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과 3차전을 마치고 모두 쓰러진 한국 선수들 ⓒ한준 기자


[스포티비뉴스=카잔(러시아), 한준 기자] “관리가 필요했다. 이동이 너무 많아 일정이 빡빡했다.”

지난달 21일 서울광장에서 진행된 대표팀 소집 및 출정식에서, 그리고 독일과 2018년 러시아월드컵 F조 리그 3차전 경기를 마친 뒤 믹스트존에서 미드필더 구자철은 대표팀 운영 과정에 아쉬움이 있었다고 했다. 

대표팀은 오스트리아 레오강으로 가는 과정에 비엔나에 내려 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갔다. 전세기를 띄우고 싶었지만 추진 시점이 늦어 불가능했다.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했는데 손을 놓고 있다가 놓쳤다.

▲ 대표 팀은 잦은 이동과 이동과정의 피로로 고전했다 ⓒ연합뉴스


◆ 선수 컨디션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소집 훈련 일정 

파주에서 훈련하다 대구와 전주에서 진행한 국내 평가전도 이동에 많은 시간을 썼다. 오스트리아 전훈지 안에서도 이동이 많았다. 러시아 월드컵 자체도 이동이 빈번한 가운데 한 협회 고위 인사의 “월드컵 상황을 미리 겪어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말은 선수단의 체력 관리 측면에서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

대표팀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대표팀이 빡빡한 일정을 보내며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과정에는 예산 문제와 마케팅 측면의 문제도 있었다. 대표팀은 최고의 경기력을 내기 위한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구자철은 이번 대표팀에 유독 부상 선수가 많이 발생한 것도 불운이 아니라 인재라고 했다. 선수 컨디션 관리에 실패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개인적으로나 팀적으로,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프레시(fresh)하지 않았다. (소집하고) 30일, 4주 동안 휴식을 안 취했기 때문에 우려를 많이 했다. 그런 부분에서 아쉽다. 관리가 필요했다. 운동량이 좀 많았고. 이동이 특히 많았고, 거기에 비해 휴식이 없었다."

이용수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이번 대표팀에 코디네이터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본선을 앞두고 평가전을 4번이나 잡은 것도 너무 많았다. 경기를 4번 잡으면 체력훈련을 하지 말거나 충분한 휴식을 줬어야 했다"고 했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도 훈련 설계에 문제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신태용 감독의 대표팀 구조 설계가 잘못됐다. 훈련에서는 구자철이 경기 후 말한 것처럼 컨디션 사이클을 못 맞춘 것이 확실하다. 체력훈련에서 오버워크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파워 프로그램을 경기에 임박해서 하니 근육과 심장에 부담을 갖게 됐고, 젖산 피로도가 쌓여 회복속도가 늦어졌다."

"결과적으로 컨디션 피크 포인트를 잘못 맞추는 뼈아픈 실수를 했다. 독일 브라질 등 선진국은 결승 일자를 계산해 피크 지점을 결정짓는데 우리는 조별리그 세 경기, 특히 1차전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그걸 못했다."

◆ 본선 대비 어려웠던 부실한 평가전 상대

5월 28일 온두라스에 4-1 완승을 거둔 뒤. 허리 통증으로 쉰 주장 기성용은 “지금 우리가 붙는 팀들이 과연 우리가 월드컵에서 만날 수준이 맞냐고 생각하면 그런 부분이 아쉽다”고 했다. 

“오늘 승리에 대해선 우리가 취해있진 않을 것이다. 나도 얘기할 것이다. 감독님도 말하셨다. 처음 모여서 손발을 맞추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결과를 얻어서 상당히 좋기는 하지만, 강팀하고 해서 그런 적응력을 키우는 게 많이 아쉽다."

비단 온두라스전뿐 아니라 보스니아와 국내 평가전, 오스트리아 전훈지에서 볼리비아전 모두 아쉬워했다. 세네갈과 비공개 평가전 정도만 본선 적응력을 쌓고 실전 전술을 다듬는 데 도움이 됐다. 

물론 대한축구협회는 본선 진출을 확정한 시점부터 좋은 평가전 상대를 찾기 위해 분투했다. 하지만 성사시키지 못했다. 거기엔 한국 축구 자체가 경쟁력이 떨어져 매력적인 상대가 아니었던 부분, 먼 한국까지 오려는 팀이 없었던 부분, 거액의 초청비 등 다양한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온두라스와 볼리비아는 많이 아쉬운 스파링 파트너였다. 

▲ 스페인 출신 코치들은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


◆ 스페인 출신 코칭스태프 통역 지원 부족

대표팀은 코칭스태프 강화를 위해 전술 전문가 토니 그란데, 체력 전문가 하비 미냐노, 분석 전문가 파코 가르시아 등 외국인 코치를 선임했으나 스페인어 코치는 당초 한 명만 뒀다. 본선 대비 본격 체제에 들어가면서 한 명 더 추가했지만 업무량에 비해 원활히 소통되기 어려웠다. 선임 시점부터 스페인 출신 코칭스태프와 국내 코치진 및 선수들의 소통을 도울 지원이 더 필요했다. 

비록 조별리그 최하위로 탈락했지만 라인하르트 그린델 독일축구협회장은 독일 대표팀과 함께 이동하고 근거리에서 살피며 지원했다. 정몽규 회장은 국제축구연맹(FIFA) 평의회 의원이자 동아시아축구연맹 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정작 대표팀과 밀도가 떨어졌다. 경기 당일에만 현장을 찾아 관전했다. FIFA 총회 등 일정으로 훈련장을 찾아 격려한 것은 한 차례. 그마저도 바쁜 일정으로 잠시 들렀다 떠났다.

최영일 부회장이 단장으로 모든 일정을 함께 하며 필요한 부분을 체크하고 지원했지만 회장이 현장의 분위기를 체감해야 단호하고 과감한 결정이 필요하다. 보고를 받는 것만으로 절실하게 느끼기 어렵다. 이런 문제는 낯설지 않다. 당장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도 다르지 않았다.

▲ 본선 기간 단 한 차례 훈련장을 방문한 정몽규 회장 ⓒ대한축구협회


◆ 브라질 월드컵 백서에 있던 멘털 코치, 2018년에 없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실패, 지난 해 10월 불거진 히딩크 감독 논란 등을 겪으며 정 회장은 “뼈를 깎는 쇄신”과 “전폭적인 지원”을 말했다. 대표팀은 각고의 노력 끝에 독일을 꺾고 유종의 미를 거뒀다. 선수들의 헌신이 낳은 결과였다. 이들에게 적절한 지원과 체계적인 계획이 따랐다면 더 좋은 성적도 가능했다. 우리의 가능성을 우리 스스로 까먹었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10년 전에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이 끝나고 백서를 만들었는데, 활용하려고 만든 게 아니라 백서를 만들려고 만든 것 같다. 전형적인 보여주기 행정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수들의 심리 관리를 위한 멘털 코치 보강을 지난 대회 백서에 기입했는데 이번 대회에 적용되지 않았다. 상대국은 대동하고 있었다. 

평가전부터 소집 훈련, 이동에 심리 관리까지 대표팀은 스스로 다지고 만들어야 했다. 방패와 갑옷도 없이 칼 한 자루 쥐어주고 콜로세움에 떠민 것과 다름 없다. 비난의 화살은 온통 실수한 선수들과 감독에게 쏟아졌다. 

스웨덴전은 부진했으나 멕시코전은 선전했고, 독일전은 승리했다. 한국 축구의 저력을 보였다. 이 저력이 두 대회 연속 결실이 되지 못한 이유는 분명하다. “어차피 이번 월드컵은 참가에 의의를 둔다”는 협회 내부의 충격적인 발언도 있었다. 협회부터 이 대표팀을 믿어주지 않았고, 밀어주지 않았다. 팬의 비판, 협회의 외면 속에 대표팀은 외로운 싸움을 했다. 한국의 조별리그 탈락은 필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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