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이교덕 기자] 벌써 15년이 흘렀다. 두 돌주먹 뉴질랜드 파이터들이 가드를 내리고 싸운 지.

마크 헌트(41)와 레이 세포(44)는 2001년 10월 8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만났다. 'K-1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의 진출권이 걸린 예선 대회였다.

2라운드, 헌트가 펀치 연타를 날리자 세포는 '좋아, 해 보자'고 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누구의 맷집이 더 센지 겨뤄 보고 싶었던 헌트는 갑자기 가드를 내렸고 세포의 강펀치를 얼굴로 받았다.

마음이 통한 두 선수. 세포가 헌트의 뺨에 가볍게 뽀뽀하며 웃었다. 헌트의 차례. '슈퍼 사모안'은 세포의 얼굴에 펀치 세 방을 꽂았고 '이젠 네가 때려 봐라'는 뜻으로 양팔을 벌렸다. 곧 세포가 펀치 일곱 방으로 반격했다.

전설의 노 가드 경기는 이렇게 탄생했다. 우리나라 팬들이 손에 꼽는 '역대급' 명승부 가운데 하나다.

"그때가 27살이었다. 참 젊은 나이였다. 내 선수 생활에서 가장 빛나는 때가 아닌가 싶다. 그 경기에선 졌지만 운 좋게 K-1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까지 갈 수 있었고, 우승까지 했다. 참 오래 전 일이다."

헌트는 2일 스포티비뉴스와 단독 인터뷰에서 옛일을 추억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헌트는 0-3 판정패했다. 세포가 'K-1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권이 걸린 결승전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헌트의 펀치를 맞고 세포의 오른쪽 안와가 골절됐다. 헌트가 다친 세포 대신 곧바로 열린 결승전에 나갔고, 아담 와트에게 TKO승해 극적으로 K-1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 8강에 들어갔다.

경기에서 졌지만, 맷집에서 이긴 셈.

그는 두 달 뒤 12월 8일 도쿄돔에서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제롬 르 밴너, 스테판 레코, 프란시스코 필리오를 차례로 꺾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총 19번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에서 유일한 비 유럽권 챔피언으로 남아 있다.

지금의 헌트를 있게 한, 이 난타전은 절대 계획된 것이 아니다. 이유도 따로 없다. 15년이 지난 지금, 헌트는 아직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훈련도 아니고, 스파링도 아니었는데…. 도대체 왜 그랬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우리 둘 다 체력적으로 심하게 힘들었나 보다. 그래서 정신이 없었던 건 아닐지." 헌트는 허허허 웃었다.

'당신은 세포의 펀치를 그대로 맞는데, 세포는 살짝살짝 가드도 올리고 머리도 흔든다. 불공평한 노 가드 게임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라는 농담 섞인 질문엔 "그렇게 흘러간 경기일 뿐이다. 그냥 주고받았던 거다. 딱히 불공평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쿨'하게 답했다.

기억 속에 묻어 뒀다. 다시는 그렇게 가드를 내릴 생각이 없다. 특히 케이지 위에선 더.

"종합격투기에서 그렇게 대 주는 난타전은 안 한다. 절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며 또 허허허 웃었다.

헌트는 오는 3월 21일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리는 UFC 파이트 나이트 85에 출전한다. 메인이벤트에서 전 UFC 챔피언 프랭크 미어(36, 미국)와 경기한다.

가드를 내리진 않더라도, 강펀치는 여전하다. 그는 원초적인 싸움꾼이다. "미어가 날 테이크다운으로 넘어뜨리려고 하지 않을까. 난 언제나 KO를 노린다. 미어가 타격전으로 나오면 또 치고받겠다. 하지만 그래플링 대결도 굳이 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헌트는 다시 한번 2001년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어 한다. 15년 만에 정상에 오르는 꿈을 꾼다. 최근 여러 인터뷰에서 올해 연말 UFC 헤비급 타이틀전을 펼치고 싶다고 밝힌다.

지난달 종합격투기 팟캐스트 라디오 '서브미션 라디오'에서 "미어는 많은 업적을 남긴 파이터다. 헤비급 챔피언까지 지냈다. 그래서 그를 꺾으면 다음 경기에선 5위 안의 파이터와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아마도 타이틀 도전권을 얻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경기를 이기면 연말에는 타이틀전에 나설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에서도 "스티페 미오치치, 알리스타 오브레임, 벤 로스웰 가운데 특별히 싸우고 싶은 선수는 따로 없다. 상위 5위 안에 있는 파이터라면 다 좋다. 미어에게 이기고 그 선수까지 꺾으면 도전권을 받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몇몇 한국 팬들이 이름을 혼동해 '마크 헌터'라고 부른다고 했더니, 그는 상관없다며 자신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역시 쿨가이, 상남자였다.

"그래? 날 마크 헌터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처음 듣는 얘기다. 하지만 난 상관하지 않아. '슈퍼 사모안'이든, 마크 헌터든 원하는 대로 불러 달라. 지난해 게스트 파이터 자격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이번엔 한국 팬들 앞에서 경기를 치르고 싶다. 여러분들을 뵙고 싶다. 계속 응원해 달라."

또 허허허.

[사진] 마크 헌트 ⓒ스포티비뉴스 한희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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