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영상 자카르타(인도네시아) 이강유 기자, 글 아시안게임 특별취재팀, 조영준 기자] "선수 생활을 이어 갈지 고민했었어요. 아마 더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마지막 대회는 도쿄 올림픽이 되겠죠."

▲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육상 여자 100m 허들에서 금메달을 딴 뒤 태극기를 들고 세리머니하는 정혜림 ⓒ 연합뉴스 제공

▲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육상 여자 100m 허들 결선에서 1위로 들어오고 있는 정혜림 ⓒ 연합뉴스 제공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있었다. 육상 단거리 선수로는 많은 나이도 고민이었다. 큰 대회에서 빛을 보지 못한 뼈아픈 경험도 그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정혜림(31, 광주광역시청)은 이 모든 것을 이겨냈다.

세 번째 출전한 아시안게임에서 정혜림은 마침내 자신을 향해 다가온 햇살을 맞이했다. 정헤림은 2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GBK 메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육상 여자 100m 허들 결선에서 13초20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순탄치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국내 단거리 대회를 휩쓴 정혜림은 2011년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100m 허들에서 준우승했다. 그해 대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도 경험했지만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한국은 육상 단거리의 불모지다. 세계 기록과 큰 차이가 있었지만 정혜림은 멈추지 않았고 2012년 런던 올림픽 100m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첫 올림픽에 나선 그의 목표는 결선 진출이었다. 당시 정혜림은 "힘든 점은 있겠지만 목표인 만큼 해내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정혜림은 결선 무대에 서지 못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두 번이나 허들에 걸리며 4위에 그쳤다.

▲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육상 여자 100m 허들 결선에서 1위로 골인한 뒤 기뻐하는 정혜림 ⓒ 연합뉴스 제공

런던 올림픽에 출전할 때 그의 나이는 25살이었다. 20대 중반,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쓴맛을 본 그는 점점 하락세를 탈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정혜림은 서른을 넘어서며 '꽃길'을 걸었다.

지난해 서른이 된 그는 아시아선수권대회 허들 100m에서 우승했다. 또한 각종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따며 여자 허들 100m 아시아랭킹 2위에 올랐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는 자기관리에 철저했다. 큰 부상 없이 이번 아시안게임을 준비한 그는 마침내 일을 냈다. 나이는 어느덧 만 31살이 됐지만 스피드와 체력은 20대 시절과 비교해 떨어지지 않았다.정혜림은 2016년부터 일본 선수들과 훈련했다. 

오랫동안 허들 국내 일인자였던 그는 우물 밖을 벗어나 자신보다 더 잘하는 선수들과 구슬땀을 흘렸다. 이해 팀을 광주광역시청을 옮긴 그는 남자 허들의 간판이었던 박태경(38) 코치를 만난 뒤 막판 스퍼트 등 문제점을 보완했다.

정혜림은 "단거리 육상 선수라면 다 그렇겠지만 웨이트트레이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꾸준한 근력 훈련이 이루어지면서 힘과 체력이 좋아졌다. 놀라운 것은 과거 겪었던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오가 새롭게 성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앞둔 정혜림은 노련함은 물론 정신력도 과거와 비교해 달라졌다. 2016년 서른의 나이에 개인 최고 기록인 13초04를 세운 정혜림의 저력은 이번 대회에서 열매를 맺었다.

▲ 정혜림 ⓒ 연합뉴스 제공

정혜림은 "실수하지 말아야 하기에 경기를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한다"며 "마지막 허들을 넘어서야 내가 몇 등으로 들어오는 지 안다"고 환하게 웃었다. 

정혜림이 마지막까지 육상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12초대 진입이라는 목표 때문이다. 2년 전 12초에 근접한 기록을 세운 정혜림은 자신이 세운 한국 기록 경신에 도전한다.

정혜림은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준비할 예정이다. 이 대회에 나가려면 기준 기록을 통과해야 한다. 이것을 해내는 것이 먼저다"고 힘주어 말했다.

4년 전 홈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육상은 '노 메달'에 그쳤다. 정혜림은 육상에서도 어려운 단거리 허들에서 값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한국 육상에 안겼다. 그는 "염원하는 한국 기록에도 도전하고 싶다. 앞으로 열심히 할테니 허들에 더 많은 응원과 애정을 부탁드린다"는 말도 남겼다.

2년 뒤 정혜림은 어느덧 34살이 된다. 서른 살에 그가 맞이한 '허들 꽃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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