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 CRITIC in 도쿄] '도쿄 대첩'이 남긴 것, 대표 팀은 ‘감동’을 줘야 한다(영상)
작성일: 2017.12.18 05:00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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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도쿄(일본), 한준 기자] “지면 안된다! 90분만 집중하자!” (신태용 감독)
16일 저녁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치른 일본과 2017년 동아시안컵 3차전. 한 축구 대표 팀 선발 선수들은 동전 던지기로 공격 방향을 정한 뒤 벤치 앞에 모였다.
그라운드 위에서 11명의 선수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경기를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날 대표 팀은 선발 11명이 아니라 대기 명단에 든 선수까지 23명, 그리고 신태용 감독을 포함한 코칭스태프 전원이 둥글게 원으로 모였다.
신 감독이 외친 한마디는, 크게 색다를 것 없는 이야기. “지면 안된다. 90분만 집중하자.” 일반적인 이야기지만, 전 선수단이 함께 모여 넣은 기합의 울림은 크기가 달랐다. 선수 입장에 앞서 벤치 앞에서 모이자는 주장 장현수의 말은 동료에 대한 존중을 담은 존댓말이었다. 신 감독의 말도 강압적이거나 비장하기보다 함께 승리를 만들자는 동료 의식이 묻어 있었다.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신 감독과 차두리 코치의 격려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 안에 경기를 즐기고 좋은 플레이를 하자는 생각이 함께 담겨 있었다. ‘
한국의 4-1 대승. 내용과 결과 모두 확실히 열세였던 일본의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은 개별 선수의 능력 차이가 비교 불가라고 진단했다가 일본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할릴호지치 감독의 말대로 일대일 상황에서 압도당하면 감독이 전략적으로 ‘손 쓸 수 없다.’
그런데 지금 한국 대표 팀에서 뛰는 선수들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별종’이 아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원정 무승을 기록하며 중국, 이란에 쩔쩔 맸고, 시리아도 압도하지 못했다. 물론 바뀐 선수도 있지만,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라면 팀 분위기와 단합이다.
선발 선수와 대기 선수가 한마음으로 뭉쳤고, 선수들 스스로 자신감을 가졌다. 일대일은 물론 협력 플레이, 전술 수행력에서 한국이 좋은 플레이를 보인 이유는 ‘팀의 위대한 가치’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 위기 탈출한 한국 축구, 선수가 바뀐 게 아니라 팀 정신이 바뀌었다
제아무리 개인 능력이 뛰어난 선수가 팀에 있어도, 팀플레이로 이를 지원하지 못하면 원맨쇼만 펼치다 허물어진다. 개인 능력이 좋은 선수가 여럿 모여도 팀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조직이 잘 갖춰진 팀을 무너트릴 수 없다. 팀으로 규합과 전술적 준비가 잘 된 상태라면, 개인 능력에서 우위에 있는 팀이 유리하다. 하지만 모든 승리의 전제 조건은 ‘팀 정신’의 확립이다.
팀 정신은 경기장뿐 아니라 훈련장에서도 나타났다. 무작정 분위기가 밝고 좋다고 잘되는 것은 아니다. 밝은 분위기 속에 명확한 지시와 집중된 플레이가 수반돼야 한다. 집중력은 체력과 정신력이 흔들릴 때 떨어진다. 신태용호는 출범 이후 경기 외적 논란으로 흔들렸지만, 11월 A매치를 기점으로 반전에 성공했고, 이 분위기를 동아시안컵까지 이어 가는 데 성공했다.
좋은 결과가 좋은 분위기를 이끈다는 것은 축구계 정설이다. 제아무리 좋은 관계에 좋은 분위기를 형성했어도 경기에서 지면 깨지기 쉽다. 좋지 않던 분위기를 뒤집는 모멘텀은 승리에서 온다. 갈등과 논란이 있어도 함께 결과를 만들면 유대감이 생긴다.
초반 2경기에서 이탈 요원이 많은 선수단을 이끌고 승리한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도 일본 취재진의 박수를 받다가 한국전 패배로 ‘경질하라’는 질타까지 받게 됐다. 반면 지속적으로 의심 받던 신태용 감독은 실험과 점검에 쓸 수 있는 대회에서 결과를 명확하게 바라보고 필요한 것을 취했다. 실적이 아니라 단단한 팀 정신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북한의 경우를 보면 팀으로 결과를 내겠다는 선수들의 간절한 마음은 좋았으나 개인 능력의 열세가 컸다. 북한은 모든 선수들이 똘똘 뭉쳐 뛰었기에 일본, 한국에 1점 차 석패를 했고, 중국과 1-1로 비겼다. 북한 공격수 안병준은 이를 두고 “팽팽한 경기를 했지만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1점이 아주 큰 차이”라고 했다.
전술적으로, 조직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잘 뭉친 팀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한국은 중국전과 일본전 모두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내줬으나 할 수 있다는 스스로 자신감, 팀으로서 자신감이 충분했기 때문에 이를 뒤집을 수 있었다. 북한과 경기에는 상대 강점을 무력화하기 위한 실리적 전술을 바탕으로 물러선 경기를 하면서 기어코 필요했던 결과를 챙겼다. 꾸역꾸역 이겼다고 보였을지 몰라도, 선수들 스스로는 경기 계획을 잘 수행했다고 자평했다.
신태용 감독은 중국전과 북한전 모두 준비한 대로 경기했으나 어렵게 풀린 이유가 골 결정력에 있다고 했다. 골 결정력이 개인 능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북한은 더 심각하게 겪은 문제이기도 하다. 팀으로 좋은 플레이를 해도, 결정력이 떨어지면 승부처에서 미끄러진다. 한국은 이 부분서도 동아시안컵 참가 4개국 가운데 앞서는 편이었다.

◆ 험난한 러시아 월드컵 조 편성, 대표 팀은 결과가 아니라 메시지를 줘야 한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F조 편성을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는 스웨덴, 멕시코, 독일이 모두 좋은 선수와 좋은 조직, 좋은 정신을 가진 팀이기 때문이다. 스웨덴과 멕시코 모두 역대 월드컵에서 조별 리그 통과를 1차 목표로 삼는 팀이다. 스웨덴이 이탈리아를 꺾은 힘은 팀 정신의 발현이었다. 멕시코는 예로부터 강한 정신을 갖고 경기했다. 독일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국도 팀 정신을 만들고, 전술적 방향성을 확립한 점에서 F조에서 한번 싸워 보자는 희망과 기대를 가질 수 있게 됐다. 11월 A매치 성과가 좋았지만, 상대가 장거리 원정을 온 온전치 않은 팀이었다는 점에서 의심을 다 불식하지 못했다. 동아시안컵은 선수단은 물론 여론 역시 기대를 갖고 월드컵에 나설 수 있게 해 줬다는 것이 중요하다.
팀으로 뭉쳐서 최선을 다한다면, 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감동을 남길 수 있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클리세는 스포츠에서 언제나 유효하다. 역사는 결과를 기억하지만, 가슴은 감동을 잊지 않는다. 동아시안컵 우승 과정에서 상대 팀의 전력과 여건이 어찌됐든, 우승 컵을 들기 위해 한국 대표 팀이 훈련하고, 경기한 내용은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축구는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다. 나라의 문화와 생각을 반영한다. 축구 대표 팀의 실패와 축구 대표 팀이 주는 실망감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큰 이유다. 그래서, 축구 대표 팀은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이유는, 국수주의나 민족주의라는 부정적 개념을 넘어 11명의 각기 다른 선수, 23명의 엔트리 전체 선수들이 공동체 의식을 갖고 하나의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나오는 시너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부정과 부패, 적폐 논란에 휩싸였던 대표 팀은 지금 한국 사회와 한국인들이 느끼는 불합리와 절망감을 반영하고 있었다. 축구 대표 팀이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희망의 메시지를 남긴다면, 다시금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고 국가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 동아시안컵 우승이 남긴 의미와 교훈은 결코 적지 않다. 이 대회를 취재한 기자 역시, 똘똘 뭉친 대표 팀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축구가 주는 힘이다.
글=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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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 기자 hjh@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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