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W르포] “세계와 소통하고파” 러시아 축구는 지금 ‘6월 혁명기’
작성일: 2018.06.15 17:00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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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 한준 기자] “러.시.아! 러.시.아!”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2018년 러시아 월드컵 A조 1차전 개막전. 러시아가 전반 12분 일찌감치 포문을 열었고, 전반전의 문을 닫기 전 한 골을 더 보태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FIFA 팬페스트(Fan Fest) 현장에 함성이 일었다.
후반전에 3골을 더 보탠 5-0 대승. 후반 추가 시간에 두 골이 더 터질 때는 다양한 국적의 유니폼을 입은 축구 팬이 손가락 다섯 개를 쫙 펴며 웃었다. 개최국의 선전에 월드컵 분위기가 제대로 타올랐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주요 관광지가 밀집한 네프스키 대로의 피의 구원 사원에 마련된 FIFA 팬페스트는 1만 5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경기 시작 전에 폐쇄되어 추가 입장이 불가능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조별리그 경기는 B조 1차전 모로코 대 이란(15일), A조 2차전 러시아 대 이집트(19일) 등 두 경기다. F조 1위 팀의 16강전도 상트페테르부르크 크레스토브스키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비교적 관심이 적은 조별리그 두 경기가 열리는 곳이지만, 러시아 최대 관광지 중 하나인 만큼 월드컵을 즐기러 온 많은 방문객들이 몰렸다.
우선 다음 날 이곳에서 경기하는 모로코와 이란 팬들의 모습이 가장 많이 목격됐다. 둘은 포르투갈, 스페인과 한 조에 속해 서로를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황이지만 우애를 나누며 합동응원으로 월드컵을 전쟁이 아니라 축제로 즐기는 모습이었다.


전통적으로 월드컵 기간에 야심한 휴가를 쓰는 중남미 사람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축구의 나라 브라질부터, 중앙아메리카 최강 멕시코, 남미의 콜롬비아, 페루, 우루과이 등 다른 본선 진출국 유니폼을 입은 팬들의 모습이 많이 목격됐다. 메시의 이름을 새긴 아르헨티나 유니폼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러시아와 인접한 스웨덴 팬들은 물론,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 지역 팬들도 빠짐 없이 모였다. 두어 명쯤은 한국 대표 팀 유니폼을 입은 한국 팬들도 있었다. 일본 대표 유니폼을 입은 부부의 모습도 있었다. 호주 유니폼을 입은 건장한 사내 무리도 보였다. 남미의 경의 본선에 오르지 못한 칠레 팬들도 더러 보였고, 많은 이들의 격려를 받기도 했다.
팬 페스트는 거대한 응원 월드컵과 같은 현장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현지 팬들은 러시아의 새 유니폼이나 옛 유니폼, 기타 응원복을 입은 경우 외에 일상복을 입고 팬 페스트를 찾아 동네 잔치 즐기듯 맥주 한잔에 편하게 경기를 지켜보는 모습이 많았다.
축구 경기로 전 세계인이 한 마음이 되어, 축제를 즐기는 현장은 평화롭고 훈훈했다. 한 골 한 골이 터질 때마다 모두 러시아 사람이 된 것처럼 환호했다. 불쾌한 표정으로 빠져나가던 사우디아라비아 팬 몇몇을 빼고는 완벽한 하루를 보냈다.


월드컵은 세계인이 특별한 휴가를 보내기 위한 최고의 이벤트다. 유럽과 중남미의 축구 팬들은 최소 2주 가량 휴가를 내고 왔다. 러시아 관광과 각 도시에서 열리는 월드컵 경기, 자국 대표 팀 경기 등을 묶어 알찬 일정을 보낸다며 들뜬 마음을 표출했다.
경기장에 가지 않는 경기도 FIFA가 마련한 대형 스크린과 각종 즐길거리와 먹을거리, 넓은 공간에서 편하게 다국적 팬들과 어울려 즐길 수 있는 팬페스트는 꽤 성공적이다. 독일에서 온 닐은 “경기를 보기도 좋고, 다양한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을 즐기는 사람들을 봐서 좋다. 팬페스트는 환상적”이라고 했다.
이란 팬과 모로코 팬은 유로2016 대회에서 흥행한 아이슬란드의 박수 응원을 함께 하며 즐겼다. 다양한 응원 구호와 응원 도구로 무장한 이들을 보면 마치 이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월드컵 경기가 열리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대체로 사람들은 질서정연했고, 다툼과 충돌은 없었다. 서로 어울려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눴다. 경기 외 시간에 울린 음악과 공연 등으로 팬페스트는 노상 클럽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길 수 있었다. 백야로 인해 밤까지 환한 날씨는 사람들을 더 여유롭게 해줬다.
러시아 팬들은 5골을 넣으며 거둔 대승에 흥분하고 환호했지만 이성을 잃는 분위기까지는 아니었다. 러시아 축구 팬 스타니슬라브는 “러시아 사람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데 그동안 러시아 축구가 강하지 않았다. 유로2008에서만 잘했고, 10년간 침체했다. 지금이 러시아 축구를 부흥시킬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회”라고 했다.
러시아 축구의 부흥은, 성적과 영향력 두 마리 토끼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냉전이 끝난 지 오래디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체제의 러시아는 여전히 딱딱하고 먼 느낌이다. 러시아는 유럽 안에 있지만 유럽 밖에 있는 나라처럼 여겨진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에서 가장 서유럽적인 도시지만, 공산주의 시대의 유산과 엄정함도 묻어있다. 하지만 이날 전 세계인은 러시아의 축구와 승리에 환호했다.


스타니슬라브는 “사람들은 늘 홈팀을 응원한다. 여기온 사람들 다 환영하고 반겨주고 싶다.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와 소통이 사실 잘 되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소통을 넓히고 싶다”고 했다.
러시아와 이집트 경기를 포함해 폴란드와 일본, 8강전과 4강전 티켓을 이미 구입했다는 스타니슬라브는 러시아의 이날 대승을 두고 “나도 포백을 예상하지 못했다. 놀랐고, 잘했다. 환상적인 승리”라면서도 “현실적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조별리그만 통과해도 성공적이다. 목표는 8강으로 잡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 축구는 세계인들과 교류를 넓히고, 축구 인프라를 확충하고, 축구 수준을 높이는 세 마리 토끼를 잡고자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개막전은 성공적인 첫 걸음이었다. 러시아 축구가 6월 혁명을 위한 장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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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 기자 hjh@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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