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리뷰]'인질' 이후 황정민이 달라보이는 '반 픽션'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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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감독 필감성)은 평소와 똑같던 어느 새벽, 서울 한복판에서 증거도, 목격자도 없이 대한민국 톱배우 '황정민'이 납치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 속 살기 위한 극한의 탈주를 담은 액션 스릴러 장르의 영화다. '배우 황정민' 외에는 모두 허구지만 황정민이 황정민을 연기하면서 반절 쯤은 팩트, 반절 쯤은 픽션에 걸쳐진 오묘한 '반 픽션'의 영화가 됐다.
예고편만 본다면 황정민의 유행어 '드루와 드루와'를 따라하는 신 탓에 '이거 혹시 코믹 액션인가' 싶은 착각이 들 수 있다. 뚜껑을 열어보면 웃음기는 생각보다 적고 손바닥에 땀은 흥건한 작품이다.
황정민이 누구나 아는 유명 배우라는 점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황정민을 잘 아는 관객들 앞에서 '황정민'을 연기하는 것이 큰 핸디캡이기도 하다. 이미 다수의 히트작을 통해 황정민의 연기를 너무 잘 알고 있는 관객들은 '당연히 잘하겠지만 흥미롭진 않을 것'이라는 마음을 품게 된다.
이런 의심의 싹은 영화가 조금이라도 엉성한 구석을 보이는 순간 '자 우리 이제부터 황정민이 납치됐다고 가정합시다'라며 어렵사리 구축한 세계관을 박살내고야 만다. 다행히 '인질'은 이 어려운 밸런스 조절에 성공했다. 호쾌한 속도감으로 관객들이 의심할 틈을 주지 않고 엔딩까지 달려간다. 인질범 염동훈(류경수)이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돼? 이거 진짜야"라고 말하는 순간 '황정민이 황정민 연기를 어떻게 하려나'하고 구경하던 태도에서, 황정민의 무사탈출을 응원하며 몰입하게 된다.
영화의 등급은 15세 관람가다. 직접 묘사가 많지 않지만 분위기 만으로도 충분히 높은 수위의 섬짓한 공포가 느껴진다. 인질범들이 주무기로 칼이 아닌 총을 사용함으로써 이어지는 정적인 긴장감도 한 몫을 더했다. 칼을 사용하는 액션에선 적과 거리가 벌어지면 긴장을 한시름 놓게 되지만 어디로 맞을 지 모르는 사제 파이프 총을 쥔 인질범들 탓에 러닝타임 내내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불안감이 계속된다.
예고에도 일부 등장한 황정민의 탈출 시퀀스는 심장 쫄깃함 그 자체다. 앞서 충분히 맛본 인질범들의 유해함은 황정민이 날아서라도 도망쳤으면 싶은 간절한 추진력에 힘을 불어넣는다. 이 가운데 극한 상황을 연기하는 황정민의 섬세한 연기력이 빛을 발한다. 피, 땀, 눈물 범벅의 황정민은 구르고 찢어지고 깨지면서도 극 내내 흔들림 없이 감정선을 지배한다. 영화 속 황정민이라면 누구보다 화려한 액션으로 모든 인질범을 순식간에 제압했겠지만, '인질'의 황정민은 직업이 배우인 인간 황정민일 뿐이다. '신세계'의 정청이나 '다만악'의 인남과 달리 액션에 '약간' 능숙한 '배우 황정민'으로서 나름의 기지를 발휘해 난관을 헤쳐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신마다 에너지가 가득한 황정민의 밀도 높은 연기 덕분에 영화는 '황정민이 납치되고, 황정민이 혼신의 힘을 다해 도망치고, 인질범이 추격하는' 눈에 훤히 보이는 줄기를 따라가면서도 단순하고 밋밋하다는 인상 대신 심플하고 깔끔하다는 느낌을 준다. 깔끔하게 포장된 스토리 라인을 타고 긴장감 넘치는 탈주 과정에 집중하면 되는 구조다.
인질범 5인방과 또 다른 인질 1인까지, 6명의 새 얼굴들은 황정민의 압도적인 아우라에 눌리지 않고 부족함 없이 배역을 소화했다. 특히 인질 이유미는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보여준 처연한 피투성이 비주얼이 오버랩되는 연기로 눈길을 끌었고,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눈도장을 찍은 류경수 역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신은 엔딩 직전에 등장한다. 황정민이 누군가와 마주친 찰나에 자신도 모르게 짓는 오묘한 표정이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철렁'하게 한다. 연기 베테랑 황정민의 섬세한 표현력이 돋보이는 장면으로, 관객들에게도 깊은 여운을 남기며 회자될 신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관람 후에는 관객들이 '배우 황정민'을 보는 감정이 남다르게 느껴질 것도 같다. 극장 문을 나선 뒤 TV에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질'을 홍보 중인 황정민을 보는 순간 '아 황정민씨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마 나 뿐만이 아닐 듯 하다.
18일 개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9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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