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DMZ랠리] “끌바를 해서라도 간다”…71.35km 민통선을 달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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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화천, 배정호 기자] “와…여기 진짜 끝이 안 보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헬멧 안으로는 땀이 쏟아졌고 페달은 이미 무거워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를 악물고 페달을 밟았고, 누군가는 자전거를 끌며 한 걸음씩 정상으로 향했다.
17일 막을 내린 화천DMZ랠리는 단순한 자전거 대회가 아니었다.
민간인 통제구역(MDL) 인근을 달리는 특별함, 해산령과 한묵령을 넘어야 하는 극한의 업힐, 그리고 60년 넘게 보존된 자연경관까지. 참가자들은 각자의 이유로 이 길 위에 올랐다.
생생한 현장을 전달하기 위해 기자도 직접 대회에 참가했다.
총 71.35km 아스팔트 코스로 구성된 이번 대회는 초보자도 도전할 수 있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핵심은 해산령과 한묵령, 두 개의 거대한 업힐이었다.
하지만 화천DMZ랠리의 분위기는 경쟁보다 축제에 가까웠다.
기록을 측정하는 계측 구간과 안전을 위해 속도를 제한하는 미계측 구간이 나뉘어 있었고 참가자들은 기록과 풍경 사이를 오가며 각자의 라이딩을 즐겼다.
출발은 화천공설운동장이었다. 화천군청소년수련관 앞까지 이어지는 퍼레이드 구간은 몸을 푸는 워밍업 코스였다. 참가자들은 서로 손을 흔들고 사진을 찍으며 긴장을 풀었다.
첫 번째 계측 구간은 초반 9km 평지로 시작됐다.
하지만 처녀고개를 지나 해산휴게소 방향으로 접어들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약 6km에 달하는 경사 구간이 참가자들의 체력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이어 7.14km 해산령 업힐이 시작됐다.
곳곳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어떤 이는 허리를 숙인 채 페달을 밟았고, 어떤 이는 결국 자전거에서 내려 ‘끌바’를 선택했다. 하지만 포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1차 기록계측 구간에서는 남원에서 올라온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원래 네 명이 같이 왔어요. 한 명은 선수 출신이라 먼저 올라갔는데 끝까지 다 같이 완주하고 싶어요.”
이미 지친 표정이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완주하겠다는 의지에는 웃음이 묻어났다.
약 2km 길이의 해산터널 끝이 보이자 참가자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1차 계측 구간이 끝난 순간이었다. 현장에는 1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참가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초코파이와 물, 그리고 “수고하셨습니다”, “화이팅”이라는 응원 한마디에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다시 웃음꽃이 피었다.
화천에서 군 생활을 오래했다는 한 자원봉사자는 참가자들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했다.
“행군은 정말 많이 해봤죠. 그런데 이 높은 고개를 자전거로 올라온다는 건 진짜 대단한 거예요. 그래도 화천이 자전거 도시로 알려지는 건 참 좋은 일 같아요”
잠시 후 시작된 1차 미계측 구간은 말 그대로 ‘보상’이었다.
해산터널부터 평화의댐까지 이어지는 긴 다운힐 구간에서 참가자들은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속도를 냈다. 기자의 속도계에는 최고 시속 60km가 찍혔다.
눈앞에는 60년 넘게 보존된 화천의 자연이 펼쳐졌다. 숲과 강, 그리고 평화의댐 풍경이 이어졌고 곳곳에서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는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이 구간은 제한 시간 1시간을 초과하면 실격 처리되는 구간이었다.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참가자들은 다시 페달을 서둘러야 했다.
화천DMZ랠리에는 기록 경쟁보다 ‘함께 달리는 기억’을 만들기 위해 참가한 가족들도 많았다. 평화의댐 인근에서는 중학교 1학년 아들과 함께 참가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자전거 대회잖아요. 아들이랑 같이 추억 만들려고 왔어요. 이렇게 함께 달릴 수 있다는 게 정말 좋네요.”
그리고 드디어 찾아온 2차 계측 구간. 참가자들이 가장 긴장하는 ‘마의 한묵령’이었다.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통일의 선봉장! 백두산에 태극기를!”이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그 순간 참가자들의 표정도 달라졌다. 정말 민통선 안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졌다.
우측으로는 지뢰지대가 펼쳐졌다. 철조망이 길게 이어진 풍경은 쉽게 접할 수 없는 긴장감을 안겨줬다.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이 일대에서는 노루와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도 종종 출몰한다.
한묵령 업힐은 최대 경사 14도에 달했다. 해산령보다 고도는 낮았지만 체감 난도는 훨씬 강렬했다. 시야 끝까지 이어지는 오르막은 참가자들을 심리적으로 더욱 압박했다.
외국인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나이지리아 출신 유학생은 완주를 향해 묵묵히 페달을 밟고 있었다.
“2021년에 한국에 와서 자전거를 샀어요. 친구 소개로 두 번째 참가인데 오늘은 날씨가 더워서 더 힘들어요. 그래도 꼭 완주하고 싶어요. 정말 아름다운 대회 외국인 친구들에게도 소개하고 있어요.”
그는 결국 정신력으로 한묵령 정상까지 올라갔다.
집념의 참가자들도 많았다.
한 참가자는 로드용 자전거를 잘못 가져왔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기어 변속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업힐 대부분을 걸어서 올라와야 했다. 한묵령을 ‘끌바’로 올라온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굴은 지쳐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누구보다 밝았다.
한묵령 다운힐은 올해 새롭게 안전 중심으로 운영됐다.
최근 의료 공백 이슈와 내리막 공사 상황 등을 고려해 미계측 구간으로 변경됐다. 블라인드 코너 곳곳에는 안전요원들이 배치됐고 참가자들은 보다 안정적으로 다운힐을 즐길 수 있었다.
마지막 3차 계측 구간은 약 15km 피니시 코스였다. 완만한 다운힐과 평지가 이어졌고 참가자들은 북한강을 바라보며 결승선을 향해 달렸다.
긴 업힐을 넘은 참가자들은 마지막 힘을 짜내며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그리고 골인 직후 대부분의 참가자 얼굴에는 기록보다 더 큰 만족감이 남아 있었다.
직접 경험한 화천DMZ랠리는 단순히 힘든 업힐을 견디는 대회가 아니었다. 통제된 쾌적한 도로, 민통선 내부를 달리는 특별한 경험,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함께 숨 쉬는 축제였다.
누군가는 친구와의 추억을 위해, 누군가는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또 누군가는 자신의 한계를 넘기 위해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참가자들은 기록보다 더 값진 풍경을 가슴에 담고 있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동호인이라면 꼭 한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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