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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했던 축구 레전드’ 별세 2주기 크루이프 읽기

작성일: 2018.03.28 16:29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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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크루이프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누구였냐고 물으면, 우선은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의 이름이 나온다. 월드컵 우승을 이끌면서 전 지구적으로 자신이 가진 특출난 기술과 실적을 인정 받았다. 

월드컵과 인연이 없었지만, 레알마드리드의 역사에 길이 남을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역시 위대한 실력자였다는 것을 전무후무한 유러피언컵 우승 실적과 라리가 득점 기록으로 유럽 안에서 인정받았다. 

현역 선수 중 월드컵 우승만 경력의 빈틈으로 남은 리오넬 메시가 비범한 기량과 기록으로 이들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레전드 요한 크루이프는 이들 사이에 포함되기도, 제외되기도 한다. 그 역시 늘 축구역사상 최고의 선수들과 나란히 선다. 크루이프 턴이라는 기술을 창시한 테크니션이자, 유로피언컵 3회 우승과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실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선수였다. 

하지만, 월드컵 우승 문턱에서 무너진 것이나, 앞서 거론된 선수들처럼 무자비한 골잡이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오직 선수의 관점으로만 보자면, 크루이프에 대한 평가는 펠레, 마라도나, 디스테파노, 메시와 비교했을 때 반 발자국 정도는 뒤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축구라는 구기 종목의 전술적 발전을 논하는 데 있어 누구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한 ‘축구인’을 뽑자면 크루이프가 이 네 명의 선수들보다 앞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크루이프는 감독 경력 만으로도 위대할 수 있는 축구인이다. 선수와 감독으로 유러피언컵을 제패했고, 선수 시절에 선보인 토탈풋볼을 감독이 되어 완성해 현대 축구 전술의 초석을 다졌다.

선수와 감독의 역사를 합친다면, 축구 역사상 크루이프와 같은 존재는 없었다.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성공한 축구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크루이프는 ‘축구를 바꾼 사람’이라는 설명이 과하지 않은 사상적 업적을 남겼다. 축구 전술이 크루이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읽는 축구’의 매력, 크루이프의 ‘말’

펠레와 마라도나, 디스테파노와 메시의 매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그들의 플레이 영상을 봐야 하지만, 크루이프의 축구는 ‘읽는 행위’로도 관전 못지 않은 카타르시스를 준다. 크루이프는 비범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가 축구를 이해하는 방식이 후대의 전술가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크기의 영감을 줬다. 크루이프가 남긴 말은 수 년 간 다양한 방식으로 번역되어 널리 전파되었다. 

크루이프는 2016년 3월 24일에 숨을 거뒀다.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주제프 과르디올라(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 감독 시절 선수로 발탁했고, 바르셀로나의 감독이 되어 지도 철학을 계승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전무후무한 업적을 달성, 바이에른뮌헨과 맨체스터시티를 거치며 축구 전술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라는 유산을 남긴 것은, 아직도 그에게서 통찰을 얻고자 하는 이들의 아쉬움을 달랜다. 과르디올라도 끊임없이 이상적인 축구, 최고의 축구를 추구하며 그의 사상적 배경을 기자회견장에서 능숙하게 풀어내고 있다. 

크루이프는 과르디올라를 남겼지만, 그와 더불어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이후에 완성되어 자서전도 남겼다. 크루이프 턴이라는 기술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이는 ‘마이 턴(My turn)’은 그가 남긴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해설서다.

한국에도 크루이프 2주기인 2018년 3월 24일을 맞아 번역 출간됐다. 요즘 많은 축구 감독과 선수들의 자서전이 출간되고 있지만, 크루이프의 자서전을 동일선상에 둘 수 없다. 크루이프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 ‘마이 턴’은, 미래에 새로운 크루이프가 될 수 있는 이들에게 전할 수 있는 복음이 라고 할 수 있다.

▲ 크루이프는 기술적으로도 특별했고, 축구 지능 측면에서 역대 최고의 선수였다.


화면에서 쉴새 없이 ‘축구가 쏟아지는 날들’ 속에, 오랜만에 차분히 책장을 넘겼다. 크루이프는 서문부터 요즘도 전 세계 축구계에 만연한, 조급한 비판 여론을 달래듯 이 문장을 꺼내 놓았다. 

“실수는 인생의 일부다. 실수를 했느냐 아니냐보다 중요한 것은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었느냐다.”

아약스 홈 경기장에서 몇 백미터 떨어진 곳에 살던 크루이프에게 축구와 아약스는 운명이었다. 부친의 친구가 아약스 경기장 관리이었기 때문에 편하게 경기장을 드나들었고, 그러다가 유소년 팀 선수가 아님에도 결원이 생길 때 같이 섞여 축구를 할 수 있었다. 크루이프는 그런 행운이 찾아올 수 있었던 이유가 유독 삐쩍 마른 겉모습 때문에 ‘불쌍해 보였기 때문’이라고 익살스럽게 전한다. 그러면서 그의 유명한 명언을 첨언한다.

“모든 불리함은 곧 유리함이 될 수 있다.”

크루이프와 아약스에서 토탈풋볼을 완성한 인물로 리뉘스 미헐스 감독이 거론된다. 하지만, 그에 앞서 크루이프의 축구에 영향을 미친 인물은 아약스 유소년 팀에서 크루이프를 지도한 야니 판데르페인이다. 크루이프는 “미헐스 감독이 아약스의 규율을 담당했다면, 야니 감독은 즐거움을 담당했다. 나중에 감독이 됐을 때 나는 그에게 배운 생각들을 바르셀로나에 가져갔다”고 했다. 크루이프의 축구철학이 완성되는 과정에는 미헐스 감독의 전술 이론 못지 않게 판데르페인의 철학과 가치관이 중요했다.

여기서 다시금, ‘실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축구를 할 때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 실수를 바탕으로 창의적으로 연습할 수 있다고 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한국의 많은 지도자들도 하는 이야기다. 자신감을 갖고 플레이하라는 이야기인데, 오히려 그 실수가 발생했기에 더 창의적일 수 있다는 개념을 인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판데르페인 감독은 기본기를 강조했다. 기본기가 바탕이 되어 있지 않으면 그 어떤 창조성도 소용이 없다. 이 기본기는, 슈팅, 헤딩, 드리블, 패스, 볼 컨트롤의 다섯 가지를 뜻하며, 즉 공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크루이프는 공간을 이해하는 법을 중시했지만, 우선 공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한다면 최고의 축구를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여기서, 그의 유명한 말이 등장한다

“가장 쉬운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크루이프는 한 번에 공을 터치하는 능력을 최고급 기술로 본다고 했다. 한 번에 공을 터치하는 것이 단순하고 쉬워 보이지만 실은 수십만 번의 볼터치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에 깨달은 것이다. 기본을 잘하는 게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 점은, 뻔한 말처럼 들리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다.

▲ 언제 어디서나 유머를 잃지 않았던 크루이프. 2009년 크루이프를 취재할 수 있었던 것은 기자에게도 행운이었다.


◆ 성실한 훈련과 창조적 잔꾀 그리고 야구 선수 크루이프

크루이프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그가 아약스와 프로 계약을 맺기 전에 네덜란드 야구 청소년 국가 대표 팀 포수로 활약했다는 것이다. 유럽의 최고 인기 스포츠는 축구다. 야구의 불모지다. 네덜란드는 그 중에서도 야구 실력이 빼어난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크루이프의 유년기에 축구 비시즌인 여름에 야구 경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크루이프는 스스로 “야구도 정말 잘했다”며 15세까지 청소년 대표 팀의 포수였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야구의 포수로 활약한 경험이 훗날 축구 선수로 공간을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투수는 필드 전체를 볼 수 없지만 포수는 볼 수 있다. 또 포수는 투수의 공을 받아 어디로 던질지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모든 공간과 모든 선수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어떤 축구감독도 나에게 공을 받기 전에 그 공을 어디로 패스할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프로축구 선수로 뛰면서 어린 시절 야구에서 배운 것, 즉 언제나 경기장 전체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떠올렸고, 그것이 나의 강점이 되었다. 야구는 훈련으로 재능을 키울 수 있는 대표적인 스포츠로, 축구와 비슷한 점이 참 많다. 순간 스피드, 슬라이딩, 공간 인지력이 요구되는 것도 그렇고, 한 수 앞서 생각하고 여러 다른 수를 생각해야 하는 것도 비슷하다.”

최고의 선수들은 최고 운동 능력과 최고의 기술로 팬들을 매혹하지만, 최고의 축구 지능을 갖고 있기에 차이를 만든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최고가 될 수 없다. “옳은 결정을 내렸으면 그것을 기술적으로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앞서 크루이프가 기본기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이유가 반복된다. 

기본기 훈련은 고되고 지루하다. 하지만 크루이프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축구를 업으로 하는 이에게 축구는 ‘일이 아니라고 늘 말했다. 훈련은 열심히 해야 하지만, 즐거움도 그만큼 커야 한다.” 

축구 선수가 되고자 하는 이에게 성실한 훈련은 필수다. 사실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다. 확고한 목표의식과 열정이 없다면, 그 일에 적성이 맞지 않는 것이다. 즐길 수 있는 이들이 도전해야 한다. 

크루이프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바르셀로나의 살아 있는 전설 리오넬 메시도 “나는 매일 훈련을 하는 것도 즐겁다”며 축구 자체에 대한 애정을 강조한 바 있다.

즐겁지 않다면 멈춰야 한다. 나를 더 큰 지옥으로 빠트릴 수 있다.

물론, 열정이 있다고 모든 걸 즐길 수는 없다. 크루이프도 “장거리 달리기와 무겁고 큰 메디슨 볼을 이용하는 운동을 예나 지금이나 끔찍하게 싫어한다”며 잔꾀를 부려 적당히 했던 추억을 고백했다. 훗날 크루이프는 공을 갖고 진행하는 훈련 만으로 충분히 좋은 경기력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현대 축구 훈련에 영향을 줬다. 비단 축구 만이 아니라 우리네 삶에도, 유익하고 창조적인 잔꾀가 삶을 더 윤택하게 발전시킬 수도 있다. 

▲ 세간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았던 크루이프. 선수들에 대한 언론의 부당한 지적에는 늘 발끈했다.

◆ 세상을 떠난 크루이프가 남긴 인생의 교훈

창조적이어야 한다. 틀을 깨야 한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토탈풋볼은 원맨쇼가 아니라 혼연일체가 된 팀의 마법이었고, 창조적이기 위한 ‘통찰’도 ‘집단지성’ 안에 있다. 크루이프는 천재로 여겨지지만, 축구계에서 그가 이룬 성공은 혼자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세상에 완성되어 더 이상 달라지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능력과 계속해서 발전해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물론, 모든 생각이 다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 하나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그 생각을 완성하도록 기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이미 정상에 있는 사람들의 방식대로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달라질 수 없다.”

크루이프는 선수로 월드컵 우승을 이루지 못했고, 감독으로 대표 팀 감독을 맡아 월드컵에 출전하고자 하는 꿈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경력의 완성이라는 게 한 사람의 인생을 논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결정적인 것일까? 

크루이프는 그의 곁에서 함께 인생을 살아온 이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내게 실수를 피하도록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다르게 생각하도록 이끌어줬다. 그들 덕분에 나는 축구계를 떠난 후에도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얻었던 즐거움을 계속해서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꼭 무언가를 이루어야 만 행복한 것은 아니다. 행복은 일상에 있어야 한다. 축구 기자로 일하면서 인터뷰한, 축구계에 결과를 낸 이들이 공통적으로 한 이야기는 “공허하더라”는 감상이었다. 트로피는 현실이 없다. 장식장 위, 혹은 이력서에 새겨진 지나간 전리품일 뿐이다.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볼 때마다 되살아나는 뿌듯한 추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크루이프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나의 선수 시절 모습 만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고작 15~20년의 시간이라고, 너무 제한적인 시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의 축구 경력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잣대는 그가 느끼는 인생의 만족도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나와 동시대에 살았던 모든 사람이 나를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축구선수로도, 감독으로서도, 그리고 그 외에 내가 했던 모든 일들에 대해서도. 그러나, 괜찮다. 렘브란트와 고흐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사람들은 늘 누군가를 비판하기 마련이다. 그 사람이 천재라는 것을 깨달을 때 까지는.”

크루이프의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이미 역사적인 업적을 낸 최고의 선수,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떠올랐다. 21세기의 펠레와 마라도나로 여겨지는 두 선수에게 부족한 월드컵 트로피. 이번 대회도 장담도, 기약도 할 수 없는 그 트로피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축구를 이끌어가는 자신의 후계자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메시는 아무 것도 증명할 것이 없다. 그냥 경기장 안에서 게임을 즐기면 된다. 월드컵 우승 여부와 관계 없이, 메시는 비판을 잊어야 한다.”

▲ 크루이프 사후 열린 엘클라시코에서 추모행사가 열렸다



살다 보면 불현듯 깨달음이 찾아올 때가 있다. 어릴 때는 야망이 컸다. 그리고 야망이 나를 키웠다. 하지만 야망이 내게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았다. 야망은 그림자가 더 짙다. 아먕은 나를 괴물로 만들기도 한다. 야망에 삼켜지기 전에 나를 찾아야 한다. 우리 모두 조금 더 차분하게 우리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감독 시절에 나는 기자들이 어떤 선수가 뭘 망쳤는지도 모르면서 무고한 선수의 행동을 지적하면 가만있지 않았는데, 그런 일이 얼마나 자주 반복되었는지 모른다. 동료들이 그 선수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내가 쓴 비평은 얼마나 입체적으로 현상과 사실을 반영했을까. 평론은 의견이고, 축구에 답은 없다지만,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자문하자면 크루이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 어려울 것이다.

크루이프가 직접 쓴 부분만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마이 턴’은 내게 많은 것을 돌아보게 했다. 이제는 나도 실천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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