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 스포티비뉴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요즘 프로 배구 여자부 경기는 온통 여성 세계다. 선수야 당연히 여성일 수 밖에 없고 6개 구단 가운데 여성 감독이 2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2명이나’라는 표현에는 한국 스포츠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담겨 있다.

지난 15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2017 천안ㆍ넵스컵 프로 배구 대회 여자부 조별 리그 B조 경기에서는 이도희 감독이 이끈 현대건설이 박미희 감독의 흥국생명을 세트스코어 3-0으로 이겼다.

‘청일점’ 수준은 아니지만 두 팀의 경기가 벌어질 때 남성 코치 몇몇이 좀 어색해 보인 건 그동안 한국 스포츠가 남성 중심으로 펼쳐져 온 영향일 수 있다. 프로든 아마추어든 여성 지도자 사이에 맞대결이 벌어진 건 한국 스포츠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일 것이다.
 
글쓴이는 1970년대에 여성 스포츠와 관련해 두 가지 충격적인 경험을 했고 지금도 그때 일을 또렷이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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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반 여자 배구 대표 팀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이따금 태릉선수촌에서 나와 훈련했는데 글쓴이의 모교에도 가끔 왔다. 나라의 경제력 때문에 외국 전지훈련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다.

훈련 파트너로는 그 무렵 남자 고교 배구 명문 대신고가 주로 나섰다. 연습 경기는 10세트로 진행됐다. 당시는 사이드아웃제였고 살인적인 훈련량이었다. 대신고에 세트를 내주면 팔굽혀펴기 등 강한 체력 훈련이 뒤따랐다. 블로킹 훈련 때는 손가락에 오자미를 달고 뛰어올랐다. 무의식중에 손가락이 아래로 내려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어린 마음에 ‘여자 선수들이 저렇게 훈련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훈련하고도 여자 배구 대표 팀은 1972년 뮌헨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북한에 세트스코어 0-3으로 져 4위에 머물렀다.
 
잠실체육관 준공을 기념해 1979년 5월 열린 제8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우승국은 미국이다. 한국은 준우승했다. 그런데 글쓴이는 미국 여자 농구의 수준보다 미국 대표 팀을 이끌고 있는 사령탑이 여성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게다가 나이도 많지 않아 보였다.

미국 대표 팀 감독 패트리샤 서미트는 그때 27살이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 농구 은메달리스트로 24살부터 지도자 생활을 한 서미트는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산하 농구 종목 남녀부는 물론 모든 디비전을 포함해 최다승(1,098승 208패 승률 8할4푼1리) 기록을 갖고 있는데 지난해 6월 64살의 다소 이른 나이에 타계했다.
 
여성 스포츠가 한국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9세기 후반 이 땅에 축구를 비롯한 근대 스포츠가 들어오기 시작한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1세기가 넘는 오랜 기간 여성 체육인들은 한국 스포츠 발전에 크게 한몫했다.
 
한국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동계 대회까지 출전한 하계·동계 올림픽은 각각 17차례와 18차례다. 1980년 모스크바 여름철 대회와 1952년 오슬로 겨울철 대회는 정치적인 이유 또는 국내 사정으로 불참했다. 35차례 올림픽에서 한국은 116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편의상 금메달 기준으로 성적을 정리할 뿐이지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은 모두가 훌륭한 운동선수들이다.
 
116개 금메달 가운데 여자 선수가 50개를 따 43%를 차지하고 있다. 여름철 올림픽 금메달 90개 가운데 여자 선수가 거둬 들인 금메달은 37개(1996년 애틀랜타 대회와 2008년 베이징 대회 배드민턴 혼합복식은 0.5개씩 계산)이고 겨울철 올림픽 금메달 26개 가운데 여자 선수가 모은 금메달은 딱 절반인 13개이다.
 
동계 대회에서 여성의 활약상이 좀 더 돋보인다.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와 1998년 나가노 대회 2연속 2관왕 전이경과 2006년 토리노 대회 3관왕 진선유(이상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2010년 밴쿠버 대회와 2014년 소치 대회 2연속 금메달리스트 이상화(스피드스케이팅)가 이 같은 성과에 힘을 보탰다.
 
한국 여성 스포츠가 사회·문화적인 여건 때문에 남성 스포츠보다 본격적인 출발이 늦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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