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키워드 키워드 기준 i금일 기준 많이 본
뉴스 기사의 키워드 수집

[아시안게임] 체조 김한솔-여서정 시대, 이제 시작됐다 (영상)

작성일: 2018.08.25 16:16 신명철 편집 위원 기자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 김한솔(왼쪽)과 여서정은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기계체조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아시안게임 특별취재단 신명철 기자] 김한솔과 여서정의 빛나는 연기에 힘입어 한국 기계체조 미래가 밝아졌다.

한국은 24일 마무리된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아게임 기계체조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중국(금 8 은 5 동 5)에 이어 대만과 종목 순위 공동 2위에 올랐다. 직전 대회인 2014년 인천 대회(금 1 은 3 동 4) 성적을 가볍게 넘어섰다. 인천 대회 금메달은 기계체조가 아니고 리듬체조 손연재가 기록한 것이다.

이 성적은 2010년 광저우 대회(금 2 동 2)와 엇비슷하다. 광저우 대회에서는 남자 뜀틀 양학선(2012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과 남자 마루운동 김수면이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한국은 이번 대회 남자부에서 김한솔이 남자 마루운동과 뜀틀에서 금메달과 은메달,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차지했고 여자부에서는 여서정이 뜀틀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김한솔과 여서정이 한국 기계체조의 강세 세부 종목인 뜀틀에서 나란히 메달을 기록한 게 이번 대회에서 거둔 가장 큰 수확이다.

한국은 1960년 로마 올림픽에 김상국(남자) 유명자(여자)가 기계체조 종목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두 선수는 모든 세부 종목에서 하위권을 면치 못했으나 한국 기계체조의 씨앗을 국제 무대에서 틔웠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는 김충태 정이광 강수일 이광재 서재규 한수희 김광덕(이상 남자) 정봉순 이덕분 최영숙(이상 여자) 등 꽤 많은 선수가 출전했으나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부터 올림픽 기계체조 종목에 출전한 일본은 도쿄 대회 때 이미 세계적인 기계체조 강국에 올라 금메달 5개와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로 소련(금 4 은 10 동 5)을 제치고 이 종목 1위에 올랐다.

▲ 여서정은 아버지 여홍철의 재능을 물려받았다. 여홍철은 "이제 시작"이라며 딸의 미래를 기대했다. ⓒ연합뉴스

기계체조는 이후 세계 수준과 격차 그리고 '소수 정예주의’ 선발 방침에 따라 1972년 뮌헨,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에 남승구 주영삼 박종훈 이정식 한충식 장태은 채광석(이상 남자) 이정희 심재영(이상 여자)이 출전하기까지, 불참한 1980년 모스크바 대회를 포함해 한국 기계체조는 16년 동안 올림픽 무대에 서 보지조차 못했다.

1980년대까지 한국 기계체조 현주소는 김연아가 등장하기 전까지 피겨스케이팅과 비슷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남자(기계체조)와 여자(피겨스케이팅)의 활약상이 다를 뿐이다.

이때까지 국내 스포츠 팬들은 올가 코르부트(소련, 1972년 뮌헨 올림픽 4관왕)와 나디아 코마네치(루마니아,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3관왕) 그리고 한국계인 넬리 킴(소련,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3관왕) 같은 체조 요정들의 환성적인 연기를 보며 '우리는 언제 저런 선수들을 볼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기계체조 발전의 결정적인 발판이 마련됐다. 이 대회 전까지 한국이 아시안게임에서 획득한 기계체조 금메달은 단 두 개였다. 1974년 테헤란 대회 남자 링 김국환, 평행봉 이영택 이후 금메달리스트가 없었다.

일본과 중국이 번갈아 가며 기계체조 강국으로 아시아 무대를 휘젓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서울 대회에서 남자 평행봉 권순성, 여자 평균대 서선앵과 이단평행봉 서연희가 금메달 연기를 펼쳤고 남녀 단체전에서는 일본을 제치고 2위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켰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다른 여러 종목과 마찬가지로 종목 발전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9월 24일 서울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체조 경기장은 만원 관중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국의 기계체조 첫 올림픽 메달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8일과 20일 진행된 예선에서 꼴찌로 8명이 겨루는 결선에 오른 박종훈은 파이널 무대에서 놀라운 경기력을 보였다. 1차 시기에서 9.95점, 2차 시기에서 10점 만점을 받았다. 예선과 결선을 더해 평균한 최종 점수는 19.775점이었다. 불가리아 동독 소련(2명) 일본 선수들을 단숨에 제치고 동메달 시상대에 올랐다. 한국 기계체조는 1960년 로마 대회 이후 28년 만에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뤘다.

이후 뜀틀은 한국 기계체조의 주력 세부 종목이 됐다.

▲ 뜀틀은 한국이 강세를 보이는 기계체조 세부 종목이다. 김한솔은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뜀틀에서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지만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연합뉴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뜀틀 종목의 강력한 금메달 후보는 유옥렬이었다. 1991년(인디애나폴리스)과 1992년(파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연속 우승한 유옥렬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는 1991년 대회에서 자신에게 뒤져 2위를 차지한 비탈리 셰르보와 1991년 대회 3관왕인 그리고리 미수틴(이상 독립국가연합)에게 밀려 동메달을 기록했다.

4년 뒤인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여서정의 아버지 여홍철이 뜀틀 금메달에 도전했다. 여홍철은 ‘여1’과 ‘여2’ 등 자신의 이름을 딴 기술이 국제체조연맹에 등재되는 등 최고의 기술을 보였지만 결선 착지 과정에서 실수하면서 러시아의 알렉세이 네모프에게 0.031점 차로 뒤지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양학선은 뜀틀 결선에서 1차 시기와 2차 시기 합산 평균 16.533점을 받아 러시아의 데니스 아블랴진(16.399점)을 따돌리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점수가 나오기 전에 결선에 오른 다른 선수들 축하를 받을 정도로 완벽한 1위였다. 1960년 로마 대회에 첫 출전한 이후 반세기가 넘은 52년 만에 딴 한국 기계체조의 첫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그동안 한국 기계체조는 올림픽에서 은메달 4개와 동메달 4개를 기록하고 있었다.

양학선은 올림픽 외에 2011년(도쿄), 2013년(앤트워프)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2013년 카잔 유니버시아드대회 금메달 등 세계 최고의 뜀틀 선수로 한국 기계체조의 수준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런 빛나는 역사를 자랑하는 뜀틀에서 남녀 유망주가 한꺼번에 나온 것이다. 2년 뒤 도쿄 올림픽 때 김한솔은 24살, 여서정은 18살이다. 종목 나이 특성으로 볼 때 메달 획득의 최적기라고 할 수 있다.

여서정은 25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서 아버지 여홍철 경희대 교수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올림픽 금메달'을 약속했다. 금메달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여서정은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기계체조의 역사를 새로 쓸 것이기 때문이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