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이 알고싶다' 음원 사재기편. 방송화면 캡처

사재기’. 이 문제적 단어로 가요계가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 여름, 유독 무더운 날씨였지만 음원 차트는 발라드가 장악했다.‘서머송’이 사라지고 업계에서는 공공연하게 “차트가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11월에는 블락비 박경이 자신의 SNS에 바이브, 장덕철, 황인욱, 송하예, 임재현, 전상근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논란을 수면 위로 꺼냈고, 이름이 언급된 가수와 소속사는 고소로 맞대응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음원 사재기’ 사태의 재시작이다. 사재기에 대한 의혹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지만, 그 실체가 공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혹자는 바이럴 마케팅이 사실상 사재기라는데, 절대 아니라는 반박이 나온다. 과연 사재기가 있기는 한 것일까. 사재기는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이런 다양한 의문과 질문 속에서 스포티비뉴스가 사재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스포티비뉴스=장진리 기자]지난 4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사재기 논란에 더욱 불을 붙였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이날 '조작된 세계-음원 사재기인가? 바이럴 마케팅인가?'라는 주제로 가요계를 멍들게 하고 있는 음원 사재기 의혹에 대해 파헤쳤다. 의미 있는 화두를 던져 파장은 컸지만, 뚜렷한 정황이나 속시원한 해결 방안까지 제시되지는 못했다. 게다가 제작진이 의혹을 다루면서 아무 연관 없는 아이돌그룹 뉴이스트W의 이름을 노출해 화제는 엉뚱한 곳으로 흐르기까지 했다.

‘음원 사재기’가 대체 무엇이기에 대한민국이 이렇게 떠들썩할까. 의혹을 짚기 전에 ‘사재기’의 정의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사전은 '사재기'를 물건 값이 오를 것을 예상하고 폭리를 얻기 위해 물건을 몰아서 사들인다는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 

‘음원(음반) 사재기’는 다른 분야의 '사재기'와는 다른 의미로 통용된다. 물가 상승에 대비하는 행위가 아니라, 인기를 견인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구매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우리말샘 사전은 '음원(음반)을 제작, 수입, 유통하는 관계자가 판매량을 높이기 위하여 음원(음반)을 부당하게 구입하거나 구입하게 하는 행위'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실제 사재기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실체를 파악하거나 설명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음원 사재기'의 구체적인 행위로 먼저 우선 음악사이트에서 타인의 ID를 사거나 가짜 ID를 생성해 스트리밍 하는 방식 등이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활동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는 일이다. 그 누구도 사재기의 실체를 확인한 적이 없기에 그 개념을 정확히 하기는 사실 어렵다. 

▲ 음원 사재기 의혹을 실명으로 언급한 박경의 트위터. 박경 트위터 캡처

'음원 사재기'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 떠들썩한 논란으로 급부상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재기 논란이 제기된 시점은 대략 2010년대 초반부터였다. 2012년 SBS '본격연예 한밤(당시 한밤의 TV연예)‘ 등 방송에서도 음원 사재기 논란을 다뤘고, 2013년에는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등 3대 대형 기획사와 스타제국이 음원 사재기에 대한 수사를 요청했다.

기획사들의 문제제기 이후 문화체육관광부는 사재기 근절대책까지 내놨고, 2016년에는 소위 ‘사재기 처벌법’이라 불리는 음악산업진흥법 개정안도 처리됐다. 실제 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전무해 현실적으로 큰 효과는 없었다. 숀, 닐로의 음원 사재기 논란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직접 조사에 나섰을 때에도 의혹을 해소하지는 못했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데이터 분석만으로 사재기 유무를 판단하고 결론을 내기 어려웠다. 행정기관이 조사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불법 사재기를 뿌리 뽑자는 이야기만 10년째. 현실적으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사재기’ 자체가 유령처럼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도 데이터만으로는 음원 사재기 유무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두 손을 들었다. 

가요 관계자들은 “음원 사재기는 실제로 존재한다”고 입을 모아 말할 정도로 대부분 음원 사재기가 실재한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실제 누가 어떻게 사재기를 실행하는지 알지 못하고 처벌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재기는 존재한다고 대부분 심증을 갖고 있지만, 누가 범인이냐가 싸움의 쟁점이다. 정말로 범인이 있는 건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속에 가요계의 상처는 깊어만 가고 있는 중이다. 

▲ '그것이 알고싶다'에 등장한 사재기의 한 방식. 방송화면 캡처

심지어 음원 사재기를 한 당사자로 몰리고 있는 바이브 소속사 메이저나인 역시 “차트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사재기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사재기로 인해 차트 정상에 올랐다고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사재기'라는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른 관점의 차이다. 

즉, '어디까지 사재기로 볼 것이냐'는 범주의 문제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막강한 팬덤을 갖고 있는 아티스트의 팬들이 '스트리밍 총공'(팬들이 특정 시각을 정해 집단적으로 스트리밍하여 지지하는 가수의 차트 순위를 올려주려고 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을 한다면 이는 사재기일까? 음반 기획사에서 100명도 채 되지 않는 직원들이 '스밍'(스트리밍)을 하면 '순수한 구매자'가 아니기에 사재기인가? 무엇을 사재기로 볼 것이냐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의 생각은 엇갈린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불법적인 방법의 스트리밍을 통해 차트에 오르는 행위 자체만 사재기로 봐야하지 않나”라고 말했지만, 한 홍보마케팅 회사 관계자는 “사실 사재기의 영역은 모호하다. SNS를 이용한 마케팅부터 아이돌 팬덤의 ‘스트리밍 총공’까지, 공정한 경쟁인지를 따져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무엇이 사재기인지 정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기에, 유관협회는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지난해 11월 건전한 음원·음반 유통 캠페인 윤리 강령 선포식을 열고 건강한 가요계 환경 조성 필요성을 촉구했던 음악 산업 단체들은 대부분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사재기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기는 어렵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협회 관계자는 “사재기가 있다, 없다라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시급하다.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이후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 '그것이 알고싶다' 음원 사재기편. 방송화면 캡처

국내 최대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음악사이트 멜론을 비롯해 각종 음원 사이트는 ‘사재기로 대표되는 불법 행위를 방관하는 것 아니냐’는 이유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이들은 “ '음원 사재기'라는 단어 자체가 모호한 영역이다. 실제로 ‘음원 사재기’라 불릴 수 있는 사례가 있는 것인지조차 조사 중”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니뮤직 관계자는 “음원 사재기에 대해서 말씀드리기가 굉장히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나 그런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다만 아직 조사 중인 사안이다. 수사기관에서도 사재기가 맞다, 아니다 밝혀진 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그럼에도 자체적인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사재기라고 의심받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철저히 하고 있다"며 "외부 기관인 사재기 신고 센터의 요청이 있을 때 협조 중이다. 또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침도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멜론 관계자 역시 “사재기라는 말 자체가 모호하고 사재기 자체가 조사 중인데다 민감한 현안이다"면서도 "그러나 (사재기 수법이라고 의심받는) 매크로 등 불법적인 접근이 이뤄지지 않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차트뿐만 아니라 멜론 전체에서 비정상적인 이용이 있는 것은 아닌지 실시간 모니터링 중"이라며 "사재기 신고 센터의 요청에도 협조하고 있다. 언제든 공익적인 요청이 있다면 데이터 제공 등에 적극적으로 협조 중이다”라고 말했다.

현재의 가요계는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규정했듯 ‘조작된 세계’일까. 정말 가요계를 조작된 세계로 만든 가장 큰 요인은 음원 사재기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가요계가 서로를 상처내고 있지만, 여전히 미궁 속이다. 지금처럼 진실에 다가갈 수 없다면, 이 질문에 대한 의심과 의문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판도라의 상자가 마침내 열리고 말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의미있는 시작이다. 

스포티비뉴스=장진리 기자 mari@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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