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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단일팀 '코리아'의 감격을 다시 한번…남북 스포츠 교류 역사(8)

작성일: 2017.05.07 11:13 신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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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에서 중국을 게임 스코어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코리아’ 선수들이 시상대에서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남과 북은 1991년 4월 24일부터 일본 지바에서 열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일팀 구성을 위한 접촉을 새해 벽두부터 활발히 진행했다. 남 측 장충식 대표와 북 측 김형진 대표를 수석으로 하는 양측 대표단은 1990년 11월 29일 1차 회담을 시작으로 1991년 2월 12일 4차 회담에 이르기까지 73일 동안 마라톤 협상을 거쳐 마침내 남북 분단 이후 처음으로 단일팀 구성에 이르렀다.

세부적인 실무 협상에서 양측은 팀 명칭을 ‘코리아(KOREA)'로 합의하고 단기는 흰색 바탕에 하늘색 한반도 지도가 들어간 직4각형으로 했고 단가는 민족 고유의 민요 아리랑을 택했다. 단일팀 구성을 위한 실무공동위원회는 북 측이 단장을, 남 측이 감독을 맡기로 하고 선수 선발은 남북을 안배해 대회 개막 1개월 전인 1991년 3월 25일부터 4월 20일까지 나가노와 나가오카에서 합동 훈련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코리아’ 선수단 가운데 여자부는 남 측의 현정화, 홍차옥, 홍순화, 박경애, 박해정 등 5명과 북 측의 리분희, 류순복, 안희숙, 김혜영, 한혜성 등 5명을 합해 10명으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단체전 주전은 남 측의 에이스인 왼손잡이 현정화와 북 측의 간판 스타인 왼손잡이 리분희와 오른손 셰이크핸드 드라이브 공격수 류순복으로 짜여졌다.

탁구에서 복식 조를 왼손잡이끼리 묶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지만 윤상문 감독은 단일팀의 상징성을 최대화한다는 취지에서 ‘현정화-리분희 카드’를 뽑았고 이 전략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다. 예선 5경기를 전승으로 마감한 ‘코리아’는 16강전에서 덴마크, 8강전에서 러시아 그리고 준결승전에서 헝가리를 각각 누르고 결승에 진출했다.

‘코리아’는 1991년 4월 29일 지바시 컨벤션 센터인 마쿠하리 메세에서 벌어진 여자 단체전 결승전에서 세계 최강 중국과 맞붙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볼 때 ‘코리아’가 중국을 이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세계 랭킹 3위 리분희와 9위 현정화가 준결승전까지 8경기를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주전으로 뛰면서 체력의 한계에 도달해 있었던 데 비해 선수층이 두꺼운 중국은 세계 랭킹 1위 덩야핑, 2위 가오준을 준결승전까지 전 경기에 내보내지 않고도 쉽게 결승전에 올라 이들 두 주전이 우선 체력적으로 ‘코리아’의 주전들에 앞서 있었다.

그러나 스포츠는 전력이라는 기본 요인 외에 객관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플러스 알파라는 요인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코리아’ 자매들은 몸으로 입증해 보였다. 40여년 동안 적으로만 싸워 왔던 남북 선수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든 단일팀이라는 상징성에서 비롯된 끈끈한 응집력에다 8천여 관중의 응원에 힘입어 경기의 주도권을 ‘코리아’가 쥐었다.

첫 단식에 나선 류순복이 덩야핑을 세트스코어 2-0으로 꺾어 기선을 잡더니 두 번째 단식에 등장한 현정화 역시 가오준을 세트스코어 2-0으로 잡아 복식만 이기면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그러나 부동의 세계 최강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중국이 2개월 만에 급조된 ‘혼성 팀’에 스트레이트로 패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복식에서 덩야핑-가오준 조가 현정화-리분희 조를 세트스코어 2-0으로 누르더니 네 번째 단식에서 덩야핑이 현정화를 세트스코어 2-0으로 이겨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5번째 단식에서 류순복과 가오준이 맞붙었다. 쉽지 않은 경기가 예상됐지만 어찌된 일인지 셰이크핸드 드라이브의 까다로운 전형인 가오준이 류순복의 속공을 막지 못하고 경기는 20분 만에 세트스코어 2-0(21-19 21-19)으로 끝났다.

남과 북이 힘을 모은 ‘코리아’는 1973년 사라예보에서 열린 제32회 대회에서 정현숙과 이에리사를 앞세워 중국과 일본을 따돌리고 우승한 이후 18년 동안이나 만리장성 안에 굳게 갇혀 있던 코르비용 컵을 한반도로 끌어들이는 대업을 이뤘다.

당시 AP통신은 경기 결과를 두고 한국과 수교를 원하고 있는 중국이 한국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코르비용 컵을 내준 것이라는 분석 기사를 전 세계에 타전하기도 했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실제로 이듬해인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은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 1991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조별 리그 아일랜드와 경기에서 분전하고 있는 ‘코리아’ 조진호(오른쪽) ⓒ대한축구협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이어 6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 월드컵 전신)에도 남과 북은 단일팀 ‘코리아’를 구성해 출전했다.

‘코리아’는 남북 18명씩 36명을 우선 선발해 두 팀으로 나눈 뒤 5월 8일 서울에서 1차 평가전, 12일 평양에서 2차 평가전을 치러 선수단을 꾸렸다. 코칭스태프는 감독 안세욱(북), 코치 남대식(남), 트레이너 최만희(남)와 문기남(북)으로 짜였고 선수진은 최익형, 박철, 강철, 노태경, 장현호, 이임생, 조진호, 한연철, 서동원, 이태홍(이상 남 측), 김정선, 정강성, 김정만, 최영선, 윤철, 리창하, 최철, 조인철(이상 북 측) 등 18명으로 구성했다.

‘코리아’는 조별 리그 A조 첫 경기에서 조인철의 중거리 슛으로 결승 골을 뽑아 강호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은 데 이어 아일랜드와 1-1로 비기고 홈팀 포르투갈에 0-1로 졌으나 1승1무1패, 조 2위로 8강에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준준결승전에서 브라질에 1-5로 졌지만 ‘코리아’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싸워 전 세계 축구 팬들의 갈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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