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의 밤'의 내성적인 갱스터 엄태구…"러블리하지 않습니다"[인터뷰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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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거친 목소리였다.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감독 박훈정)의 내성적인 갱스터, 배우 엄태구(38)는 '영화 밖에서 러블리한 것 같다'는 이야기에 짐짓 심각하게 답했다. 피가 난무하는 감성 누아르 주인공이 어쩌다 이런 해명을 하게 됐는지, 부연설명이 좀 필요하다.
쇳소리 같은 목소리가 얼마나 나긋나긋할 수 있는지, 엄태구를 보면 알게 된다. 랜선 너머의 그와 모니터를 마주하고 만난 화상 인터뷰에서도 그랬다. 키 181cm의 몸을 모니터 앞에 구겨넣기라도 했는지, 화면에 얼굴을 들이대다시피 한 그는 양 손을 뺨 옆에 대고 쥐었다 폈다 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안 러블리하다며 정색(?)하던 순간의 아이러니를 아마 본인만 몰랐을 거다. 5초 전엔 그 커다란 두 손으로 꽃받침 포즈를 하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을 테지. 캡처를 안 해둔 게 아쉽다.
'낙원의 밤' 한 장면이 떠오른다. 삼촌에게 생일선물을 받고 까르르 좋아하는 꼬맹이에게 눈길이라도 한 번 더 받아보려고 출발하는 차 옆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거구의 조카바보 '태구'.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모르는 그는 영화를 통틀어 가장 환한 얼굴을 하고 있다.
엄태구가 맡은 '태구'는 사실 폭력조직의 에이스다. 칼과 피가 난무하는 세상을 산다. 복수와 배신, 끔찍한 살육의 중심에 있는 범죄자가 돌아서면 살갑기 그지없는 남자이기도 하단 걸, 엄태구는 단 한 장면으로 보여준다. 덕분에 '태구'는 서늘하지만 안쓰러운, 묘한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인물이 된다.
'잉투기' '어른도감' '판소리복서'를 주연으로 이끌었으며 '인간중독' '차이나타운' '밀정' '택시운전사' '안시성' 등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그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주목받고 있다. '낙원의 밤'으로 처음 대형 상업영화의 주연을 맡은 엄태구는 "시나리오에 '태구'가 너무 많이 나와 놀랐다"며 영화를 보니 너무 많이 나와 "면목이 없었다"고 싱겁기 짝이 없는 소감을 내놨다.
"부모님이 재밌다고, 잘했다고 하셔서 기분이 좋았고요… 동료배우는 '정말 잘봤다' '영화 재밌다' '잘했다' '고생했겠더라' 하는 반응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극장 아닌 넷플릭스에서 '낙원의 밤'을 확인하게 된 그에게서 이제야 듣게 된 영화 이야기―나체 액션신부터 '연기괴물'이라는 파트너 전여빈, 그리고 별 것 없다는 일상의 이야기까지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옮긴다. 무어라 물어도 꼬박꼬박 '습니다' 체를 쓰던 엄태구가 진짜 러블리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본인 아닌 다른 분들이 판단해주셨으면 좋겠다.
(아래 내용에는 영화 '낙원의 밤'의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낙원의 밤'이 극장 아닌 넷플릭스로 전세계 관객을 만나게 됐다.
"일단은 너무 신기합니다. 다른 나라 분들 반응도 너무 궁금합니다…. 다 같이 극장에서 보지 못한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OTT를 통해서 전세계 많은 국가에서 시청할 수 있게 되는 게 신기하고 신기한 경험입니다. 아직도 신기합니다."
-갱스터 누아르 '낙원의 밤'의 차별점이 있다면.
"정통 느와르를 지키면서 전여빈 배우가 맡았던 재연이라는 캐릭터가 들어오면서 신선함과 새로움이 가미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재연을 연기해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나.
"'태구' 캐릭터가 많이 나와서 부담이 좀 됐습니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는 캐릭터 이름이 태구라고 적혀 있어서 놀라고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처음 뵀을때 여쭤봤는데 감독님이 저를 두고 쓰신 건 아니라고, 저를 잘 모르셨을 때 예전에 쓰셨다고 하셨습니다.
초반에 누나와 조카를 잃고 시작이 돼서 제주도 촬영 때는 그 순간과 감정을 몸 안에 가져가려 노력했습니다. 서울 촬영분을 계속 되짚어보고 복기하면서 그런 것들이 제 안에 있게끔 하려고 했습니다. 너무 밝아도, 어두워도 안 될 것 같아서 중간 지점을 찾으면서 감정선이 연결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시나리오에 많이 나와 놀랐다면, 완성된 영화를 보고선 어땠는지.
"민망했습니다…. '낙원의 밤'에서는 다른 배우분들 연기에 많이 놀랐습니다. 몇몇 장면들이 있습니다. 대본의 느낌보다 더 처절하거나 더 통쾌하거나. 대본 봤을 때 이렇게 웃겼나 싶은 장면도 웃겼습니다. 화면에 차가운 느낌이나 이런 것이 잘 살아난 것 같습니다."

"복도 신에서 처음 등장할 때 얼굴 만으로 서사가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주문을 주셨습니다. 그런 것을 얼굴로 표현하기보다는 삶에 찌듬, 지침, 누나의 병, 일을 관둬야 하나, 조카에 대한 걱정 그런 것들을 품 안에 담고 그냥 하려고 했습니다. 외적으로는 피부도 스킨 로션만 바르고 거칠게 하고 립밤도 안 바르고 메이크업도 안하고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태구 캐릭터를 위해 어떻게 9kg을 찌웠나. 도중엔 살이 빠지기도 했는데.
"일단 무조건 많이 먹었습니다. 살 찌는 보충제 효과를 많이 봤습니다…. 촬영하면서는 살이 빠졌습니다. 사실 어떤 촬영을 해도 촬영을 하면서 살이 빠지는 편입니다."
-거칠지만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주문이 있었나.
"보호본능을 자극해야 한다는 주문은… 제 기억으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은 안 나는데 촬영 매 신에서 최선을 다 하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보여졌다면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캐릭터가 삶의 끝에 있고 끝까지 많이 당하다보니까 아무래도 그렇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영화 밖에서 보니 엄태구가 러블리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조카에게 눈길을 받으려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저는 러블리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 장면이 걱정을 너무 많이 했던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보기에 걸리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조카에게 표현해야 할지 촬영 전에 되게 걱정했던 장면 중에 하나였습니다."
-영화 속 '태구'는 실제 엄태구와 많이 다른가.
"사실 캐릭터가 실제 제 모습과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연기를 위해 외적으로 살을 찌우거나 걸음걸이를 볼 때, 그리고 선한 모습이나 악한 모습 모두 내 안의 모습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캐릭터를 할 때 이것저것 내 안에 있는 걸 되는 대로 해보려고 합니다. 혹여 일상생활에서 보이지 않는 모습이 현장에서 보일 수 있는 것도 이 직업의 묘미인 것 같습니다."

"전여빈 배우야말로 '향수'가 아닌가 합니다. 전여빈 배우를 '밀정' 때 잠깐 마주쳤고 대화는 못 나눴습니다. '죄많은 소녀'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연기괴물'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연기를 어덯게 했길래 '연기괴물'이라는 말이 나오지 하고 영화를 봤습니다. 그 표현이 딱 맞았습니다. 연기 너무 잘합니다. 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여빈이 지금껏 가장 많이 말을 했던 상대 여배우라고. 둘의 멜로 연기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가까워진 계기는 감독님 덕분입니다. 감독님이 계속 매일 뭔가 사주셨습니다. 전여빈 배우와 저를 불러서 맛있는 음식, 맛있는 커피를 사주시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됐습니다. 그리고 멜로 연기는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그런 생각은 했습니다. 전여빈 배우와 다른 작품에서 또 만나고 싶다."

"큰 것 두 개였습니다. 하나는 사우나, 하나는 차. 쉽지 않았습니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서 했습니다. 특히 차 안 액션 장면 경우는 처보다도 함께 작품해주신 무술팀들이 정말 리얼하게 받아주셨고,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차 안 신이 잘 나온 것 같습니다."
-사우나 액션 신은 나체인데다 피칠갑까지, 촬영이 정말 까다로웠을 것 같다.
"처음에는 부끄러웠고… 시간이 흐를수록 좀 외로웠습니다…. 저는 그렇게 있었는데…, 정말 많이 고생하셨던 게 스태프 분들은 옷을 다 입고 계셨습니다. 그 사우나가 정말 습하고 더웠어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촬영했는데 계속 땀흘리면서 엄청 고생하셨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액션이 많았지만 제일 질펀하게 맞기도 했다.
"맞는 게… 편합니다…. 순간 맞으면 정말 아플 때가 있는데, 저는 때리는 것보다 맞는 것이 항상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이번 촬영을 하면서 무술팀들은 프로분들이라 제가 오히려 부딪치는 경우가 있었지, 제가 그 분들에게 실제로 맞은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무술팀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맞는 액션이 저는 더 편합니다."

"마음에 듭니다. 처음 대본 봤을 때 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촬영하면서도 대사가 수정된 부분이 없습니다.
아, 한마디 더 해도 될까요. 양사장은 제가 좀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그래도. 너무 약올라서…."
-'낙원의 밤' 공개 이후 어떤 반응이 생각나는지.
"부모님이 재밌다고, 잘했다고 하셔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베니스국제영화제 공개 이후) 그 때 나왔던 '내성적인 갱스터' 그 표현이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아서 되게 새롭고 기억에 남는 반응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료배우는 '정말 잘봤다' '영화 재밌다' '잘했다' '고생했겠더라' 하는 반응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한두 분에게 왔습니다. (형 엄태화 감독은) 저희가 길게 말을 안합니다. '좋은데, 괜찮은데.' 항상 비슷합니다. 나쁜 말은 안해줍니다."

"안그래도 오늘 라디오 하고 왔는데. '동물농장' 애청자라 '동물농장'에서 불러주시면 '동물농장'에 나가보고 싶습니다…. 그저 애청자라서… 동물농장을 자주 봐서… 동물들과 함께하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엄태구의 소소한 행복이 있다면?
"촬영할 때, 그 날 신이 그날 연기가 만족스럽게, 살아있는 연기를 하고 나서, 끝나고 차에 탔을 때가 가장 이 일을 하면서 행복한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정말 재미없게 집에 있습니다. 정말 취미도 없고. 집에서… 별 볼 일 없습니다. 심심하게 보냅니다. 촬영이 없으면 심심할 때가 많습니다. 삶의 활력을 얻는 것이 있다면… 가끔 보는 저희 집 강아지 엄지. 부모님이 보내주신 엄지 동영상 사진 보면서 힐끗힐끗 웃고 있는 저를 봅니다. 그게… 재미있나 봅니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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