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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대명사' 이호준, 300홈런 '적금'

작성일: 2015.06.19 06:00 박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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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박현철 기자] 스카우트 전쟁 끝에 입성한 프로 무대는 녹록지 않았다. 투수로 커리어를 시작했으나 타자로 변했고 싹이 나무로 자라던 순간 슬럼프로 주저앉았다. 어렵게 한 팀의 주포가 되었으나 부상 등으로 인해 '로또포'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활약을 펼치며 진정한 인생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이호준(39, NC 다이노스)의 개인통산 300홈런에는 그동안의 영광과 아픔,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적금 통장'이다.

이호준은 지난 18일 수원 kt전에서 1회초 상대 선발 정성곤을 상대로 바깥 높은 체인지업(126km)을 받아쳐 좌중월 쐐기 투런을 때려냈다. 시즌 15호 홈런이자 1994년 해태(KIA의 전신) 데뷔 이래 22년차 시즌 때려낸 자신의 300번째 아치. 역대 8번째이자 최고령(만 39세 4개월 10일) 기록이다. 지난 2012년 말 3년 20억원의 FA(프리에이전트) 계약을 맺으며 SK에서 당시 신생팀 NC로 둥지를 옮긴 이호준은 올 시즌 62경기 0.309 15홈런 67타점(18일 현재)을 기록 중. 타점 1위로 젊은 거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이호준이다.

1994년 광주일고 졸업 후 연세대와의 스카우트 경쟁 끝에 연고팀 해태의 유니폼을 입었던 이호준은 첫 2년 간 투수였으나 1996년 타자로 전향, 1998년 121경기 0.303 19홈런 77타점을 기록했다.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던 시절' 타선에서 해태의 포스트시즌 진출 경쟁을 이끌던 이호준은 이듬해도 16홈런을 때려냈다. 그러다 2000시즌 슬럼프로 인해 사이드암 성영재(현 LG 스카우트)와의 맞트레이드로 SK 유니폼을 입은 이호준. 이후 이호준은 SK의 주포로 자리잡으며 2007년 101경기 0.313 14홈런 71타점으로 창단 첫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다시 미끄러진 시기는 2008년부터. 4년 34억원 첫 FA 계약에 성공했으나 무릎 수술로 인해 2010~2011시즌 활약도는 기대했던 데 미치지 못했다. 좋은 라커룸 리더였으나 팬들은 꾸준하게 화끈한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했던 이호준에게 '로또'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붙였다. 사실 이 때 처음 언급된 '인생은 이호준' 또한 그리 좋은 뜻은 아니었다.

'FA로이드'가 필요했던 2012년 127경기 0.300 18홈런 78타점의 맹활약 후 이호준은 자신의 선수로서 가치 뿐만 아니라 리더로서 가치도 인정한 NC로의 도전을 택했다. 그리고 이호준은 지난 2년 간 NC를 위해 2년 연속 20홈런 이상을 때려내는 것은 물론 선수단의 형님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두산 시절 베테랑에게 엄격하기도 했던 김경문 감독조차 “이호준은 정말 모범이 되는 선수”라며 기를 북돋워주었다. 신생팀이 밝고 긍정적인 팀 컬러를 갖춘 데 가장 공로가 큰 선수 중 한 명이 바로 이호준이다.

올 시즌 이변이 없는 한 이호준은 3년 연속 20홈런 이상이 확실해 보인다. 단순 수치 상으로 시즌 150타점도 가능한 페이스. 이미 선수로서 환갑을 훨씬 지난 나이인 만큼 타격 특화 지명타자로 나서지만 전성 시절 못지 않은 힘을 유지하고 더 나은 클러치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의 자기 관리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그의 프로 생활이 마냥 순탄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인생은 이호준'이라는 말과 개인 통산 300홈런은 엄청난 의미를 지녔다.



경기 후 이호준은 “팀이 연패 중이었고 그동안 중심타선 타자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쁨 두 배다. 내가 못 치면 후배들이 더욱 기가 죽었던 만큼 팀을 위해 짧게 친다고 생각하고 나섰다”라며 운을 뗀 뒤 “배트 안 쪽으로 맞아 불안했는데 타구를 쫓아가던 수비수들이 가만히 있길래 그제서야 홈런인 줄 알았다. 주자를 진루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조건 중견수 방향으로 치겠다고 생각했었다”라며 홈런 당시를 복기했다.

뒤이어 그는 “다들 기다렸던 홈런. 특히 나보다 기다린 분들이 많았던 홈런이라 더욱 기쁘다. 감독님과 하이파이브를 할 때는 뭉클했다”라며 “300홈런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기회를 주신 감독님, 코칭스태프, 구단에 감사하다. 믿고 기회를 주시고 내보내 주셔서 감사하다. 나는 복 받은 행복한 선수인 것 같다”라는 말로 선수 생활의 후반부를 멋지게 장식할 수 있게 한 NC 구단과 선수단 전체에 감사 의사를 표했다. 스스로의 노력에 으쓱하는 대신 주위 사람들에게 두루 고마움을 밝힌 소감도 인상적이었다.

'로또'라는 단어는 이제 이호준 옆을 떠난 지 오래다. 그리고 '인생은 이호준'이라는 말도 최고의 수식어로 자리잡았다. 다복한 가정과 신생 강호를 이끄는 야수진 맏형 이호준. 그의 최고령 300홈런 기록은 프로 22년 차 웃음과 눈물과 노력, 영광이 모두 기재된 고귀한 '적금 통장'이다.

[사진] 이호준 ⓒ SPOTV NEWS 한희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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