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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리뷰]'자산어보' 무르익은 흑과 백, 쉽고도 깊다

작성일: 2021.03.28 11:00 김현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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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자산어보'. 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

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는 나이와 신분, 가고자 하는 길까지 달랐던 두 벗의 이야기다. 세상으로부터 유배된 학자와 세상으로 나가길 소망하는 어부는 조선의 땅끝 흑산도에서 만나 벗이 되었고, 그들이 함께 한 섬 암흑의 섬 '흑산'은 빛나는 '자산'이 되었다. 이준익 감독은 그들의 만남을 흑백의 수려한 영상에 옮겨 인간과 시대를 함께 조명한다.

"선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버티는 것이다. …버텨야 한다"던 정조가 승하하자마자 일어난 신유박해. 천주교를 사학으로 몰아 잔혹한 탄압이 벌어지고 정약전(설경구) 정약종(최원영) 정약용(류승룡) 형제도 고초를 겪는다. 끝내 약종이 순교하지만, 정약전은 배교하고 살아남는다. 그는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기약없는 유배를 떠난다. 기댈 곳 없는 땅끝의 섬, 하마터면 정약전도 더는 버티지 못할 뻔 했다. 그를 붙잡은 것은 섬 아낙 가거댁(이정은)의 푸근한 품과 바다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이었다. 물고기며 바다 생물을 줄줄 꿸 만큼 영특하지만 서자 신분에 발목잡혀 글공부를 제대로 못한 '상놈' 어부 창대(변요한)를 눈여겨보던 정약전은 '거래'를 제안한다. "내가 아는 지식과 너의 물고기 지식을 바꾸자."

정약전은 조선시대 최고 실학자인 동생 정약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이다. 유학자이자 문신인 그는 유배지인 흑산도에서 뜻밖에 바다 생물에 대한 책을 썼는데, 그것이 바로 '자산어보'다. 영화 '자산어보'는 역시 유배 중이던 동생이 성리학을 복원해 세상을 개혁하려 수백의 저서를 남기는 동안 '명징한 사물 공부'와 섬 사람의 삶 자체였던 바다 세계에 눈을 뜬 정약전에게 주목했다. 그리고 정약전이 오랜 시간 집필에 도움을 받았다며 수차례 이름까지 써 놓은 젊은 어부 창대를 통해 상상력을 펼쳤다.

이준익 감독은 성리학의 세계에서 눈을 돌려 사람이 가장 중한 세상을 꿈꾼 정약전을 시대를 앞서나간 혁명가로 그렸다. 또 출세를 꿈꾼 창대를 통해 정약용의 사상을 약전과 대비시키며 조선 후기의 아픔과 좌절을 묘사했다. 동시에 세상이 정한 틀에서 벗어나 서로의 선생이자 벗으로 진정한 마음을 나눈 두 사람의 아름다운 관계를 절절하게 드러낸다. 그 모두를 쉽고 재미있고 따뜻한, 영락없는 대중영화로 풀어낸 데 점점 더 무르익어가는 감독의 탁월함이 있다.

배우들이 큰 몫을 한다. 연기인생 처음으로 사극에 도전한 설경구는 꼿꼿한 선비의 품격과 푸근한 인간미를 아우르는 관록을 보여준다. 변요한은 터질 것 같은 에너지로 대비를 이룬다. 이정은은 신의 한 수이며 조우진은 감초다. 정약용으로 등장하는 류승룡을 비롯해 김의성 최원영 민도희 차순배 정진영 동방우 강기영 등 분량을 가리지 않는 찰떡 캐스팅이 하나하나 근사하다. 

'자산어보'는 눈부신 흑백영화이기도 하다.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 하나하나가 보일 듯 선명한 화질, 다채로운 깊이로 담아낸 흑백의 영상은 지루할 새 없이 장엄하며 역동적이다. 스크린에서 확인해야 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파란 바닷빛이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순간, 감독은 작정했던 물감 한 방울을 톡 떨어뜨려 '흑산' 아닌 '자산'을 완성한다.

3월 31일 개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26분.

▲ 영화 '자산어보'. 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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