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광주, 조영준 기자] 손연재(21, 연세대)를 칭하는 대표적인 닉네임은 '리듬체조 요정' 혹은 '아시아 리듬체조 퀸'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유니버시아드 정상에 오르며 'U대회 퀸'에 등극했다. 리듬체조 변방국인 한국에서 손연재가 출연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른 나이인 6살 때부터 리듬체조를 시작한 그는 어릴 때부터 각종 국내 대회를 휩쓸었다. 차세대 리듬체조 기대주로 주목을 받았던 손연재는 2010년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다. 그러나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리듬체조 최강국인 러시아와 동유럽 선수들이 점령하고 있는 리듬체조 무대에서 손연재는 동아시아에서 온 어린 선수일 뿐이었다.

지난 2010년 러시아 모스크바 세계선수권에서 그는 개인종합 32위에 그쳤다. 당시 16세 소녀였던 그는 시작은 미약했지만 이후 앞만 보며 달렸다.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러시아 노보고르스크 훈련지에 둥지를 틀고 세계적인 선수들과 땀을 흘렸다. 어렸을 때부터 '악바리'로 불린 근성은 꾸준히 이어졌고 어느새 '월드클래스'로 성장했다.

주니어 시절 많은 리듬체조 전문가들은 손연재에 대해 "아무리 못해도 장차 세계 10위권 안의 선수로 성장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러한 전망은 현실로 이어졌다. 손연재는 세게 10위권 안의 선수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 결과 2012년 런던올림픽 5위에 올랐고 2014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해 터키 이즈미르 세계선수권에서는 이 대회 역대 최고 성적인 개인종합 4위에 올랐다.

아시아 퀸의 자리를 굳건히 지킨 그는 유니버시아드까지 정복했다. 이번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는 현역 최강인 마르가리타 마문(20, 세계랭킹 1위) 알렉산드라 솔다토바(17, 세계랭킹 2위) 그리고 지난해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야나 쿠드랍체바(18, 이상 러시아)가 출전하지 않았다. 중동성호흡기증후군(메르스) 여파로 이들은 불참을 선언했다.

세계랭킹 4위인 손연재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비록 러시아 최강자들이 출전하지 않았지만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의 강자들이 이번 광주 유니버시아드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손연재의 금메달 획득 전망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안나 리자트디노바(22, 우크라이나)와 멜리티나 스타니우타(22, 벨라루스)를 제치고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


"아파도 훈련량 늘렸다"…악바리 근성 좋은 결실로 이어져

올 시즌 손연재는 고질적인 발목 부상으로 고전했다. 아픈 발목으로 인해 시즌 프로그램 준비에 늦게 들어간 것은 물론 많은 대회를 소화하지 못했다. 특히 지난 4월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첫 날 일정만 소화하고 둘째 날 경기는 포기했다. 손연재는 대한체조협회의 추천으로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다소 아쉬움이 남는 과정이었다.

치료와 훈련을 반복하며 부상 극복에 나섰지만 아픈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손연재는 "발목 부상 때문에 훈련량을 많이 늘리면 바로 아파서 쉬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훈련량을 최대한으로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 준비하면서 그냥 아파도 훈련량을 늘렸다. 개인적으로 많이 힘든 준비 과정이었다. 다행히 결과가 좋게 나와서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손연재는 지난달 충북 제천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아선수권'을 마친 뒤 훈련지인 러시아 노보고르스크로 떠났다. 아파도 훈련량을 늘리며 이 대회를 준비한 과정은 '금메달'이라는 결실로 열매를 맺었다.

MBC 리듬체조 해설가인 차상은 국제심판은 "이번 유니버시아드 경기를 볼 때 훈련을 정말 열심히 한 티가 났다.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경기에 임하는 집중력도 한층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시니어 6년차 경험에서 오는 노련함…뛰어난 위기 극복 능력

만 21세인 손연재는 어느새 리듬체조 계의 '노장'이 됐다. 리듬체조 선수의 생명은 다른 종목과 비교해 짧다. 관리에 따라 20대 중후반까지 선수 생활을 연장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에 전성기를 맞이한다.

시니어 시절 초기 손연재는 재기 발랄한 표현력과 다이내믹한 동작으로 주목을 받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루틴은 정교해졌고 표현력도 '소녀티'를 벗어던졌다. 신체적인 조건이 우월한 동유럽 선수들과 비교해 손연재는 여러모로 불리하다. 이러한 점을 정확한 동작과 자신 만의 표현력으로 극복해냈고 위기관리 능력도 향상됐다.

실제로 손연재는 리본 종목에서 위기를 맞이했다. 리본 매듭이 묶어지며 몸에 엉킬 수 있는 위기가 찾아온 것. 자칫 큰 실수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손연재는 집중력을 발휘하며 이 순간을 극복해 냈다. 차상은 심판은 "리본이 묶일 때 다음 동작으로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실수를 유발하지 않고 노련미를 발휘했다. 집중력이 돋보였다"고 분석했다.

손연재는 지난달 아시아선수권 종목별 결선을 마친 뒤 "실수가 나와도 내게 주어진 작품은 끝까지 해내려고 한다. 끝날 때가지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나는 행운아"라고 밝힌 손연재, 멈추지 않는 '안방 불패'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대회는 '양날의 검'이다. 홈 어드밴티지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반드시 국내 팬들 앞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는 부담감은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손연재는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부터 제천 아시아선수권 광주 유니버시아드 등 3번에 걸친 홈 국제대회를 치렀다.

결과는 모두 좋았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개인종합 금메달을 획득했고 아시아선수권에서는 3관왕에 등극했다. 2013년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에 처음 출전한 손연재는 당시 볼 종목 은메달 개인종합 6위란 성적표를 받았다. 2년 뒤 광주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에서는 개인종합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 손연재는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경기를 할 때 내가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긴장한 적이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다시 한번 광주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런 게 더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안방이기 때문에 더 마음 편하게 가지려고 노력했다. 좀 더 최선을 다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털어놓았다.

마음의 부담감을 털고 홈어드벤티지가 존재하는 국내에서 손연재는 좋은 결실을 맺었다. 자칫 '잘 차려진 밥상'을 걷어찰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나 손연재는 과오를 범하지 않았다.

손연재는 한국 리듬체조 사상 처음으로 유니버시아드 개인종합 우승을 달성했다. 분명 뜻 깊은 성과지만 분명한 것은 'U대회 퀸'일 뿐 '리듬체조 퀸'은 아니다. 앞으로 남은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에서 손연재는 여전히 러시아 최강자들에게 도전하는 입장이다.

손연재는 후프(18.000) 볼(18.150) 곤봉(18.3500 리본(18.050)에서 모두 1위로 종목별 결선에 진출했다. 개인종합 우승을 달성한 그는 13일 진행되는 종목별 결선에서 다관왕에 도전한다.

[사진1,2,3] 손연재 ⓒ 스포티비뉴스 한희재 기자

[사진4] 안나 리자트디노바(왼쪽) 손연재(가운데) 멜리티나 스타니우타 ⓒ 스포티비뉴스 한희재 기자

[영상] 손연재 기자회견 ⓒ 편집 배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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