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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인생 2막] 양궁 꿈나무가 LG 트윈스 코치로…김용일의 인생 역전 홈런

작성일: 2018.11.29 09:00 이교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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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는 끝이 아닙니다. 운동선수에게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미래를 가꿔 나가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습니다. 스포티비뉴스는 은퇴 후 새로운 삶을 사는 8명의 각계각층 인사들을 만나 선수 생활 이후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선수들이 어떻게 인생 2막을 그려 나가야 할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꿈꾸고, 준비하고, 도전하라고 말합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기획·제작됐습니다.

[스포티비뉴스=영상 이강유 기자·글 이교덕 기자] 30년이 지났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려 한다. 허리 부상 때문에 운동선수로서 사형선고를 받았던 대학교 1학년. 프로 야구 LG 트윈스 김용일 트레이닝 코치는 세상이 끝난 것처럼 허탈감에 빠졌다.

복싱 선수가 되려다가 예천중학교에 양궁부밖에 없어 활을 잡았다는 김 코치는 금방 양궁의 매력에 빠졌다. 운동신경이 뛰어나 곧 소질을 보였다.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우승하고 경북체육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키워 갔다.

그러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체조 수업에서 텀블링을 하다가 허리를 크게 다쳤다. 특기자로 1985년 안동대학교에 들어갔지만 몸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활시위를 당기기가 쉽지 않았다. 한 학기를 마쳤을 때 더 이상 양궁 선수로 살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것 같다. 양궁이라는 운동을 10년 동안 해 왔는데 너무 막막해서 한 달 동안 포장마차에서 술만 마셨다. 간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할 정도였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운동선수들을 비참하게 만드는구나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수업도 안 들어가고 운동만 했는데 그만두니까 막막했다. 정신을 차리려고 해병대에 지원했는데 허리 때문에 나와야 했다."

살려고 발버둥 쳤다. 뭐라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눈에 들어온 분야가 운동 치료·재활 치료였다. 그때부터 막연하지만 새로운 과녁을 향해 화살을 계속 날렸다. 관련 수업을 듣고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다. 서울로 올라와 침술도 배웠다.

▲ 불의의 사고로 활을 놓았던 어린 양궁 선수는 30년 뒤 프로 스포츠 재활 트레이닝 계의 선구자가 됐다.

"하다못해 1986년 일본으로 넘어갔다. 강습료 50만 엔을 들여 교정 치료법 수업도 이수했다. 응급처치사 강사도 하고, 축구팀에서 봉사 활동도 했다"는 김 코치는 "정말 힘들었던 게 대학교에서도 은퇴한 운동선수가 갈 수 있는 관련 직업이 무엇이고 어떻게 그 길로 들어설 수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라며 씁쓸해했다.

하늘이 기회를 줬다. 야구 축구 등이 프로화되면서 인기를 끌자, 선수들의 몸 관리를 돕는 재활 트레이너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김 코치에게도 환하게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살이 곧게 날아가 10점에 꽂히는 순간이었다.

"3년 동안 서울로 올라와서 자격증도 따고 하니까 그때야 보이더라. 당시에 프로 팀에 트레이너가 없거나 1명 정도 있었는데, 그때 나도 프로 팀에서 다친 선수들 돌보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졸업하기 전 MBC 청룡에서 트레이너를 뽑는다고 해서 거기 지원했고 우연찮게 일을 시작하게 됐다. LG 트윈스로 팀이 바뀌면서 그곳이 정식 직장이 됐다. 영광스럽게도 1990년과 1994년 우승을 함께했다."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국내에는 재활 트레이닝 노하우를 가르쳐 줄 만한 곳이 없었다.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 깊지 않았다. 당시 트레이너 하면, 선수들을 마사지하고 물통을 들고 나르는 보조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해외로 나가 부딪히는 수밖에 없었다. "백인천 감독님한테 부탁해서 겨울철에 일본으로 연수를 갔다. 미국 교육 리그도 가고 전지훈련도 따라갔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어떻게 몸을 만드는지 배웠다. 그때 트레이너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선수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주인공이 되려고 했지만, 주인공이 될 수 없어 좌절했던 어린 양궁 선수는 이제 억대 연봉을 받는 재활 트레이닝 계 선구자가 됐다. 30년 노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지금은 방황하고 있을 후배들에게 자신이 걸어온 길을 소개하는 전도사를 자처한다.

▲ 김용일 코치는 주인공을 빛나게 하면서 또 다른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차우찬의 훈련을 함께하는 장면.

"올해 대한선수트레이너협회장이 됐다. 회원이 3000명이다. 재활 트레이닝은 체대생, 물리치료학과생이 관심을 보이는 분야가 됐다. 강의를 나가면 이 직업으로 남들을 많이 도울 수 있다고 말한다. 처음, 다른 사람들을 마사지하고 스트레칭을 도울 때 부끄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낼 때 보람을 느낀다. 남을 도와주면서 살 수 있는 직업으로 가치가 있다."

김 코치는 대한선수트레이너협회장 자리에서 후배들이 재활 트레이닝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그들에게 진로를 열어 주려고 애쓴다. 후배들이 라이선스를 받고 여러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 중이라고 했다.

김 코치는 이제 정부 차원에서 은퇴 선수들에 대한 교육과 관리가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엘리트 체육 위주의 정책에서 희생된 운동선수들에 대한 대책이 부족하다. 선수들이 운동을 그만둬도 할 수 있는 직업을 창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후배들에게 따뜻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금부터 미래를 착실히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만이 길이 아니다. 운동 외에도 시야를 넓혀 건강한 삶을 살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김 코치는 여전히 도전을 계속한다고 했다. 인터뷰 마지막에 하하하 웃으며 한 말은 "여러분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저도 아직 30년은 더 활동할 수 있습니다"였다. 그는 과녁을 겨냥하고 활시위를 당긴다. 또다시 10점을 맞힐 준비가 됐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기획·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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