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은메달' 박지희 연필 대신 칼 잡은 사연 “얘 공부 못하니까 운동해야 한다” 한마디에 시작해 아시아 2위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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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도코나메(일본), 신인섭 기자] 생애 첫 아시안게임 메달을 목에 건 박지희가 세계 랭킹 3위의 벽은 넘지 못했지만, 은메달을 획득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렸다.
세계랭킹 23위 박지희는 23일 일본 아이치현 도코나메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펜싱 여자 플뢰레 개인전 결승에서 일본의 우에노 유카에게 4-15로 패해 은메달을 차지했다.
첫 아시안게임에서 일궈낸 값진 성과다. 박지희는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개인전보다 단체전에서 주로 빛났다. 이번 대회에서도 개인전 우승 후보로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토너먼트에서 연이어 상대를 제압하며 결승까지 올라 자신의 첫 아시안게임을 은빛으로 장식했다.
박지희는 조별리그를 3승 2패로 통과했다. 몸 상태가 무거워 경기력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지만, 토너먼트에 들어서면서 반전을 만들었다. 32강에서 인도의 나오렘 미나 데비를 15-3으로 완파하고, 16강에서는 홍콩의 발레리 쳉히우와이를 15-9로 제압했다.
가장 큰 고비는 메달이 걸린 8강이었다. 필리핀의 서맨사 카탄탄을 상대로 한때 1-7까지 밀리며 탈락 위기에 놓였다. 박지희는 칼을 바꾼 뒤 흐름을 완전히 돌려놨다. 8-8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한 뒤 기세를 이어가 15-10으로 역전승을 거두고 첫 아시안게임 메달을 확보했다.
준결승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의 폴리나 볼로부에바를 만났다. 초반 0-2로 끌려갔지만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고 6-5로 승부를 뒤집었다. 마지막까지 한 점 차의 팽팽한 승부가 이어졌지만 13-12에서 내리 두 점을 따내 15-12로 승리, 결승 진출까지 이뤄냈다.
결승 상대는 세계랭킹 3위이자 개최국 일본의 우에노였다. 앞선 경기에서 힘을 쏟은 박지희는 초반부터 상대의 공세에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했다. 점수는 한때 0-12까지 벌어졌다. 그래도 그래도 박지희는 포기하지 않았다. 뒤늦게 첫 득점을 올린 뒤 연속으로 점수를 가져오며 마지막까지 맞섰다. 승부를 뒤집기에는 격차가 너무 컸고 결국 4-15로 패했지만, 첫 아시안게임 개인전을 은메달로 마무리했다.
박지희는 경기 후 밝은 표정으로 믹스트존에 들어섰다. 그는 “이번 대회에 메달을 꼭 따자는 목표를 갖고 나왔는데 은메달을 따게 돼 정말 기쁘다. 제 아시안게임 개인전 첫 성적”이라며 오히려 환하게 웃었다.
오히려 이날 자신의 경기력을 냉정하게 돌아봤다. 박지희는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았다. 예선에서도 몸이 무거워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며 “주목도가 높은 대회다 보니 긴장을 많이 했다. 그런데 토너먼트에서는 성적이 잘 나왔고, 럭키하게 은메달까지 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8강에서는 스스로도 탈락을 떠올릴 만큼 위기였다. 박지희는 “1-7까지 밀렸을 때 ‘첫 아시안게임인데 이렇게 지는 건가’라는 생각도 했다”며 “사실 메달을 딸 수 있다고 확신한 순간이 없었다. 계속 불안했다”고 털어놨다.
힘이 된 특별한 응원도 있었다. 준결승 당시 관중석에서 한 어린이가 목이 쉴 정도로 박지희를 응원했다. 박지희는 “4강 때 (관중석에서) 어떤 꼬마아이가 응원을 정말 많이 해줬다. 목이 쉬어가면서 제 이름을 불러줬다”며 “그 친구 덕분에 더 열심히 뛸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결승에서 0-12까지 밀리고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 역시 자신을 응원해 준 사람들 때문이었다. 박지희는 “연습 경기였다면 포기했을 수도 있지만 이런 시합에서 포기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응원해 주신 분들을 생각하면 15-0은 안 된다는 생각으로 다시 열심히 뛰었다”고 설명했다.
첫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따낸 박지희의 선수 생활 출발점은 꽤 독특하다. 펜싱을 시작한 이유를 스스로 “공부를 못해서”라고 표현한다.
중학교 1학년 당시 박지희의 아버지는 딸이 공부를 잘하는 줄 알고 운동을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님과 친분이 있던 체육 교사가 생각을 바꿔놨다. 박지희는 “아빠가 서울대, 고려대 같은 곳에 가야 한다고 하실 때 감독님이 제 1학기 성적표를 아빠에게 보여드렸다”며 “‘얘 공부 못하니까 운동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바로 펜싱장으로 향했다”고 웃었다.
그렇게 예상하지 못한 계기로 잡은 칼이 생애 첫 아시안게임 은메달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박지희에게 이번 대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는 26일 여자 플뢰레 단체전이 기다리고 있다. 박지희는 “단체전은 진짜 1등할 각오로 나왔다. 단체전은 무조건 금메달”이라고 힘줘 말했다.
끝으로 박지희는 자신이 뛰는 플뢰레가 이번 대회를 계기로 더 많은 관심을 받기를 바랐다. 그는 “펜싱에는 세 종목이 있는데 플뢰레가 가장 주목을 못 받고 있다. 한국 펜싱의 첫 올림픽 메달이 나온 종목도 플뢰레”라며 “이번 계기로 플뢰레가 더 주목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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