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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강화' 논란, 꼼꼼히 따져보니…픽션의 방패를 든 팩션의 함정[이슈분석]

작성일: 2021.12.23 07:00 강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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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강화. 제공ㅣJTBC
[스포티비뉴스=강효진 기자] JTBC 드라마 '설강화'를 향한 비판 여론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말을 보태기 시작했고, 제작진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을 당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지난 18일 첫 방송된 '설강화'는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어느 날 갑자기 여자대학교 기숙사에 피투성이로 뛰어든 명문대생 수호(정해인)와 서슬 퍼런 감시와 위기 속에서도 그를 감추고 치료해준 여대생 영로(지수)의 시대를 거스른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설강화'는 방송 전인 지난 3월 시놉시스 일부가 유출됐을 당시부터 방송을 막아야 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가장 큰 이유는 민주화 운동 폄훼와 안기부 및 간첩을 미화하는 역사왜곡 드라마로 추측된다는 점에서다. 반면 제작진은 "창작의 자유 침해다"라며 팽팽히 맞섰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설강화' 내부에는 우연의 일치라기엔 설정의 노림수가 다수 있고,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설정에 대한 과잉 해석으로 인한 오해가 뒤섞여 양측의 주장에 본질은 흐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민주화 운동 시기를 배경으로 남자 주인공이 쫓기는 운동권인 척 여대 기숙사에 몸을 숨겼으나 사실은 남파된 간첩'이라는 핵심 설정이다. 실제로 간첩으로 오인받아 고문을 당한 운동권 인사들이 다수 있었기에 이같은 설정이 위험하다는 지적이 컸다.

여기서 파생된 오해는 '운동권으로 위장한 간첩이 민주화 운동에 개입하는 내용이 담길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또한 주요 배역 중 하나인 안기부 요원 이강무(장승조) 등이 대쪽같은 성정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안기부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길 거라는 추측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유출된 미완성 시놉시스의 맥락없는 특정 문장을 토대로 억측이 이어졌다"며 "남파 간첩이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다, 학생운동을 선도했던 특정 인물을 캐릭터에 반영했다, 안기부를 미화한다는 내용은 드라마가 담은 내용과 다르며 제작 의도와 전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공개된 방송에서 이같은 오해의 일부는 해소됐다. 간첩인 남자 주인공 임수호는 안기부에 쫓기다가 여대 기숙사에 몸을 숨겼고, 여자 주인공 은영로에 의해 일방적으로 '운동권 학생'으로 오해를 받았다. 이후엔 생존을 위해 은영로의 오해에 맞장구를 치지만 민주화 운동에 직접 개입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았다. JTBC는 이 점에 대해 "앞으로의 전개에도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끌거나 하는 설정은 대본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또한 주인공 은영로와 한 기숙사를 쓰는 207호 등장인물 중에는 운동권 학생이 있지만, 민주화 운동 폄훼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기숙사 사감 역시 기숙사 내에서는 '데모 금지'를 규율로 내세우지만 운동권 학생을 파악하고 주시하며 보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임수호 역시 데모를 하다 잡혀간 은영로의 오빠에 대해 "멋지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임수호로 추정되는 간첩 '대동강 1호'를 잡기 위해 나선 이강무의 캐릭터는 아직 2회차 방송이기에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제작진은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 "정권 재창출을 위한 부정한 권력욕과 이에 호응하는 안기부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부각시키는 캐릭터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대쪽같다'는 면모 역시 "부패한 조직에 등을 돌리는 원칙주의자라는 면에서 쓴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캐릭터나 전개에 대한 오해는 JTBC의 해명대로 회차가 거듭하면서 풀릴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캐릭터의 설정만을 가지고 '미화'를 논하는 것은, '창작의 자유 침해'라는 관점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앞서 간첩이거나 안기부 요원인 드라마, 영화 속 인물이 없었던 것이 아니기에 남은 전개에서도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 '설강화' 1회 장면들. 방송화면 캡처
그러나 '설강화' 제작진이 간과한 것은 '가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며 "창작의 자유와 제작 독립성을 지켜달라"는, '픽션'을 방패 삼고 있다는 점이다. '설강화'는 이를 의식한 듯 오프닝에 "본 드라마는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기관, 기업, 지명, 사건, 배경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강조했지만, 공개된 드라마는 온전한 픽션이라기엔 실제 역사를 적극 녹여냈다 싶을 만큼 겹치는 부분이 많아 '가상의 정국'을 강조하기 민망할 정도다. 완전한 픽션이 아닌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덧붙인 '팩션'이라고 표현해야 정확할 듯 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왜곡된 이미지가 전해질 수 있다는 점을 많은 시청자들이 우려하는 것이다.

제작진은 '이념 때문에 안타까운 사랑을 하는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를 보여주겠다는 목표를 잡았다. 그리고 북한 남자를 평범한 남한 여대생과 엮기 위해 '간첩을 운동권으로 오해한다'는 있을 법한 설정을 선택했다. '사랑의 불시착'에서는 여자를 북한으로 날려보내는 판타지를 선택한 포인트다. 로그라인이 유출되면서 논란이 됐지만 핵심 설정이기에 바꿀 수 없었고, 제작진도 포기하지 않았다. 전개의 매끄러움을 위해 간첩과 운동권이 헷갈릴 수 있는 여지를 '가상의 정국'이라는 방패로 넘어가려던 것이 실수라는 지적을 받는다. 간첩으로 오인받아 고문을 당한 실존 인물들과 이 역사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깊이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군부정권 배경에 대해서도 '가상'임을 강조했지만, 1987년 대선 정국이라는 사실 외에도 많은 요소들이 실제를 고스란히 따놓은 듯한 설정이다. 북한과 여당의 야합, 간첩으로 오해받거나 조작된 피해자들, 안기부, 하나회를 연상하게 하는 동심회, 전두환을 연상케 하는 코드1 등이다. 심지어 임수호가 안기부에게 쫓기는 장면엔 시위를 하는 학생들이 민중 가요인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열창하는 모습이 담기기도 했다. 시대적 배경처럼 사용된 장면이라지만 이 노래에 담긴 무게감을 남다르게 느끼는 시청자에게는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될 여지가 있었다.

심지어 독일 베를린대학교 경제학과 대학원생으로 위장한 남자 주인공 임수호의 가정사는 '동백림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시놉시스상으로는 천재 음악가인 아버지가 반동분자로 몰린 가정사가 있다는 설정이다. 실제로 1967년 중앙정보부에서 독일과 프랑스 유학생과 교민들이 간첩이라는 주장을 했고, 천재 작곡가로 불리던 윤이상이 간첩으로 지목당해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앞으로의 전개에 해당 내용이 등장할지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 '설강화' 제작발표회에 나선 정해인 지수 조현탁PD(왼쪽부터). 제공|JTBC
여자 주인공의 이름은 일찌감치 문제의 소지로 꼽혀 발음이 비슷한 '은영로'로 수정, 대사 재녹음까지 거쳤다. 원래 이름은 은영초였으나 민주화 운동가 천영초를 연상하게 한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존 인물인 천영초의 남편인 정문화는 간첩으로 몰려 중형을 선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역사를 안다면 간첩인 남자 주인공과 로맨스를 펼치는 여자 주인공 이름으로 '은영초'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제작진은 "캐릭터의 이름이 천영초 선생님과 무관하다"고 했지만, 해당 이름을 사용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영초란 이름이 흔치 않은 만큼 시대적 배경을 설정하면서 설정상 오해를 빚을 수 있는 이름을 굳이 '우연히' 썼다고 보기엔 변명이 궁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밖에 안기부장 은창수(허준호) 등의 설정 역시 전두환의 추종자이자 2인자인 실존인물들을 연상하게 한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실존 인물과 사건을 떠올릴 수 있는 설정을 잔뜩 차용해놓고 '가상의 상황'이라는 방패를 내세워운 채 '억울하다'며 창작의 자유만 부르짖는다면 시청자는 쉽게 납득할 수 없다. 가상의 조선인 '킹덤'은 문제되지 않았지만, '조선구마사'는 양녕대군과 충녕대군 등 실존 인물의 이름을 가져와 구마사로 만들었기에 문제가 됐다. 일부 설정과 전개에 대한 오해는 억울할 수 있겠지만 비판의 빌미를 준 것은 결국 제작진의 안일함이 만든 참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설강화'는 '조선구마사'의 선례를 보며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을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방송 전부터 리스크가 드러나 있었지만 2회까지 눈에 띄는 수정은 여자 주인공 이름을 변경한 것 뿐이다. 아직은 2회차 방송 뿐이고, 시대물이기에 적지않은 제작비가 든 만큼 '설강화'는 방송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전개가 펼쳐지면서 몇몇 오해는 풀릴 가능성이 있지만, 이미 시청자들은 '설강화'라는 드라마를 드라마로만 볼 수 없게 된 분위기다.

우려가 되는 점은 '설강화'의 안일한 대처로 인해 앞으로의 창작물들이 '창작의 자유'의 압박을 받아 검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철인왕후'와 '조선구마사'라는 선례 이후 한동안 많은 작품들이 안전한 유, 무형의 틀 안에서 자체 검열을 거쳤다. 그런 와중에 피해갈 기회가 있었음에도 안일한 대처로 비난의 여지를 남긴 '설강화'가 남긴 여파는 결국 '설강화'에서 그치지 않고 "문제가 되는 작품은 방송 전에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극단적 여론으로도 번질 수 있다. 결국 '설강화'는 "사명감을 갖고 만들었다"는 제작진의 설명과는 달리 과거 뿐 아니라 미래에도 민폐를 끼치는 드라마가 될 위기에 직면했다.

▲ '설강화' 포스터. 제공|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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