들에게 크나큰 핸디캡이다. 보이지 않으면 때리기 힘들고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부 눈 나쁜 선수들은 경기할 때 콘택트렌즈를 낀다. '샤크' 김민수와 정경미는 각각 1996년 2008년 애틀랜타, 베이징 올림픽 유도 국가 대표 선수로 렌즈를 끼고 경기했다. 둘 다 경기하다가 콘택트렌즈가 빠지는 해프닝을 딛고 메달 시상대에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UFC 한국인 파이터 양동이는 시력 교정 수술로 시야를 확보했다. 2011년 1월 11일 라섹 수술을 하고 그해 3월 4일 롭 키먼스에게 UFC 데뷔승을 거뒀다. "지난해 경기하다가 백내장이 생겨 지금은 시력이 떨어진 상태다. 하지만 당시엔 시력이 좋아지니 경기가 잘 풀렸다"고 돌아봤다. 전 UFC 라이트급 챔피언 벤슨 핸더슨도 시력 교정 수술(PRK)을 한 사례다.

다만 때리고 뒹굴고 조르는 종합격투기에선 렌즈나 시력 교정 수술이 능사가 아닌, 위험한 수단이라는 시각이 짙다. 안과 전문의들은 종합격투기 또는 복싱에선 안구에 많은 충격이 누적되기 때문에 렌즈 착용을 특히 지양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오하이오주 체육위원회에 따르면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가 있는 네바다주 체육위원회도 경기 중 렌즈 착용에 대해 유사한 지침을 세워 두고 있다.

UFC 라이트급 파이터 미치 클라크는 공교롭게도 렌즈 때문에 경기에서 화를 당한 케이스다. 클라크는 2011년 12월 11일 UFC 140에서 존 콜리시와 옥타곤 데뷔전에서 상대 손에 찔려 한쪽 렌즈가 빠졌다. 강행하다가 주먹에 맞아 나머지 한쪽 렌즈가 눈에서 나갔다. 결국 팽팽히 맞서 가다가 렌즈 두 개가 빠진 뒤로 급격히 흐트러졌다. 테이크다운 당하고 2라운드 4분 36초에 파운딩으로 졌다.

투기 종목에선 시력 대신 동체 시력을 주목한다. 동체 시력의 정의는 '움직이는 사물에 대해 뇌가 반응해 몸에 명령을 내려 행동하도록 하는 일련의 시간적 단위 능력'으로 동체 시력이 좋은 선수는 반응 속도가 빨라 잘 때리고 잘 피한다. 안과 전문의에 따르면 정지 시력과 다른 개념이다. 코너 맥그리거, 조제 알도, 앤더슨 실바 등 타격가가 동체 시력이 좋다.

따라서 파이터 전부가 정지 시력을 교정하고 싸우지는 않는다. UFC 7대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이자 2005년 프라이드 그랑프리 미들급 준우승자인 퀸튼 램페이지 잭슨은 2007년 2월 UFC 데뷔전에서 옥타곤에 오르기 전 눈 안에 렌즈를 엄지와 검지로 콕 집어 뺐다. 앤더슨 실바와 조니 헨드릭스는 평소에는 안경을 쓰지만 경기에선 맨눈으로 빠른 반응 속도를 자랑한다.

국내 파이터들도 대개 동체 시력에 비중을 둔다. 교정 없이 흐릿한 눈으로 주먹을 휘두른다. "시력이 낮아도 경기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로드 FC 페더급 챔피언 최무겸은 "나이가 들어 눈이 나빠졌다. 시력이 0.2다. 평소에는 안경을 써도 운동할 때나 경기할 때에는 맨 눈이다. 멀리서만 안 보이지, 가까이에선 다 보여 전혀 지장 없다"고 밝혔다. 미들급 챔피언 차정환도 같은 생각. "근시와 난시가 있어서 평소에만 안경을 쓴다. 경기할 때에는 안경을 안 써도 전혀 지장이 없다"고 했다.

로드 FC 경량급 강자 김수철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안경을 쓴다. 하지만 경기에선 그냥 맨눈으로 싸운다. 격투 종목에서 렌즈 착용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잘 보이지 않아도 감으로 싸운다"고 밝혔고, TFC 페더급 조성원은 "시력이 마이너스 4인데도 교정하지 않고 싸운다. 전혀 불편하지 않다. 상대의 주먹과 발차기만 보면 된다"고 밝혔다.

<기획자 주> 스포티비뉴스는 매주 수요일을 '격투기 칼럼 데이'로 정하고 다양한 지식을 지닌 격투기 전문가들의 칼럼을 올립니다. 격투기 커뮤니티 'MMA 아레나(www.mmaarena.co.kr)'도 론칭합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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