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은수 김예림 유영(왼쪽부터) ⓒ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어린 나이에 한 가지 일에 전념하는 점은 '빛'과 '그늘'이 공존한다. 호기심 많을 나이에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성장하는 줄기가 튼튼하다고 한다. 줄기가 여러 갈래로 나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 뻗어 나간다. 그런데 다른 이들보다 일찍 스스로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고 뿌리를 내리는 이들도 있다.

선수 생명이 짧은 피겨스케이팅은 최대한 어릴 때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어린 시절,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결정해야 한다. 김연아(27)의 등장 이후 어떤 아이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빙상장을 찾고 어떤 아이는 부모를 졸라 스케이트를 사 달라고 한다.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미래를 책임질 임은수(14, 한강중) 김예림(14, 도장중) 유영(13, 문원초)은 모두 후자의 선택으로 빙판 위에 섰다. 이들은 김연아의 경기를 보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시련을 이겨 내며 한국을 대표하는 여자 싱글 선수로 성장했다. 이들은 올해 첫 달에 전국종합선수권대회와 동계체전에 출전하며 한층 성장한 기량을 뽐냈다.


임은수, "(김)연아 언니가 했던 미스 사이공, 열심히 보고 배웠다"

이들은 지난해 종합선수권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스포츠 팬들에게 알려졌다. 가장 먼저 선두 주자로 나선 이는 유영이다. 그는 지난해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고 회장배 랭킹전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여자 싱글 일인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해가 바뀌면서 임은수가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그는 지난 8일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막을 내린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제 71회 전국남녀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1그룹에서 191.98점으로 우승했다. 김연아 이후 국내 대회에서 190점을 넘은 이는 임은수가 처음이다.

큰 대회에서 우승하면 집중력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임은수의 스케이트 끈은 여전히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 그는 22일 성남 탄천빙상장에서 막을 내린 제 98회 전국동계체육대회 피겨스케이팅 여자 중등부 싱글 A조에서 총점 181.53점으로 우승했다.

종합선수권대회에서 기록한 191.98점에는 10.45점이 모자랐다. 프리스케이팅에서 실수한 임은수는 클린 경기에 실패했지만 지난해에 이어 동계체전에서 2년 연속 우승했다.

▲ 임은수 ⓒ 곽혜미 기자

임은수는 "동계체전도 평소보다 조금 긴장감이 있었다. 2년 연속 우승보다는 제가 늘 걱정하는 쇼트프로그램을 잘 마무리했고 프리스케이팅은 실수가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나머지 요소에 집중해서 다행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은수의 프리스케이팅 곡은 '미스 사이공'이다. 이 곡은 김연아가 2007~2008 시즌 프리스케이팅에 썼던 곡이다. 임은수는 "(김)연아 언니의 작품을 수시로 보는데 저와 비슷하게 동작이 겹치는 곳이 있다. 그 부분을 열심히 보고 배우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연아 언니는 미스 사이공에 대한 이해가 저보다 크다. 작품 이해에 도움을 많이 주셨다"고 덧붙였다.

올 시즌 국내 대회 일정을 거의 마친 임은수는 가장 중요한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있다. 이 대회는 오는 3월 15일부터 19일까지 대만 타이베이에서 진행된다.

임은수는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 가면 당당하고 자신 있게 제가 여기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다"며 "저 스스로 만족스러운 경기를 하고 왔으면 좋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마의 4회전'에 도전하는 당찬 신동 유영

지난해 한국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중심에는 유영이 있었다. 지난해 굵직한 국내 대회를 휩쓴 그는 올해 종합선수권대회에서도 유력한 우승 후보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불청객인 감기몸살로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실수로 무너진 그는 최종 5위에 그쳤다.

2주가 지난 뒤 열린 동계체전에서 유영은 부활했다.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쿼드러플(4회전) 살코를 시도했다. 유영은 지난해 11월 초에 열린 제 18회 전국남녀피겨스케이팅꿈나무대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쿼드러플(4회전) 살코에 도전했다. 다운그레이드 판정을 받으며 성공하지 못했지만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 가운데 처음으로 대회에서 이 점프를 시도했다.

▲ 유영 ⓒ 곽혜미 기자

종합선수권대회와 비교해 동계체전은 부담이 덜했다. 그는 여자 초등부 A조 프리스케이팅에서 쿼드러플 살코에 다시 한번 도전했다. 이번에도 결과는 실패였다. 첫 점프 과제인 쿼드러플 살코에서 다운그레이드 판정을 받았지만 남은 요소를 깨끗하게 해내며 총점 182.01점으로 금메달을 땄다.

유영은 "종합선수권대회가 끝난 뒤 속상했지만 다음 기회도 있으니 동계체전에서 열심히 하자는 각오로 연습했다"고 말했다. 그는 "종합선수권대회에서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못 보여 드려서 많이 아쉬웠다"는 말을 남겼다.

만 11살의 나이에 한국 챔피언에 올랐던 유영은 그동안 어린 나이로 많은 국제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부터 유영에게 기회가 많이 생긴다. 오는 2017~2018 시즌 유영은 주니어 무대에 데뷔한다. 올해 여름에 열리는 주니어 그랑프리 파견 선발전은 역대 최고의 경쟁이 전망된다.

유영은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 때까지 몸 상태를 좋게 만들고 컨디션 조절을 잘해서 대회 때 원래 제 기량을 보여 주고 싶다"며 당차게 말했다.

쿼드러플 살코 시도 여부에 대해 그는 "4회전 점프가 완성되면 경기에서 다시 뛸 것"이라고 밝혔다.

김예림,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제 이름 석 자 알리고 싶다"

2~3명의 선수가 치열하게 경쟁을 하면 2위를 많이 하는 선수가 있다. 김예림은 올해 종합선수권대회와 동계체전에서 모두 2위에 올랐다.

그는 이번 동계체전 여자 중등부 A조에서 임은수와 경쟁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그는 빙판에 넘어지는 실수를 했다. 그러나 프리스케이팅에서는 모든 요소를 깨끗하게 해내며 122.07점을 받았다. 프리스케이팅에서는 117.73점을 받은 임은수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김예림은 지난해 동계체전 여자 초등부 싱글 A조에서 유영, 임은수와 경쟁했다. 임은수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그는 지난해 7월 주니어 그랑프리 파견 선발전에서 1위를 했다. 두 번의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했지만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했다. 큰 무대에서 값진 경험을 얻고 돌아온 김예림은 임은수와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유독 2위를 한 적이 많았던 그는 "솔직히 제가 2위를 몇 번 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래도 제가 입상을 못 한 적도 많았다. 2위도 뜻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예림은 다양한 점프와 기술을 깨끗하게 해낸다. 기술은 뛰어나지만 표현력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예림은 표현력과 스케이팅 스킬 보완에 집중했고 올 시즌 예술점수(PCS)를 한층 높였다.

▲ 김예림 ⓒ 곽혜미 기자

김예림은 "제가 가장 부족한 게 PCS 점수다, 그동안 많이 걱정하고 신경 썼던 내용인데 지난해보다 올해 이 내용이 많이 향상돼서 그 점을 도와주신 이규현 코치님에게 항상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김예림의 표현력을 눈뜨게 한 작품은 프리스케이팅 곡 '나가거든'이다. 명성왕후 오리지널사운드트랙에 수록된 이 곡은 어린 선수가 표현하기에 쉽지 않다. 김예림은 이 곡에 도전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끼'를 깨웠다.

김예림은 "그 프로그램을 완성할 때 명성왕후 드라마의 장면이 짧게 나오는 영상이 있었다. 그런 영상을 일부러 찾아보면서 연구도 하고 이것저것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임은수와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 도전한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국제 무대에서 제대로 알릴 기회다.

김예림은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면 제가 보여 줄 것을 최대한 보여 주고 싶다"며 "잘하는 선수가 많기에 부담을 편안하게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제 경기를 보고 '저 선수가 김예림 선수구나'라는 것을 알게끔 하고 돌아오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비슷한 실력을 지닌 임은수와 김예림이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점은 여러모로 고무적이다. 여기에 다음 시즌부터 유영이 주니어 경쟁 대열에 합류한다. 홀로 외롭게 가는 것보다 선의의 경쟁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경쟁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굴러온 세 명의 '복덩이' 스케이터들의 행진은 이제 막 시작됐다.

[영상] 임은수 인터뷰, 프리스케이팅 경기 ⓒ 촬영 김현진, 정태화 촬영 감독 편집 윤희선 기자

[영상] 유영 인터뷰, 프리스케이팅 경기 ⓒ 촬영 김현진, 정태화 촬영 감독 편집 이충훈 기자

[영상] 김예림 인터뷰, 쇼트프로그램 경기 ⓒ 촬영 김의정, 정태화 촬영 감독 편집 임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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