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기자의 사심록(錄)]'옷소매' 관록의 하드캐리…이덕화라는 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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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영이 '왕의 여자'가 아닌 프로페셔널 궁녀로 살고픈 성덕임 역을 맡아 든든하게 떠받치고, 돌아온 이준호가 비극의 가족사를 딛고 성장한 세손 이산으로 분해 이야기를 끌고가니 다음 회를 안 볼 수가 없습니다. 중전 장희진, 제조상궁 박지영, 화완옹주 서효림, 서상궁 장혜진 그리고 홍덕로 강훈까지 찰떡같은 궁궐 사람들과 구멍 없는 열연도 말할 것 없죠. 역사가 깊은 MBC 사극의 남다른 때깔도 한몫합니다. 남다른 로맨스 케미스트리, 클리셰를 살짝씩 비튼 센스 넘치는 엔딩도 과몰입을 유발합니다.
그럼에도 첫 회부터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대목을 꼽는다면, 영조와 어린 이산의 숨막혔던 투샷을 들겠습니다. 불안했던 정통성이 콤플렉스였던 영조, 그가 역린을 건드린 금서를 손자 이산이 읽었다고 노발대발하다가 문제의 대목이 찢긴 것을 확인하고는 손자바보로 돌아가던 단 몇 분이요. 카리스마 넘치는 군주이자, 아들 사도세자를 제 손으로 죽인 비정한 아버지였으며, 비극적 가족사 속에서 굳건히 자라준 손자에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보여준 할아버지 영조가 배우 이덕화의 얼굴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어린 이산 역 이주원 배우도 열연했죠!)
조선 21대 임금 영조는 오랜 재위기간 만큼이나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다단한 인물로 꼽힙니다. 드라마틱하기로도 비할 데 없어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다뤄졌습니다. 이젠 가물가물해진 KBS '하늘아 하늘아'(1988)의 김성겸부터 MBC '대왕의 길'(1998)의 박근형, MBC '이산'(2007)의 이순재, 영화 '사도'의 송강호까지, 짙은 여운을 남긴 영조들이 이미 여럿입니다. 그럼에도 모두 잊고 새로이 몰입할 수 있을 만큼 이덕화의 영조가 생생했습니다.
돌이켜봐도,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빼앗고 할머니를 불행으로 몰아넣은 할아버지가 자신을 지킬 유일한 울타리이기도 했던 이산의 처지가 단적으로 드러내는 멋진 신이었습니다. 또한 단 몇 분으로 그 모두를 납득시킨 명배우의 관록이 빛을 발한 명장면이었습니다. 괴팍하고 변덕스런 성질마저 통치에 이용한 냉혹한 정치가이면서 뜨거운 애증으로 펄펄 끓는 모순된 인간 영조가 정말 그랬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로맨스의 저변에 깔린 비극적 서사가 그토록 입체적으로 그려졌기에 MBC 첫 입성에 '연기대상' 감 소리까지 나오는 이준호의 이산이 더욱 빛날 수 있었을 겁니다.
사실 이덕화가 등장한 분량은 한 회에 몇 분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연기인생 50년 - 배테랑의 관록은 매 순간 빛났습니다. 궐 밖을 드나들다 들킨 손자에게 냅다 따귀를 날리며 "아니된다 아니 돼, 니 애비처럼 되면 아니 돼"라며 울부짖을 땐 소름돋게 흉포하고도 절절했습니다. 사랑했던 영빈의 마지막 가는 길에 책을 선물했던 생각시를 떠올리면 화면의 공기가 따스해지는 것 같았어요. 참, 궁궐 안 연못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이산과 대화를 나누는 신도 있었죠. 두말하면 입아플 화제작을 두루 이끌어 온 독보적 배우이면서 진정 낚시를 사랑하는 '도시어부'이기도 한 이덕화를 향한 존경과 애정이 듬뿍 담긴 장면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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