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리뷰]'비와 당신의 이야기' 손편지를 향한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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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강하늘)는 지난해 다녔던 입시학원에 다시 나왔다. 삼수생 처지에도 목표와 꿈은 흐릿하기만 하다. 어느날 그는 따뜻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옛 초등학교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를 수신한 이는 아픈 언니를 돌보던 동생 소희(천우희). 대신 답장을 쓴 그녀는 제안한다. '몇 가지 규칙만 지켜줬으면 좋겠어. 질문하지 않기, 만나자고 하기 없기, 그리고 찾아오지 않기.' 그렇게 시작된 편지는 안개 속에 있는 것 같던 둘의 삶에 작은 빛이 된다. '비 내리는 12월 31일 만나자'는 두 사람의 약속은 이뤄질 수 있을까.
록밴드 부활이 1986년 내놓은 동명 히트곡이 먼저 떠오르는 제목이지만,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그 쓸쓸하다 못해 처연한 노래와 무관하다. 담담하지만 다정한 한 감성무비엔 아날로그의 낭만이 가능하다.
주된 배경은 거짓말처럼 장국영이 세상을 떠났던 2003년, 너도 나도 휴대전화를 썼지만 빨간 우체통과 초록 공중전화도 곳곳에 있었던 시절이다. 가로본능 휴대폰과 붉은 천원짜리 구권에, 년도를 박아넣은 자막까지 등장해 틈틈이 과거를 상기시킨다.
하지만 이야기가 흐를수록 시간적 배경은 점점 희미해진다. 영호와 소희는 시절과 무관한 시간을 사는 사람들이다. 영호는 공방에 틀어박혀 가죽과 우산을 다듬고, 소희는 헌책방에서 오래된 책과 음반을 다룬다. 울리는 순간 응답해야 하는 집전화나 휴대전화가 아니라 저만의 속도로 쓰고 부치는 편지로 그들이 만나게 된 건 필연이다. 그들의 교감은 10년 전이었대도, 혹은 10년 후였다 해도 시간을 초월해 이뤄졌을 것만 같다.
그들은 함께지만 따로다. 따로지만 함께다. 얼굴조차 모르는 서로를 편지로 상상하고 또 그리워하면서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거기엔 직접 쓴 한 자 한 자에 담긴 진심이 상대에게 고스란히 닿으리라는 믿음, 작은 호의와 정성이 기적을 만든다는 낭만이 가득하다. 영화는 편지에 담긴 사람이 곁에서 숨쉬며 반짝이는 이보다 더한 위로와 공감이 되기도 한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한다. 영화의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다. 만나지 않아도 괜찮고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손편지를 향한 지극한 헌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엔 굵직한 사건이나 갈등이 없다, 심지어 두 주인공의 만남조차 쉬 허락되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가 있었기에 생긴 특별했던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느리지만 따스한 정서를 만든다.
매력적인 배우들이 큰 몫을 한다. 강하늘은 순진한 낭만을 그리는데 그만한 이가 더 있을까 싶을 만큼 제 옷을 입었다. 늘 강렬한 캐릭터로 내리꽂히곤 했던 천우희는 살포시 내려앉아도 충분히 빛난다는 걸 보여준다. 여기에 강소라가 활력이 된다. 특별출연이라지만 주역으로 꼽기에 부족함 없는 존재감이다.
4월 28일 개봉. 전체관람가. 러닝타임 117분.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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