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성용 ⓒ한준 기자

[스포티비뉴스=스완지(영국), 한준 기자] 스완지시티가 아스널을 3-1로 격파한 2017-18 프리미어리그 25라운드 경기. 리버티 스타디움 현장에서 취재한 이날 경기의 90분간 기성용의 플레이에 눈이 모인 것은 팔이 안으로 굽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기성용이 스완지시티의 경기 계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수의 가치를 표현하기에 공격 포인트는 편향된 면이 있다. 축구는 팀 스포츠이고, 득점은 공격수에 집중된다. 어시스트는 골로 가는 모든 과정을 설명하지 못했다. 선수가 얼마나 인정을 받고 있는가를 묵직하게 설명하는 기록은 ‘출전 횟수’다. 학교에서 주는 개근상은, 묵묵하고 꾸준히 맡은 일을 해온 성실함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미드필더 기성용이 2018년 1월 30일(영국시간)에 달성한 한국인 프리미어리그 통산 최다 출전 타이 기록(154회)은 의미가 작지 않다. 박지성이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 퀸즈파크레인저스에서 뛰며 남긴 기록과 동률을 이룬 기성용은, 이제 한 경기만 더 뛰면 새로운 기록의 주인공이 된다. 그가 나서는 매 경기가 신기록이 된다.

프리미어리그는 세계에서 가장 격렬하고 치열한 무대다. 아스널과 치른 2017-18시즌 25라운드 경기. 부상으로 인해 자신의 올 시즌 13번째 리그 경기에 나선 기성용은, 2012-13시즌부터 여섯 시즌 연속 프리미어리그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90분 간 보인 경기력을 통해 입증했다. 그가 대기록을 달성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특히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강팀 중 하나인 아스널과 경기에서, 기성용은 자신이 그토록 오랜기간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꾸준히 기회를 받을 수 있었는지 보여줬다. 매 경기 90% 이상의 패스 성공률을 보이는 기성용의 가치는, 기록지가 아니라 그라운드 위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중계 화면을 통해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기성용의 ‘비결’은 그의 모든 플레이에 주저하는 모습이 없다는 것이다.

▲ 나서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아는 기성용 ⓒ한준 기자


◆ 어디로 줘야 할지, 언제 돌아서야 하는지 아는 기성용

공을 받으면 어디로 길을 열어야 하는 지 안다. 미리 동료의 움직임과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해두고 전진 패스를 보낸다. 앞 길이 막히면 상대 압박에서 공을 지키기 위해 몸을 튼다. 공 소유권을 내주지 않기 위해 어느 방향으로 터치해야 하는지 판단을 마치고 공을 받는다. 기성용의 패스 미스가 적은 것은 본인이 주기 편한 패스를 할 뿐 아니라 동료가 받기 편할 때만 패스하기 때문이다. 무리한 패스, 무모한 패스가 없다.

이날 스완지는 아스널의 공격을 막기 위해 5-4-1 포메이션으로 나섰다. 타이트한 두 줄 수비를 펼치며 역습하는 전략을 썼다. 4명의 미드필더 중 중앙 왼쪽에 배치된 기성용은 르로이 페르와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다. 조르당 아유가 원톱으로 나섰는데, 스완지시티는 라인을 올리기 보다 안정적으로 자기 진영을 지켰다. 아유 홀로 전방 압박을 펼치기엔 범위가 좁다. 기성용은 미드필더 가운데 아스널의 후방 빌드업이 전개될 때 적절한 타이밍에 전진하며 압박 그물을 이뤘다. 

기성용은 나가야 할때만 나갔다. 무리하게 전진해 두 줄 수비에 빈틈이 생기지 않게 했다. 이날 스완지시티는 왼쪽 미드필더로 나선 샘 클루카스가 중앙 전방으로 잘라 들어오고, 스리백 중 왼쪽에 선 알피 머슨이 미드필더로 올라와 아스널 수비의 허를 찌르는 공격을 했다. 이때마다 기성용은 클루카스와 머슨이 비운 공간을 점유해 수비 공백이 없게 했다. 전반 34분 머슨의 스루 패스에 이은 클루카스의 동점골 장면에서 기성용은 이들이 올라간 뒤를 지키고 있었다.

▲ 스완지시티의 분명한 중심, 기성용 ⓒ한준 기자


◆ 지능적인 움직임, 공 없을 때도 빛나는 빌드업 미드필더 기성용

공을 연결할 때뿐 아니라 공간을 찾아가는 움직임을 선택할 때도 기성용은 빠르게 판단했다. 프리미어리그의 템포는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볼 처리와 커버 플레이의 타이밍이 반 템포만 늦어도 공격 흐름이 끊기고, 수비 허점이 발생한다. 

기성용이 꾸준히 출전 기회를 받고, 동료 선수들의 공을 집중적으로 전달 받는 이유는 그가 믿음직하기 때문이다. 그가 믿음직한 것은 매 순간 주저 없이 적절한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기성용이 높은 패스 성공률을 기록하는 것은 그가 안전한 패스만 하기 때문이 아니라, 팀 플레이가 무리 없이 전개될 수 있는 판단 속에 경기하기 때문이다.

기성용은 빠르고 화려한 선수가 아니지만, 빼어난 축구 지능과 정확한 킥 능력을 통해 스완지시티에 꼭 필요한 선수이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기에 차이를 만들어내는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물론 기성용이 눈에 확 띄는 플레이를 할 때도 없지 않다. 이날 전반 16분에는 중원에서 공을 받은 뒤 슈팅 공간이 열리자 지체 없이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다. 아슬아슬하게 골문 옆으로 빗나갔다. 아스널 수비와 골키퍼의 제어 범위를 벗겨내려다 골문 밖까지 나갔다. 후반 25분에는 좌측면 후방 먼 거리에서 직접 오른발 프리킥 슈팅으로 페트르 체흐 골키퍼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후반 12분에는 기성용이 아스널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전진하는 과정에서 사령탑으로 공을 주고 받으며 뿌렸다. 네이선 다이어의 오른쪽 측면 돌파에 이은 크로스 패스가 나오는 과정이 기성용을 중심으로 한 빌드업을 통해 나왔다. 나서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아는 노련미는 기성용이 한국이 낳은 역대 최고의 빌드업 미드필더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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