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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직한 기풍, 우아한 성취…'돌부처' 2000승 쌓다

작성일: 2026.10.26 19:54 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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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부처' 이창호 9단이 전인미답의 2000승 고지에 발을 들였다. ⓒ 연합뉴스
▲ '돌부처' 이창호 9단이 전인미답의 2000승 고지에 발을 들였다. ⓒ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열한 살 소년이 첫 승을 거두고 40년이 흘렀다. 

기풍처럼 우직하게 버티었다. 석불(石佛)처럼 쌓은 발자취가 우아하다. 

'돌부처' 이창호(51) 9단이 전인미답의 2000승 고지에 발을 들였다. 

이창호는 26일 전북 완주군 삼례문화예술촌에서 열린 2026 쏘팔코사놀 레전드리그 11라운드에서 최명훈 9단에게 207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프로 입단 후 40년 2개월여 만에 거둔 개인 통산 2000번째 승첩이다. 

통산 전적은 2000승 1무 830패로 승률 70.67%를 기록했다. 

전 세계 프로기사 가운데 2000승을 수확한 이는 이창호가 처음이다.

위대한 여정은 1986년 여름 시작됐다. 

만 11세 1개월에 프로에 입문한 이창호는 그해 8월 26일 승단대회에서 조영숙 초단을 꺾고 첫 승을 신고했다. 

이후 세대가 바뀌고 바둑 패러다임이 달라지는 동안에도 꾸준히 반상을 지켰다.

2000년 10월 통산 1000승을 돌파했고 2010년 1월 1500승, 2024년 9월 1900승을 차례로 채웠다. 

지난해 12월에는 1969승째를 거두며 스승 조훈현 9단이 보유한 역대 최다승 기록을 경신했다.

그해 바둑대상에서 특별 기록상을 받은 뒤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 판 한 판 승리를 보태며 전인미답의 고지에 다가섰고, 마침내 2000승을 완성했다.

대기록을 세운 뒤에도 바둑을 대하는 마음은 담백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창호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우게 돼 개인적으로도 영광이고 기쁘다”며 “좋아하는 바둑을 계속해서 둘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즐겁고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2000승에는 한국 바둑 황금기를 이끈 시간도 고스란히 담겼다.

이창호는 만 14세 1개월이던 1989년 제8기 KBS바둑왕전에서 첫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1992년 제3기 동양증권배에서는 일본 바둑의 거목 '이중 허리' 린하이펑 9단을 꺾고 세계 정상에 올랐다. 

당시 만 16세 6개월이던 그는 세계 최연소 챔피언으로 이름을 새겼다.

이후 LG배와 삼성화재배, 후지쓰배, 응씨배, 춘란배, 도요타덴소배 등을 휩쓸며 세계 대회 그랜드슬램을 이뤘다. 

메이저 세계 대회에서만 17차례 정상에 올라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대회를 포함한 통산 우승 횟수는 142회로 조훈현의 162회에 이어 역대 2위다.

▲ 이창호(앞줄 오른쪽)는 26일 전북 완주군 삼례문화예술촌에서 열린 2026 쏘팔코사놀 레전드리그 11라운드에서 최명훈 9단에게 207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프로 입단 후 40년 2개월여 만에 거둔 개인 통산 2000번째 승첩이다. ⓒ연합뉴스
▲ 이창호(앞줄 오른쪽)는 26일 전북 완주군 삼례문화예술촌에서 열린 2026 쏘팔코사놀 레전드리그 11라운드에서 최명훈 9단에게 207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프로 입단 후 40년 2개월여 만에 거둔 개인 통산 2000번째 승첩이다. ⓒ연합뉴스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린 이창호에게도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하나 낯선 변화 속에서도 새로운 바둑을 배우고 자신의 생각으로 한 수를 찾으려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지난 5월 6일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에서도 이러한 생각을 드러냈다. 

이세돌 UNIST 특임교수와 함께 참석한 그는 AI가 바둑에 가져온 변화를 인정하면서도 스스로 고민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짚었다.

이창호는 연합뉴스를 통해 “AI로 생각지 못한 참신한 발상과 접근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바둑은 더 발전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AI에 이기긴 힘들더라도 격차를 최대한 줄여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창호(오른쪽) 9단은 AI가 제시한 수를 받아들일 때도 스스로 납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귀띔했다. ⓒ연합뉴스
▲ 이창호(오른쪽) 9단은 AI가 제시한 수를 받아들일 때도 스스로 납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귀띔했다. ⓒ연합뉴스

AI로 공부하는 후배들에게는 자신만의 바둑을 먼저 만들어가라고 조언했다. 

그는 “정말 많은 도움을 받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면서도 “자기 스타일을 어느 정도 만들어간 상태에서 AI를 활용하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AI가 제시한 수를 받아들일 때도 스스로 납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창호는 “AI처럼 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공감이 되면 그렇게 두면 되는 것”이라면서도 “본인이 굳이 느껴지지 않는데 그냥 따라 하는 건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 대결을 돌아보면서는 당시 받은 충격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창호는 “축제 분위기로 구경을 간 거였는데 1국을 지는 걸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며 “몇 개월 지나고 난 후 AI와 몇 수를 둬봤는데 50수, 100수를 못 뒀다. 너무 괴로웠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런 힘든 상황에서 1승을 했다는 게 대단하다고 느꼈다”며 이세돌의 승리에 경의를 표했다.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던 시절에도, AI를 통해 새로운 수를 배우는 지금도 이창호는 반상을 지키고 있다. 

좋아하는 바둑을 계속 둘 수 있어 행복하다는 그의 소감에는 40년 승부 인생을 이어온 마음이 담겼다.

한국기원은 다음 달 3일 서울 성동구 마장동 사옥에서 이창호 9단의 2000승 기념식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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