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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 뿌리를 찾아서⑥-대한체육구락부 회원들, 1906년 삼선동에서 축구 연습

작성일: 2018.10.29 15:26 신명철 편집 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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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6년 대한체육구락부 회원들이 오늘날의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서 축구 연습을 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90년사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019년 역사적인 제100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서울)를 앞두고 익산시를 비롯한 전라북도 일원에서 열린 제99회 전국체전이 지난 18일 막을 내렸다. 1920년 7월 창립한 조선체육회(오늘날 대한체육회)는 그해 가을 전국체전의 기산점이 되는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개최해 100여년 뒤 후손들이 프로 야구와 축구 월드컵에 열광하고 조기 축구와 직장 야구, 3-3 농구, 주말 골프를 즐기는 스포츠 환경의 든든한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 스포츠 ‘선사 시대’에 선각자들은 이 땅에 스포츠를 도입하기 위해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활동을 했을까. <편집자 주>

축구의 도입에는 여러 가지 설이 엇갈리지만 1905년 외국어학교의 외국인 교사가 소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1906년 3월 11일 조직된 대한체육구락부가 우리나라 최초의 축구 팀으로 꼽히고 있다. 같은 해 5월 4일 동소문 밖 봉국사에서 프랑스인 교사 마텔의 지도 아래 치러진 프랑스어학교 운동회에서 축구 경기를 가진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축구 경기였다고 한다.

1906년 4월 훈련원(→경성운동장→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 육군 참위(소위) 권원시와 일본인 요시카와가 우리나라 최초의 자전거 경기 대회를 개최했다고 돼 있다. 이 대회에서는 자전거를 잘 탄 사람에게 100원 이상의 상품을 주었다니 당시의 화폐 가치로 따진다면 상당한 고가의 상품이었다. 그때는 자전거를 자행거라 불렀다 한다. 1907년 6월에는 경성 내 한국인, 일본인의 자전거 상회가 주최한 자전거 경기 대회가 훈련원에서 열려 외국인들까지 많은 인원이 참가했다고 기록돼 있다.

농구는 1907년 봄부터 황성기독교청년회(서울YMCA)의 초대 총무를 맡았던 미국인 필립 질레트가 회원들을 상대로 소개하면서 이 땅에 알려지게 됐다. 농구는 1891년 미국 스프링필드의 YMCA 훈련 학교에서 체육 지도자인 제임스 네이스미스가 겨울철 실내 스포츠로 창안한 종목으로 탄생 16년 만에 한국에 소개됐다.

‘서울YMCA 체육 운동 100년사’는 1907년 7월 23일 YMCA 팀과 일본 유학생 팀이 한국 최초의 농구 경기를 치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농구는 1916년 서울YMCA 체육관이 세워지기까지는 옥외 스포츠로 치러졌으며 체육관이 건립된 뒤 실내 스포츠로 비약적인 발전을 한다.

유도는 1907년쯤 일본인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해졌으며 1908년 3월 28일 비원에서 경시청의 한일 두 나라 순경들이 유도 경기를 치른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공개 경기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서울YMCA 체육운동 100년사’에 따르면 서울YMCA는 1906년 유도부를 창설한 것으로 돼 있다. 전택부는 “YMCA에서 유도를 시작한 것은 1906년이다. ‘여기서 장사 100명만 양성하자’라는 월남(月南) 이상재 선생의 유도부 창설 발언을 출발 신호로 시작된 유도는 급격한 발전을 거듭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맨 처음 스케이트를 신고 얼음을 탄 사람은 현동순이다. 1908년 5월 임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서울YMCA 총무 질레트가 불필요한 가구를 경매했을 때 15전을 주고 질레트가 사용했던 스케이트를 사서 그해 겨울 삼청동 개천에서 타 본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스케이트로 알려지고 있다.

1908년 2월 평양 대동강에서 일본인들이 빙상 운동회를 가진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빙상경기 행사였다. 1910년 2월에는 일본의 일출신문사 주최로 한강에서는 처음으로 빙상 운동회가 열렸다. 이 행사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수만 명 인파는 스케이트에 대한 호기심을 보였다.

우리나라 복싱은 광무대, 단성사 소유주였던 박승필이 조직한 유각권투구락부에서 회원들에게 유도나 씨름 그리고 복싱을 익히도록 한 것에서 비롯된다. 1912년 10월 단성사에서 유도, 씨름, 복싱 등 3개 종목 경기가 열려 점수제에 의해 우열을 가리고 상품을 주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복싱 경기다.

배구는 1916년 3월 서울YMCA의 운동부와 유년사업부를 돕기 위해 부임한 미국인 B.P. 반하트에 의해 우리나라에 소개됐다. 배구는 미국의 YMCA 체육 지도자인 모건이 1895년 창안한 실내 스포츠다. 배구는 탄생한 지 21년 만에 우리나라에 전해졌고 1917년 3월 서울YMCA에서 재경 서양인 팀과 YMCA 팀이 겨뤄 YMCA 팀이 3-0으로 이긴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배구 경기다.

구한말 우리나라 체육의 특징으로는 각급 학교에서 이뤄진 학교 체육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각종 체육 단체들이 설립돼 당시 도입되기 시작한 근대 스포츠를 중심으로 국민 체육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민간 체육 단체는 1906년 3월 서울 계동 김기정의 집에 현석운, 신봉휴, 한상우 등 유지 30여명이 모여 조직한 대한체육구락부다. 현석운이 총무장을 맡은 대한체육구락부는 취지문에서 ‘나라가 강성하고 쇠퇴하는 것은 그 나라 국민들의 원기에 달려 있다. 우리들은 체육 활동을 통해 청년의 기개를 키워 내고 즐거운 인생을 누리도록 할 것이며 국민의 시든 원기를 만회 진작토록 하겠다’라는 뜻을 밝혔다.

대한체육구락부는 동소문 밖 삼선평에서 회원들끼리 운동회도 열고 서울YMCA 등과 각종 운동 경기를 자주 가져 당시 싹트기 시작한 사회 체육 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한체육구락부가 언제까지 존속했는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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