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현종.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정철우 기자]2010년 가을의 일이다. 당시 대표 팀을 이끌고 있던 조범현 감독은 연신 김시진 투수 코치를 괴롭혔다. 자꾸 그를 쫓아다니며 뭔가를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그 때 옆엔 늘 젊은 투수 한 명이 서 있었다.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은 커터였고 학생은 양현종이었다. 타 팀 소속인 만큼 화살이 돼 돌아올 수 있었지만 김 코치(당시 넥센 감독)은 흔쾌히 조 감독의 부탁을 들어 줬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양현종은 커터 장착 이후 어깨 부상 등 악재가 겹쳤다.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지며 전혀 다른 투수가 됐다.

2009년과 2010년 내리 10승 이상을 했고 2010년에는 16승을 거뒀다. 하지만 이후 3년간 양현종이 거둔 승수는 17승에 불과했다.

커터가 모든 문제의 원인이었다고 할 순 없다. 양현종도 "그때 배운 커터 그립으로 슬라이더를 던져 더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어찌됐건 양현종과 커터는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왜 당시 조범현 감독은 양현종에게 커터 장착을 권유했던 것일까. 새 구종을 익힌다는 건 적잖은 위험성을 안고 있다. 특히 그해 16승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투수에게 새로운 시도를 하도록 권하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다.

투구-타구 추적 시스템인 트랙맨 데이터로 양현종의 공을 분석하면 어느 정도 해답이 나올 수 있다. 커터가 있었다면 더 좋은 짝이 될 수 있는 패스트볼이 있었기 때문이다.

좌완 투수들의 패스트볼 좌우 무브먼트 순위다. 포수와 투수 사이에 스트라이크 존을 중심으로 가상의 직선을 그어 놓았을 때 공이 얼마나 움직이느냐를 알 수 있는 데이터다.

1위는 패스트볼이 자연 커터처럼 휜다는 금민철이 차지했다. 금민철의 패스트볼은 일반적인 좌투수들과 달리 투수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공이 휘어 들어간다.

여기서 눈 여겨봐야 할 선수가 바로 양현종이다. 양현종은 -8.89cm로 전체 4위에 올라 있다. 좌우 무브먼트에서 음수는 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측으로 휘어진다는 뜻이다. 너무 많이 휘어도 제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금민철의 자연 커터도 마찬가지다. 적당히 휘며 제구가 가능해야 한다. 양현종의 수준이 딱 좋은 이유다.

양현종이 던진 패스트볼은 투수를 기준으로 많이 휘어져 들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좌타자의 몸쪽, 우타자의 바깥쪽으로는 굳이 변화구를 많이 던지지 않더라도 볼 끝의 움직임으로 방망이를 압도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삼진을 잡는 공으로도 활용이 가능하지만 맞춰서 땅볼을 유도하기도 좋다.

양현종이 2스트라이크 이후 루킹 삼진을 잡아낸 분포도를 알아본 데이터다.

흥미로운 것은 좌타자를 상대로는 거의 몸쪽 승부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패스트볼 공의 궤적이 좌타자의 몸쪽으로 휘어 들어가기 때문에 몸에 맞는 볼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우타자의 바깥쪽은 마음껏 활용했다. 타자들은 바깥쪽으로 멀어지게 느껴지는 양현종의 패스트볼에 수없이 당했다.

여기서 잠깐, 이런 패스트볼을 갖고 있기에 커터에 대한 갈증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커터는 패스트볼처럼 오다 막판에 오른쪽으로 꺾여 들어가는 구종이다.

양현종이 금민철 수준의 움직임만 커터로 만들어 낸다면 부담스런 우타자 안팎을 공략할 수 있는 최적의 무기를 갖게 된다. 안쪽과 바깥족을 모두 크게 흔들 수 있는 구종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양현종은 20승을 거둔 지난 시즌에도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2할9푼8리로 높은 편이었다. 그 우타자를 잡기 위한 또 다른 구종, 즉 커터에 대한 욕심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양현종의 커터 장착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당시에 익힌 감각으로 슬라이더를 더욱 예리하게 던질 수 있게 됐다는 양현종이다.

그래픽에서 보는 것처럼 2스트라이크 이후 헛스윙 유도 구종에서 슬라이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하지만 우타자 몸쪽 승부로 슬라이더는 비율이 높지 않다. 양현종이 혹시라도 다시 커터에 욕심을 내지는 않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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