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리뷰]'화란', 나쁜 선택은 사람을 어디까지 불행하게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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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강효진 기자] 2D 영화인데 퀴퀴한 곰팡내와 비릿하고 역한 피 냄새, 좁은 골방에 찌덕하게 발바닥에 달라 붙는 오래된 장판이 느껴진다. 가난과 끈끈하게 엮인 불행을 4D로 보여주는 '화란'이다.
‘화란’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연규(홍사빈)가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송중기)을 만나 위태로운 세계에 함께 하게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누아르물이다.
연규는 가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청소년이다. 의붓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역할은 커녕 자격지심에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고, 어머니는 무기력하다. 좁은 방 하나에 커튼 하나를 치고 방을 나눠 쓰는 의붓 여동생 하얀(김형서)과는 데면데면한 가족과 남 그 어딘가다.
하루 빨리 돈을 모아 어머니와 함께 네덜란드로 떠나고 싶은 연규는 순간의 감정에 이끌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바로 하얀을 괴롭히는 동급생의 머리를 돌로 내리쳤다가 300만원이라는 합의금을 물게된 것. 가난한 집에서 여윳돈 300만원을 구할 수 있을리 없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치건이 연민과 호의를 담아 연규에게 300만원을 건넨다. 여기까진 나쁜 패와 돌이킬 수 있는 패, 두 가지를 쥐고 있던 연규였다.
그러나 '찾아오지 말라'는 치건의 경고를 무시하고 300만원 그 이상, 화란으로 떠날 수 있는 돈을 빨리 벌기 위해 치건의 조직에 몸담기로 선택한다. 이 선택으로 인해 연규는 '불행 도박판'에 자신도 모르는 새 인생을 담보로 걸게 된다.
같은 상황에서도 선을 넘는 선택은 결코 하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있듯, 연규의 비극은 자초한 일이다. 이전까지 가난하고 불행하기만 했다면, 이젠 가난하고 불행한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위험한 삶을 살게된 것이다.
불법으로 돈을 버는 조직의 일이란 어린 연규에게 가치관의 혼란을 안긴다. 작게는 오토바이 도둑질부터 사채 업무, 사람을 협박한 뒤 납치하고, 칼까지 휘두르게 된다. 연규는 맞닥뜨리는 범죄의 경계선마다 가치관에 혼란을 느껴 멈칫하지만 돌이킬 수 없이 말려든다. 더 나쁜 선택을 피해보려는 나름의 노력을 했음에도, 사실 어느 순간부터 그가 가진 패는 모두 나쁜 패였기에 선택을 거듭할 수록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
연규는 뒤늦게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원래대로' 돌아가려 하지만, 이미 조직에 깊이 발을 담그게 된 상태로 그냥은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쁜 선택들이 만든 최악의 삶에서 탈출하려는 연규, 치건은 그런 연규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오히려 '나쁜 길의 지름길'로 인도했다는 걸 깨닫는다.
조직 범죄 집단을 배경으로 하지만 '화란'은 화려한 액션물은 아니다.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 끈적하고 노골적인 불쾌함이 주를 이룬다. 지독한 가난 묘사 뿐 아니라 잃을 것 없는 인생들이 내던지는 위태로운 '밑바닥' 감성을 구질구질하게 보여준다. 특히 조직의 단호함과 비정함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을 만큼 처절한 '겉멋'으로 조직원들과 관객에게 겁을 준다. 생으로 손톱을 뽑거나, 못이 가득 든 주머니로 사람을 내리친다. 15세 치고는 관객들이 보기에 다소 역할 수 있다.
치건 배역에 떠오르는 익숙하고 뻔한 얼굴들은 너무나 많지만, 오히려 가려도 테가 나는 송중기가 맡아 신선함이 돋보인다. 송중기 특유의 덤덤한 대사톤이나 조폭답지 않은 미끈한 얼굴선이 주는 아이러니한 어울림이 있다. 어쩌다 조직에 낚여들어와 잡은 물고기가 되어버렸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이질감을 느끼고 있는 캐릭터에 설득력을 주는 비주얼이다.
연규의 이야기만으로는 평범한 누아르이자 소년물이었다면, 중·후반부에 치건의 서사가 더해지면서 칸 영화제가 선택한 '화란'의 진짜 매력이 드러난다. "모르는 사람인 나에게 왜 300만원을 줬느냐"는 연규의 물음에 "내가 왜 널 몰라"라고 답하는 치건의 한 마디가 핵심 서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 눈에 연규가 자신과 같은 과임을 알아본 치건, 자신의 과거를 치유하듯 연규를 연민하고 도우려던 치건, 결국 희망 없는 선택지 사이에서 나쁜 패만 뒤집다가 조직의 노예가 되어버린 스스로를 떠올리는 치건, 연규의 오해를 풀지 않고 인생에서 도망치는 선택을 하기까지 담백한 대사와 눈빛으로 완성한 치건의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인상적이다. 그리고는 결국 치건과는 다른 선택을 하기 위해 나서는 엔딩 속 연규의 모습이 그나마 이 답답한 이야기의 숨통을 틔워준다.
관객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먹먹한 감정이 든다. 고작 300만원으로 벌어진 이 비극의 원흉은 무엇일까.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순간 화를 참지 못한 연규일까, 하얀을 협박한 동급생들일까, 연규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한 부모 탓일까, 술을 끊지 못한 연규의 새아버지 때문일까, 가불을 해주지 않은 중국집 사장 때문일까, 괜히 300만원을 건네놓고 연규를 끝까지 내쫓지 않은 치건 때문일까, 치건과 연규에게 무자비했던 큰형님 때문일까.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 사이, 치기어린 아이들이 나쁜 패를 쥐지 않도록 인도할 수 있는 '좋은 어른'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내 인생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어딘가의 낚시 바늘에 걸려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적 재미와는 별개로 찝찝하면서도 묵직한 고민으로 가치있는 시간을 안겨줄 작품이다.
1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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