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일, 전 세계 주목 속에 다시 무대로 "피아노는 내 모국어"[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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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공미나 기자] 음악감독 겸 정재일이 세계적인 레이블 데카(DECCA)를 통해 내면 깊은 곳으 이야기를 담은 자신만 음악을 들려준다.
정재일은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동 JCC아트센터에서 진행된 새 앨범 '리슨'(LISTEN)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항상 무대 뒤에 있다가 혼자 앞에 나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1999년 17살 나이에 밴드 긱스 베이시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한 정재일은 대중음악, 클래식, 영화 음악 등 장르를 아우르는 음악으로 '천재 뮤지션'이라고 불려왔다. 패닉, 박효신, 아이유, 임영웅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과도 작업해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켰다.
이번 앨범은 유니버설뮤직 산하 레이블 데카(DECCA) 발표하는 데뷔 앨범이다. 데카는 1929년 설립된 영국의 대표적 클래식 레이블 중 하나로, 최근 드라마 ‘체르노빌’,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 등의 OST를 발매했다. 정재일은 오랜만에 자신의 이름을 건 음반을 내기로 결심한 이유가 데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2004년쯤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안고 '눈물 꽃'이라는 앨범을 발매했다. 당시 '나는 아직 역량이 안 되나 보다'라는 생각에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접고 무대 뒤에서 다른 예술가를 보필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데카에서 '당신만의 것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그는 "싱어송라이터에서 '싱어송'은 아직도 못하겠고 '라이터'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데카가 클래식 전문 레이블이라 지난 20년간 쌓아온 것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카는 전 세계적으로 음악이 알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면서 "클래식 레이블이기에 노래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진 순간,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만을 위한 음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앨범에는 타이틀곡 '리슨'과 선공개곡 '더 리버'(The River)를 비롯해 일곱 트랙이 수록됐다. 정재일은 이번 앨범에 자연과 인류애,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피아노 중심의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풀어냈다. "내 목소리와 같은 피아노로 내면 깊은 곳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번 음악으로 내 목소리뿐만 아니라, 여러분과 여러분을 둘러싼 모든 목소리를 발견하면 좋겠다"는 것이 정재일의 설명이다.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이유에 대해 그는 "제가 가장 편한 언어로 시작해 보자는 생각에 피아노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피아노는 저의 모국어나 다름없다. 말하는 것보다 피아노로 표현하는 게 더 편하다. 큰 편성보다는 오롯이 혼자 얘기할 수 있는 편성이 좋다고 생각해서 처음엔 피아노를 선택했다. 앞으로는 여러 실험도 해보고 싶다"고 설명했다.
피아노 연주는 전설적인 녹음실로 유명한 노르웨이 소재 레인보우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정재일은 이곳에서 녹음한 이유에 대해 "피아노 하나로 연주하다 보니 좋은 악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관리 잘된 악기가 있는 녹음실이 전 세계 통틀어 몇 곳이 없다. 그중 하나가 레인보우 스튜디오였다. 감사하게 저를 위해 시간을 크게 빼줬다. 그래서 결정이 되자마자 그곳으로 날아가 열흘 간 하루 7시간씩 녹음했다"고 밝혔다.
그간 자신의 음악 보다 영상 음악 혹은 타 뮤지션의 앨범에 참여해 온 정재일은 오랜만에 오롯이 홀로 한 작업에 대해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혼자 만드는 음악의 장점은 컨펌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너무 행복하다.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단점은 맨땅에서 해야 한다. 음악만을 위해 처음부터 구상해서 믹싱까지 가야 한다. 오래 걸리고, 쉬지 못한다. 또 음악만 들어야 해서 쉴 수 없다. 그래도 장점이 모든 걸 상쇄해준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했던 정재일이지만, 최근에는 영화 '기생충',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등의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2021년에는 영상 매체에 쓰인 독창적인 음악에 상을 수여하는 미국 할리우드 뮤직 인 미디어 어워즈(The Hollywood Music In Media Awards, HMMA)에서 '오징어 게임'으로 한국인 최초로 수상해 화제를 모았다.
정재일은 "'기생충'이라는 영화 때문에 많은 일 벌어진 건 사실"이라며 데카에서의 데뷔 역시 이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재일은 몰라도 '오징어게임' 음악은 전 세계인이 안다. 덕분에 명예도 얻었다. 또 성덕이 될 수 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존경하는데 '브로커'로 함께 작업할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무대 뒤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직접적인 변화는 크게 느끼지 못했다. 다만 개인적으로 '기생충', '오징어게임'을 통해 영화음악이라는 게 뭔지, 나에게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또 음악과 더 사랑에 빠지게 됐다"고 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차기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는 세계적인 지휘자 야프 판즈베던은 지난달 정재일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며 러브콜을 보낸 바 있다. 정재일은 "기사를 보고 알았다. 그런 거장이 제 이름을 어떻게 아셨을까 싶다. 황송한 제안이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울시향과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제가 음악을 대학교에서 배운 게 아니라 근본이 없다. 그분들이 생각하는 어떤 예술적 경지를 맞출 수 있을지 두렵긴 하다. 하지만 근본 없이도 할 수 있는 게 있다. 정말 저에게 어떤 제안을 주신다면 해보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다"며 긍정의 답을 내놨다.
앨범 발매를 앞두고 정재일은 지난 23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했다. 그는 "유재석, 조세호 씨와 2시간 남짓 이야기 나눴다. 저는 말하는 게 굉장히 두려운데 즐겁게 두 시간을 보냈다"면서 "다만 저희 집에 TV가 없는데 방송사고가 나서 다시 보기가 아직 없더라. 방송은 아직 못 봤다"고 했다.
긴 시간 음악가의 길을 걸어온 정재일은 "음악을 사랑하지만 나에게 음악의 시작은 노동"이라고 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생계를 위해 음악 활동을 해온 그는 "예술이라는 건 비단 수많은 노동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들에게 결여될 수 있는 근면함이나 책임감도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에 앨범을 내긴 했지만 지난 25년 동안 저는 무대 뒤에서 서포트하는 역할이었다. 계속 음악 통역가 역할을 해온 것이다. 그게 저에겐 익숙하고 제 삶이고, 제 하루였다"면서 "앞으로도 영화든 음반이든 잘 해보겠다"고 향후 행보에 대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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