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사니 ⓒ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수원, 조영준 기자] "저는 세터지만 (한)유미가 가장 힘들어 할 거 같아요. 공격뿐만이 아니라 수비와 리시브도 해야 하니까요. (정)대영이는 체력은 정말 타고 난 거 같습니다. 우리 가운데 가장 오래 선수로 뛸 거로 생각해요. 경기를 마치고 나면 문자로 고생했다고 격려합니다."

과거, 배구는 구기 종목 가운데 선수들의 생명이 짧다고 여겨졌다. 20대 중반을 넘기면 팀의 베테랑이 되고 서른을 넘은 선수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나이에도 여전히 좋은 기량을 펼치며 후배들의 본보기가 되는 이들이 있다.

김사니(35, IBK기업은행) 정대영(35, 도로공사) 한유미(34, 현대건설) 이효희(36, 도로공사) 김세영(35, 현대건설)은 모두 30대 중반이다. 그러나 이들은 나이를 잊게 할 정도로 코트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여전히 한국 최고 세터, 시련 이겨 낸 김사니

IBK기업은행에는 뛰어난 국가 대표 공격수 김희진(25)과 박정아(23)가 있다. 여기에 믿음직한 외국인 공격수 리쉘(23, 미국)이 버티고 있다. 이들을 조율하는 소임을 하는 이는 김사니다. 노련한 김사니의 지휘가 있기에 IBK기업은행의 조직력은 한층 탄탄하다.

IBK기업은행은 25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시즌 NH농협 프로 배구 V리그 여자부 2라운드 현대건설과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1(25-23 25-23 19-25 25-23)로 이겼다. 7승 3패 승점 22점을 기록한 IBK기업은행은 단독 선두를 달렸다.

김사니는 최근 4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오른쪽 종아리 부상으로 코트에 나서지 못했던 그는 설상가상 부친상마저 겪었다. 그의 부친은 딸의 경기를 보기 위해 자주 체육관을 찾았다. 거목의 그림자처럼 김사니의 뒤를 지켜 준 아버지는 딸과 작별을 고했다.

지난 15일 부친상을 당한 그는 현대건설과 경기 하루 전에 손발을 맞추고 코트에 나섰다. 복귀를 위한 연습 시간은 짧았지만 예전의 기량을 발휘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은 "김사니의 부상으로 2라운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고은이가 코트에 들어가 경험을 쌓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경기에서 (김)사니는 몸이 매우 좋았다. 그동안 4경기를 못 뛰었고 집에 일도 있었다. 그러나 코트에 서니 빠르게 경기 감각을 찾았다"며 칭찬했다.

경기를 마친 김사니는 "아직 몸도 마음도 정상이 아니다. 하지만 저 하나 때문에 팀이 이루고자 하는 고지에 늦게 가고 싶지 않았다"고 승리 소감을 밝혔다. 그는 "내 개인적인 감정은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정철 감독은 "김사니는 베테랑은 베테랑이다"며 개인의 아픔을 씻고 코트에 나선 김사니를 높이 평가했다. 2005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그는 어느새 프로 11년째를 맞이했다. 도로공사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07년 KT&T(현 KGC인삼공사)로 이적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흥국생명에서 활약했고 2013년 아제르바이잔 리그로 진출했다.

2014년 V리그로 복귀한 그는 IBK기업은행의 유니폼을 입고 지금까지 코트에 서고 있다. 김사니는 소속 팀은 물론 국가 대표 주전 세터로 맹활약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했고 2012년에는 믿음직한 동료들과 런던 올림픽에서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최근 10년 동안 한국 여자 배구 역사에서 김사니란 이름 석 자를 빼놓을 수 없다.

▲ 정대영 ⓒ 곽혜미 기자

김사니의 동갑내기 친구 정대영, 한유미도 올 시즌 맹활약

정대영은 올 시즌 도로공사의 해결사 소임을 하고 있다. 그는 공격종합 9위(37.55%) 속공 7위(44.44%) 시간차공격 8위(38.57%) 이동 공격 3위(44.93%) 블로킹 7위에 올라 있다. 30대 중반이지만 여전히 팀의 주전 미들 블로커로 활약한다. 긴급 수혈한 외국인 선수 케네디 브라이언(22, 미국)의 한 방이 아쉬울 때 정대영은 노련한 플레이로 알토란 같은 득점을 올리고 있다.

한유미도 여전히 유니폼을 입고 있다. 1999년 당시 실업 팀인 현대건설에 입단한 그는 팀은 물론 국가 대표 주전 레프트 공격수로 활약했다. 2009~2010시즌 이후 해외 진출에 도전했지만 무적 신분이 되며 1년 동안 일반인이 됐다. 2011~2012시즌 코트에 복귀한 그는 KGC인삼공사 소속으로 우승을 경험했다.

▲ 한유미 ⓒ 한희재 기자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한유미는 그해 9월 은퇴했다. 그러나 그에게 코트만큼 어울리는 곳은 없었다. 한유미는 2014~2015 시즌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고 코트에 복귀했다. 그리고 올 시즌 후배들과 교대로 출전하며 힘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김사니는 "유미는 무릎 수술을 무려 4번이나 했다. 그런데 아직도 뛰고 있다"며 한유미를 격려했다. 시련은 그의 곁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이겨 내며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김사니와 정대영 그리고 한유미는 지난 10년 동안 V리그를 이끌었다. 이들의 활약은 국제 대회에서도 빛났다. 어려운 경기는 물론 짜릿한 경기도 함께 경험하며 잊을 수 없는 시간을 함께했다.

김사니는 "저와 붙을 때가 아니면 늘 친구들을 응원한다. 경기가 끝나면 '고생했다'는 메시지를 보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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