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마는 죽지 않는다. 코너 맥그리거(오른쪽)는 두 체급 챔피언에 오르고 큰 세력이 구축했다.

'소원수리함'은 거의 비어 있었다.

티토 오티즈가 앙숙이 된 데이나 화이트 UFC 대표와 2007년 복싱 경기를 가지려 했고, 랜디 커투어가 어플릭션에서 예밀리야넨코 표도르와 싸우기 위해 2008년 UFC에 계약 해지를 요구하며 법정 싸움을 벌인 적은 있었다.

그러나 몇몇 선수들, 챔피언을 지낸 스타 파이터들 정도니까 UFC와 티격태격하는 게 가능했다. 대부분 파이터들은 불만이 있어도 속으로 삭히곤 했다.

이제 분위기가 바뀌었다. 할 말은 하는 파이터들이 많아졌다. 언론을 적절히 이용해 UFC를 들쑤신다. 요즘 '소원수리함'은 차고 넘친다.

코너 맥그리거가 UFC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정석을 보여 줬다. 옥타곤에선 왼손 스트레이트를 활용하고, UFC와 힘겨루기에선 PPV 판매 능력을 내세웠다.

기자회견에 무단으로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UFC가 지난 7월 UFC 200 출전자 명단에서 맥그리거의 이름을 빼 버릴 때만 해도 탭을 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맥그리거는 지난 8월 UFC 202 네이트 디아즈와 2차전에서 명승부 끝에 판정승하고 '패(覇)'를 만들더니, 지난 13일 UFC 205에서 에디 알바레즈에게 KO로 이기고 페더급과 라이트급 동시 챔피언에 올라 건드리기 힘든 세력을 구축했다. '대마(大馬)'가 됐다.

거물이 된 맥그리거는 두 벨트를 양쪽 어깨에 두른 뒤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UFC의 지분을 내게도 달라."

마크 헌트는 UFC 그리고 미국반도핑기구(USADA)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UFC 200에서 자신에게 판정승한 브록 레스너가 약물검사를 통과하지 못하자 "레스너의 파이트머니를 내게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트는 UFC에서 안토니오 실바, 프랭크 미어, 브록 레스너 등 약물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3명의 파이터와 싸웠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미국반도핑기구의 징계 강도가 너무 약하다고 탓했다.

계체를 통과하지 못한 선수가 상대에게 파이트머니 일부를 양도하는 것처럼 약물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선수가 상대에게 파이트머니 일부를 양도해야 한다고 하는데, 자신의 계약서에 그러한 조항을 추가하지 않으면 "경기에 나서지 않고 법정 싸움도 불사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헌트가 UFC와 계약을 깨고 일본 라이진으로 넘어가려고 '수'를 쓴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명분이 너무 확실해 헌트의 주장에 대체적으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 마크 헌트는 약물검사 징계를 강화해야 한다면서 동료들에게 힘을 실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하빕 누르마고메도프는 대대적으로 UFC와 코너 맥그리거를 압박한다. 다음 라이트급 타이틀 도전권을 달라고 계속 요구하고 있다.

"내가 없으면 UFC는 러시아에서 대회를 못 연다", "아일랜드 치킨, 붙어 보자", "타이틀 도전권 안 주면 UFC에서 떠나겠다", "UFC의 보호를 받는 맥그리거를 레슬링으로 끝내겠다"는 발언을 쏟아 냈다.

심지어 그는 UFC 205에서 마이클 존슨과 경기하는 도중에 옥타곤 옆에 있던 화이트 대표에게 "너의 아이(맥그리거)를 박살 내겠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9살 때 곰과 레슬링하며 그래플링 능력을 키운 누르마고메도프는 2008년부터 프로 파이터로 활동하면서 SNS와 언론을 이용하는 기술도 익혔다. 제법 날카롭다.

크리스 사이보그는 론다 로우지와 슈퍼 파이트가 아니면 140파운드 계약 체중 경기에 더 이상 나서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사이보그는 올해 UFC에 데뷔해 140파운드 계약 체중으로 두 번 싸워 모두 이겼다. 압도적인 타격으로 레슬리 스미스, 리나 랜스버그를 TKO로 꺾었다.

그런데 사이보그는 지난 두 경기가 로우지와 싸우기 위한 '포석'이었다고 밝혔다. 이제 로우지가 아니라면 살을 깎는 듯한 감량 고통을 거칠 이유가 없다며 다른 단체에서 본래 체급인 페더급으로 경기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조제 알도는 UFC가 리복 독점 계약을 맺어 따로 스폰서를 받지 못하게 됐을 때부터 불만을 터트려 왔다. 손해가 막심하다고 했다. 언더 아머와 계약한 미국미식축구리그(NFL)가 리복 독점 계약의 본보기라면 "NFL처럼 선수들에게 월급 형태로 후원금을 지급하라"고 주장했다.

알도는 지난 7월 UFC 200에서 프랭키 에드가를 꺾어 잠정 챔피언에 올랐지만, 맥그리거가 페더급 타이틀전을 치르지 않고 밖으로 돌자 폭발했다. 지난달 UFC에 "종합격투기에서 은퇴할 테니 계약을 풀어 달라"고 통보했다.

표면에 드러나지 불만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샤 테이트는 UFC 205에서 라켈 페닝턴에게 판정패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백스테이지에서 "병원에 가 보라"는 화이트 대표에게 "저리 가. 이제 난 네 밑에서 일하지 않아"라고 짜증을 냈다는데, 지금이야 화이트 대표 앞에서 웃는 선수들도 나중에 이러지 말라는 법 없다.

▲ 조제 알도는 UFC가 NFL처럼 월급 형식으로 리복 후원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들의 불만 하나하나는 UFC의 권한으로 해소 가능하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즉 UFC가 따로따로 협상해 '각개격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헌트는 뜻을 같이하는 파이터들이 모이길 바라지만 발품을 팔지는 않는다. 세력을 규합하는 데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그의 변호인은 "헌트가 바라는 건 다시 경기를 뛰는 것"이라며 원만한 해결을 바라고 있다. UFC가 협상 테이블에 앉아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하면 헌트가 팔짱을 풀 수 있다.

알도는 지난달 23일 트위터에서 "종합격투기 은퇴를 다시 생각하고 있다. 가족과 대화를 나눴다. 여러 팬들의 목소리도 들었다. 좋은 일이 곧 있을 것"이라고 은퇴 번복 가능성을 내비쳤다. '위장 공격'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UFC가 당근을 주면 삐쭉 나온 알도의 입이 쏙 들어가지 않을까.

UFC 파이터들이 선수 협회를 만든다면 새 국면을 맞이한다. 그러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전망. 전면에 나서 UFC와 얼굴을 붉히며 싸울 리더가 선뜻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화이트 대표는 "(선수 협회를 만드려는 그들에게) 행운이 함께하길 빈다. 격투기 사업은 많이 다르다. 개인 종목이다. 단체 종목이 아니다. 선수들은 각자의 매니저가 있다. 매니저와 갈라서고 새 매니저를 얻는다.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결국 내가 선수 협회를 신경 쓸 것 같은가? 난 각자 한 사람과 협상해야 한다. 선수 협회는 내 문제가 아니고, 파이터들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터들이 자신의 이익을 일부 포기하고, 나서서 싸울 대표가 파이터들을 진두지휘할 만한 구도가 빠른 시일 내에 성립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화이트 대표의 생각에 빈틈을 비집고 들어올 파이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카우보이' 도널드 세로니의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난 두렵지 않다. 내가 선수 협회의 얼굴이 되겠다"고 말하고 있다.

세로니는 팬들에게 인정 받는 강자다. 여지껏 UFC와 크게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다. 실력과 인지도를 지녔고, 웬만한 외압을 버틸 수 있는 강단도 있다.

세로니는 "내가 그 사람이 되겠다. 1000퍼센트, 파이터들에게 협회가 필요하다고 계속 말해 왔다. 특히 새 소유주가 UFC를 인수한 이 시기에는 더 그렇다. 때가 왔다"며 "우리는 방향성이 없다. 선수들의 권리를 위해 싸울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일이 안 좋게 흘러가면 누구도 그의 뒤에 서지 않을 수 있다. 혼자 남을지 모르고, 모든 게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 우리는 함께 싸울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전과 달리 여러 선수들이 목소리를 낸다. 늘어난 미국 종합격투기 전문 매체, 팟캐스트 라디오 쇼가 이들이 가감없이 주장을 펼치는 데 날개를 달아 준다. 하지만 아직 파이터들은 함께 싸우는 데 익숙하지 않다.

'소원수리함'의 투서를 모아 뜻을 하나로 모을 누군가가 나온다면 UFC와 파이터들의 역학적 관계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세로니 또는 그 누군가가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새 세상을 열까. 대마는 쉽게 죽지 않는다. 대마를 만드는 게 힘들 뿐. 맥그리거처럼 혼자 대마가 될 수 없다면 세력을 모아 대마를 만들어야 한다.

○ 끝

▲ 도널드 세로니는 선수 협회의 얼굴이 될 수 있다며 앞장서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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