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저보고 그냥 장첸이라고 해요, 이름도 몰라요."
윤계상(44)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지었다. 환한 미소였다. 2017년 688만 관객을 모으며 역대 청불영화 흥행 3위 대기록을 작성한 '범죄도시'에서, 그는 흉악한 범죄자 장첸을 연기했다. 첫 악역이었다. 마동석과 견주어서도 밀리지 않던 장발의 빌런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윤계상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됐다.
손석구가 새 악당 강해상으로 나선 '범죄도시2'가 1000만, 1100만을 넘어 1200만, 1300만을 바라보는 시기, 1편의 토대를 단단히 쌓은 주역인 윤계상의 기분도 남다를 터다. "그만큼 목말랐고, 그만큼 영화를 잘 만든 것"이라며 '범죄도시' 패밀리로서 자부심을 드러낸 그. 허나 인기가 치솟은 후임 빌런 손석구와 비교를 부탁하니 "지금 이러면 큰일난다, 저 지금 신혼이다"며 손사래를 쳤다.
"너무너무 좋았어요. 진짜 잘했던 것 같아요. 손석구씨가 지금 핫한 이유가 다 있죠. '범죄도시2'로 빵 터진 것이 아니잖아요. 지금 발견됐을 뿐 전작을 찾아보니 다 너무너무 좋아요. 현장 놀러가서도 많이 봤죠. 진선규, 김성규 형과 버스 액션 촬영 때 갔는데, 셋다 입을 모아서 '예사롭지 않다' 했어요. 스태프와도 다 친하잖아요. 물어보면 너무 재밌다, 잘한다 하는데 조금 섭섭하면서도 좋으면서도 그랬어요.(웃음) 이제는 장첸을 보내줘야 할 때죠. 더 다행이기도 하고요."
한창 방영 중인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키스 식스 센스'에선 '장첸' 시절과는 180도 다른 윤계상을 만날 수 있다. 본격 '로맨스' 복귀작이나 다름없는 이 작품에서 그는 능력과 독설을 겸비한 광고계 실력자 민후로 분했다. 알고보니 오감이 과도하게 발달해 까칠하고 예민하기 이를 데 없던 그는 입술이 닿으면 미래를 보는 후배 예슬(서지혜)과 짜릿한 로맨스를 그려가는 중이다. 이제 마지막 두 회가 남았다.
"마블 영화도 좋아하고,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좋아해요. 대본을 보니 비슷한 결의 재미가 있더라고요. 대중들은 이미 판타지에 대한 적응이 완료된 상황이잖아요. 초능력 이야기가 더이상 낯설지 않고, 현실적인 걸 부대껴하는 세상이 됐어요. 그래서 선택하게 됐어요. 오감이 발달한 남자, 미래를 보는 여자라는 데 솔깃했죠."
의학용어같은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광고계 이야기라 광고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과 인터뷰도 하며 거리를 좁혔다. 실제 회의 영상을 보는데 '너무너무 치열하다' 생각이 들더란다.
"직장생활 해 본 경험이 없죠. 그런데 저랑 비슷하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살아가는 인생이 다 똑같구나. 다 치열하고, 너무 괴롭고, 괴롭히는 사람도 있고, 인정받고 싶은데 잘 안되고. 배우들은 자기가 예술하는 줄 알잖아요. 내가 제일 힘든 줄 알고. '다 똑같아, 우리도 빡세고, 우리도 인정받고 싶고, 너만 힘든 것 아니야' 하는데 뭔가 뼈를 맞은 느낌이었어요."
완벽을 요구하는 까칠한 직장상사는 또 다른 도전이자 고민거리였다. "대본을 보고는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상사가 갈군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봤다"는 게 윤계상의 솔직한 고백. 걱정했지만 현장에선 재미있게 연기했다. 다 이유있는 구박이었다. "그 후의 이야기를 알고 있어서 과감하게 할 수 있었어요. 사랑하니까."
연인으로 호흡을 맞춘 서지혜를 두고선 '여신'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가 예쁜 여자들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다"며 의미심장한 파트너 자랑을 시작한 윤계상은 "서지혜씨의 어릴 적 얼굴을 기억한다. 예전에 본 '예쁨'과는 또 다른, 여신같은 분위기가 나온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말쑥하고 댄디한 광고인이 된 윤계상의 비주얼도 못잖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처음 작품에 들어갈 때부터 패션과 헤어스타일을 두고 적잖은 고민을 했다. 오랜 고심과 노력의 결과물이란다. 전작 '크라잉 퍼즐'에서 머리를 빡빡 깎은 죄수였던 걸 떠올리면 극적인 변신이 더 실감난다. 중반부까진 가발을 써서 짤막한 머리를 가렸단다.
"대본을 읽기에는 스타일리시한 남자라야 할 것 같았거든요. 중년 꼰대 느낌이 나오면 안되니까. 전작 '크라잉 퍼즐'에선 머리를 빡빡 깎고 죄수복을 입었는데, 이건 핫한 느낌이고 '옷 잘입었다'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고. 서지혜씨는 '사랑의 불시착' 이후 계속 찬사를 받는 여배우잖아요. 그녀를 구박하는 멋진 팀장인데, 거울을 보니 제가 너무 꼰대같은 거예요. 너무 걱정이 돼서 여러 군데 도움을 요청하고, 머리스타일부터 안경, 옷 하나하나 다 만들었어요. 감독님 작가님에게 '머리를 민 광고인도 있지 않냐' 제안도 해보고요. 머리를 감싸쥐시더라고요.(웃음) 도전적인 의상도 입었는데, 괜찮았다니 다행입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그는 1999년 그룹 god로 데뷔해 지금에 왔다. 가수로 정상의 자리에 올랐던 그는 여러 우여곡절과 시행착오 끝에 배우로 지금의 자리에 왔다. "잘 살아남았다. 잘 버텼다. (배우로) 밥벌이를 하고 있으니 너무 감사한 일이다"는 그는 "여기까지 오는 게 쉽지 않았다. 풍파를 겪었다. 업앤다운이 심했다. 너무너무 잘하고 싶고, 세상 짐을 다 짊어진 적도 있었다. 그걸 다 겪어서 안정된 것 같다. 잘 공부했다는 느낌이다"라고 지난 시간을 되새겼다.
"나이가 드니 도달하는 감정의 수위가 짙고 진하다는 생각을 해요. 확실히 주름이나 눈빛이 짙어진 것도 사실이거든요. 멍하니 있어도 사연있어 보인다고 할까. 가만히 있는데 '좋았어!' 이러고.(웃음) 제 얼굴이 좋아진 쪽으로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예전 얼굴이, 풋풋한 느낌이 그립기도 하고요.(웃음)
저를 기억하는 이미지라는 게, 제가 지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god 윤계상인 거고, 이제 스무살이 된 친구는 장첸인 것이고. 바라는 게 있다면 한 번 더 그런 이미지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내 생애 다시 한번 그런 무언가로 불려지는 건 정말 영광일 것 같아요. 다만 그 무언가가 배우로서 만들어졌으면 하는 건 확실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